휜
이 밤,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요
헝클어진 머리칼
우린 사람들을 불렀죠 우린 노래를 불렀죠
당신의 연주를 기억해요
내가 하품을 하면 건반을 두드렸죠
테이블도 없는 카페였어요 국화를 잔뜩 깔아놓고,
아, 그래요 난 그곳에 앉아 있었어요
내 친구, 당신이 치는 피아노엔 창문이 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이 불었죠 내 몸은 애드벌룬처럼 떴을지 몰라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의 눈부신 하늘이 보였을 거예요
대리석으로 된 얼굴들이 떨어지고 눈물이 쏟아지고
창문은 열리고 닫히고 반복했지요
하지만 이 밤,
내 친구,
늦은 밤이 왔어요
퀴퀴하고 더러운 몸에서
시수가 흐르고
지옥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의 음악이 텅 빈 입과 내 눈에서
빙글 돌고 있어요
―김소형
* 시수屍水 :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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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누구든 무대에 놓인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누구든 노래를 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한다.
로맨스 영화에 많이 나오는 한 장면처럼.
★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것이 더 좋을까.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하나.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음악!
모든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오직 나만을 초대한 음악회!
어떤 것이어도 모두 다 아름답고 행복한……
★
나의 신랑은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이 수많은 촛불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결혼식>
이 시에서처럼
나를 향한 그대의 눈빛.
카페의 모든 불빛은 두 사람만을 위해 빛나고 있다.
이 카페에서 음악이 흐를 때
나는 거대한 풍선을 타고 구름 위를 비행한다.
사랑의 힘은 중력을 이기고 사람의 몸을 공중에 띄운다.
★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제 그 모든 사랑이 추억으로 변했을 때
사랑의 기쁨이
사랑의 슬픔이 되고
사랑의 즐거움이
사랑의 고통이 되고
당신이 없는 현재가 지옥과 같을 때
음악은 과연 아직 사랑의 흔적을 지니고 있을까.
음악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 그러나 그때 그 음악이 지금 없다면?
사랑은
아픈 기억과
고통스런 흔적을 남기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추억이 남아 있지 않다면
고통스럽지만 그 모든 과거가 없다면
지금은 오히려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가 없을지 몰라도
아름다웠던 과거가 있다면
오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옥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의 음악이 텅 빈 입과 내 눈에서
빙글 돌고 있어요
그렇다.
지옥에 가는 건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의 음악이 아직 내게 남아서 울리고 있기에.
그 음악의 시간 동안
나는 천국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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