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소형 <ㅅㅜㅍ(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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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소형 <ㅅㅜㅍ(숲)>

by 브린니 2022. 6. 8.

ㅅㅜㅍ (숲)

 

 

꿈속이라 믿었던 숲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음악이고 어디서나 음성이던 숲

저는 환한 잠을 따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제게 잠을 먹이려는 어수룩한 무리가 있었고 다시 이 세계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천사들이 있었지요 밤마다 불 피우며 땅속에다 숲을 두고 돌 속에다 숲을 두고 주머니에도 발가락 사이에도 두었습니다

 

이미 죽은 당신에게 총을 겨누는 병사들과 당신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인부들과 숨겨둔 숲을 찾아 도끼질하는 벌목꾼을 피해 그리하여 숲은 만들어졌습니다

 

숲을 두고 숲을 두고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었습니다

빛이 주검이 되어 가라앉는 숲에서

나만 당신을 울리고 울고 싶었습니다

 

김소형

 

 

산책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숲이 들어 있는 창고.

 

외딴 곳 허름한 창고가 하나 있다.

창고 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면

숲이 들어 있다.

갑작스레 숲이 펼쳐지는 놀라운 장관.

 

다른 상상도 있다.

창고 문을 들어가면 창고 안은 텅 비어 있고,

거기 숲이 떨어져 있다.

 

마치 종이접기처럼

삼각형의 숲이 떨어져 있다.

숲이 조금씩 펼치면 숲은 점점 커져서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급기야 숲은 창고를 품고 있다.

 

숲 한가운데 놓인 작은 창고.

숲이 들어 있는 창고는

창고를 품은 숲이 된다.

 

 

그 숲에서 당신과 나

단둘이서만

숲을 거닐고

숲에 눕고

숲에서 잠들고 싶다.

 

이런 상상을 늘 했었다.

 

숲의 나무와

나무에 깃든 새들과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과

햇살과

저물녘의 노을과

숲의 향기.

 

이 숲에서 당신과 하루만 살고 싶었다.

빛이 주검으로 사라지는 숲에서.

 

당신에게 오늘 하루만 남아 있다면

내게 당신과 함께할 하루만 허락된다면

 

오직 이 숲에서

그 시간을 통째로 쓰고 싶다.

 

그리고 당신과 깊고 깰 수 없는 잠에 들고 싶다.

 

 

깊고 푸른 숲

깊고 푸른 잠.

 

이 두 가지는 참 갖고 싶다.

 

깊고 푸른 사랑

파란 불꽃 속에서

차갑고 서늘하지만

뜨겁게 불타오르는.

 

숲이 불타오른다.

사랑의 창고에서!

 

당신과 함께하는

잠의 시간이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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