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조용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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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조용미 <정원>

by 브린니 2022. 6. 6.

정원

 

감추지 못하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열정 때문에 시간은 멈추지 못한다 텅 빈 삶을 어찌 사느냐 물었다 이 집요한 마음이 열정임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무모함이 자라 견고함이 되었다

 

꿈에 내가 아는 나는 늘 말이 없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한 공간에 있을 뿐 어떤 말도 주고받지 못한다 꽃나무를 사이에 두고 잠시 마주 보았다 사람들은 얼굴이 없고 우리는 손이 없다

 

삶의 맹목성은 왜 극복되지 않는 걸까

 

8만 4천의 생각마다 모두 아름답고 향기로워 생은 꽃이 만발한 정원 같았다 눈먼 사람처럼 나는 이 넓은 풀밭을 생을 다해 헤매 다닐 테니

 

―조용미

 

 

【산책】

 

아마도 산사의 넓은 정원 혹은 풀밭을 거닐고 있는 것 같다.

거기서는 인생의 시름을 잊고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런가.

그곳에서도 번민은 계속되고,

 

자신의 생에 대한 성찰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생이란 결국 미친 듯한 욕망의 시간 속에서 헤매는 것이란 걸 다시 깨닫는다.

 

 

꿈에 내가 아는 나는 늘 말이 없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한 공간에 있을 뿐 어떤 말도 주고받지 못한다 꽃나무를 사이에 두고 잠시 마주 보았다 사람들은 얼굴이 없고 우리는 손이 없다

 

삶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어디론가(아마도 죽음까지) 가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타인들과 진정한 교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잠시 마주 볼 뿐.

 

아무런 말 없이.

어쩌면 말이 없어도 서로의 사정을 잘 안다는 듯이.

 

그들은 대부분 누군지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나는 말이 없고, 손잡을 수도 없다.

 

꿈과 같다.

인생이 끝나면 오히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을 수도 있다.

 

인생이 영혼의 잠이며

죽음 이후에 영혼이 꿈에서 깨는 것인지도 모른다.

 

 

8만 4천의 생각마다 모두 아름답고 향기로워 생은 꽃이 만발한 정원 같았다 눈먼 사람처럼 나는 이 넓은 풀밭을 생을 다해 헤매 다닐 테니

 

8만 대장경에는 인간의 생각이,

아주 깊은 사람의 생각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부처의 설법이란 것이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생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닌가.

 

하나님(신)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성경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높은 영적 생각의 기록물인 것이다.

 

인간의 깨달음이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과 인격이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가 되기 전에,

성불하기 전에는

인간의 욕망의 사슬 속을 계속 헤매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열반의 때

꽃과 풀이 가득한 정원에서 편히 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아니어도

성불하지 않아도

 

생이 향기로운 정원으로 변할 수 있도록

깊은 꿈을 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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