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소형 <휜>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소형 <휜>

by 브린니 2022. 6. 9.

 

 

이 밤,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요

헝클어진 머리칼

우린 사람들을 불렀죠 우린 노래를 불렀죠

당신의 연주를 기억해요

내가 하품을 하면 건반을 두드렸죠

테이블도 없는 카페였어요 국화를 잔뜩 깔아놓고,

, 그래요 난 그곳에 앉아 있었어요

내 친구, 당신이 치는 피아노엔 창문이 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이 불었죠 내 몸은 애드벌룬처럼 떴을지 몰라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의 눈부신 하늘이 보였을 거예요

대리석으로 된 얼굴들이 떨어지고 눈물이 쏟아지고

창문은 열리고 닫히고 반복했지요

하지만 이 밤,

내 친구,

늦은 밤이 왔어요

퀴퀴하고 더러운 몸에서

시수가 흐르고

 

지옥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의 음악이 텅 빈 입과 내 눈에서

빙글 돌고 있어요

 

김소형

 

 

* 시수屍水 :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

 

 

산책

 

누구든 무대에 놓인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누구든 노래를 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한다.

 

로맨스 영화에 많이 나오는 한 장면처럼.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것이 더 좋을까.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하나.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음악!

 

모든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오직 나만을 초대한 음악회!

 

어떤 것이어도 모두 다 아름답고 행복한……

 

 

나의 신랑은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이 수많은 촛불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결혼식>

 

이 시에서처럼

나를 향한 그대의 눈빛.

카페의 모든 불빛은 두 사람만을 위해 빛나고 있다.

 

이 카페에서 음악이 흐를 때

나는 거대한 풍선을 타고 구름 위를 비행한다.

 

사랑의 힘은 중력을 이기고 사람의 몸을 공중에 띄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제 그 모든 사랑이 추억으로 변했을 때

 

사랑의 기쁨이

사랑의 슬픔이 되고

사랑의 즐거움이

사랑의 고통이 되고

 

당신이 없는 현재가 지옥과 같을 때

음악은 과연 아직 사랑의 흔적을 지니고 있을까.

 

음악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 그러나 그때 그 음악이 지금 없다면?

 

사랑은

아픈 기억과

고통스런 흔적을 남기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추억이 남아 있지 않다면

고통스럽지만 그 모든 과거가 없다면

 

지금은 오히려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가 없을지 몰라도

아름다웠던 과거가 있다면

오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옥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당신의 음악이 텅 빈 입과 내 눈에서

빙글 돌고 있어요

 

그렇다.

지옥에 가는 건 어렵다.

왜냐하면 당신의 음악이 아직 내게 남아서 울리고 있기에.

그 음악의 시간 동안

나는 천국에 있으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