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박은정 <윤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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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박은정 <윤색>

by 브린니 2022. 6. 4.

윤색

 

 

 

어둠이 고향을 따라 내려갑니다

 

고향은 그립지만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

 

유리병을 쓰다듬다 던지고 싶어질 때

 

누군가는 바닥에 떨어진 피를 만집니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생활은 변하지 않고 검은 사슴의 목덜미에 돋아난

 

가시가 아파서 바닥만 봅니다

 

무심히 빛나는 가시들

 

나는 자주 문장의 행로를 잃어버립니다

 

누군가 버린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의 직업이라면

 

이름은 무엇인가요 고향처럼 멀고도 먼

 

화관을 쓴 메아리만 남은 고백이라면

 

나는 손재주를 부리며

 

손톱이 다 빠지도록 놉니다

 

모난 것들을 윤이 나게 매만지면

 

아픈 것들이 둥글게 둥글게

 

먼 고향을 바라봅니다

 

―박은정

 

 

【산책】

 

고향은 그립지만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

 

왜?

아무도 가지 않는다고?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귀향 차량이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수십만 명이 고향을 찾아 나서는데?

 

그렇다.

여기에 허점이 있다.

 

고향을 1년에 한두 번만 간다는 것이다.

가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다.

사실은 가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본토, 친척, 아비집.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귀향본능이 없다는 말인가.

 

어쩌면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먼 고향을 바라봅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가지 않는 곳,

그곳이 고향인지도 모른다.

 

 

사람들마다 고향에 대한 사연들이 있다.

아픔도 있고,

기쁨도, 행복한 기억도 있다.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고향에서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결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길래)

 

고향이 어떤 트라우마의 장소라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다면 돌아갈 수도 있고,

그 트라우마에 이끌려 고향엘 갈 수도 있다.

 

고향이 그리움의 장소라면 그것으로 족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그리워할 수 없다면,

 

고향에서의 추억을 지우고 싶다면?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싶다면.

 

 

신기하게도 고향은 장소이면서 동시에

시간이다.

 

고향,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때 그 시절이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은 그 시간 때문이다.

그 시간이 쌓여서

고향과 지금 여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공간이 되고

장소가 시간이 된다.

 

고향은 거기서 살았던 시간이며

그 시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향엘 못가는 것은,

아니, 갈 필요가 없는 것은,

 

고향이라는 시간이 현재에도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거나

계속 이어져서 현재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을 윤색한다.

 

나는 어릴 때 기억을 정확하게 되살리지 못한다.

부모들은 내가 어릴 때 이랬다, 저랬다 말해준다.

그분들의 기억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때도 그분들은 어른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과 아버지의 기억이 다를 때도 있고,

고모와 이모의 기억,

삼촌과 외삼촌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누이나 오빠의 기억이 다를 수 있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윤색 혹은 왜곡.

 

기억은 망각보다 힘이 세다.

 

하지만 기억이 진실은 아닐 수 있다.

잘못된 기억은 진실을 흐릴 수 있다.

 

인생의 많은 비극이 여기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고향과 같다.

매우 친근하고, 포근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고향이 가장 낯설 수도 있다.

고향보다 더 낯선 것도 없다.

(나의 본질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도 없으니까)

 

고향이 멀리 있는 것을 더 안전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고향이 없는, 뿌리가 없는, 돌아갈 곳이 없는,

이런 말들은 매우 쓸쓸한 느낌을 들게 하지만

현재의 일상이 오히려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라면

일상적 삶이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냥 고향이 골목길이나 놀이터와 같은 장소라면

학교 운동장이나 시장이라면,

변하지 않는 세월의 흔적과 무관한

박물관의 전시물일 뿐이라면

고향은 무섭지도,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은 시간으로서 우리의 삶에 존재한다.

 

지금도

여기서도.

내일도 앞으로도, 더 많은 미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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