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정영효 <전야제>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명시 산책] 정영효 <전야제>

by 브린니 2022. 7. 1.

전야제

 

 

날이 밝을 때까지 광장에 까맣게 둘러앉아 우리는 밤을 지킨다 아직 기쁨을 말하기는 이르고 여전히 불안을 고백하기도 이르다

 

조급한 자들은 집으로 가 내일을 기다리거나 시간을 잊기 위해 그 끝을 찾아가고 있다 날이 밝기 전이지만

 

기도를 미룬 채 우리는 도시의 축포 속에 섞인다 단단한 표정처럼 마음을 불러세우는 함성, 거칠어진 호흡이 우리를 빠르게 통과한다

 

영원한 것들이 미래를 실수할 수 있을까 기억이 잠깐 저지르는 일을 걱정이라 생각할수록 뚜렷한 곳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어쩌면 영혼이 모여드는 지금부터

 

슬픔을 떠올리기는 이르고 출구를 준비하기도 이르다 저무는 외곽으로 날이 깊어지면 서로의 심장이 흔들릴 것이므로

 

약속한 직전의 밤이 이곳에 멈춰 있다 다른 얼굴들이 모두 평범해지는 동안 우리는 같은 쪽으로 어두워진다

 

 

정영효

 

 

 

산책

 

날이 밝을 때까지 광장에 까맣게 둘러앉아 우리는 밤을 지킨다 아직 기쁨을 말하기는 이르고 여전히 불안을 고백하기도 이르다

 

전야를 이만큼 정확하게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야는 아직 오직 않은 기쁨의 시간을 기다리며

절정을 기다리며 불안해하는 마음의 시간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짧은 기다림의 시간

약간의 초조와 불안의 시간

설레지만 흥분이 밀려들기 전의 시간

 

기쁨의 환희가 터지기 직전

절정에 이르기 전

조마조마한

느린 듯 애태우는 시간.

 

꽃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의 미세한 떨림의 시간.

 

 

결혼식 전날밤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는가.

소개팅이나 미팅 전날밤에도.

 

어쩌면 연인과 헤어지기 전날밤에도 잠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다.

내일 마지막으로 만나 이별을 확인하는 시간.

 

그런 면에서 전야는 무엇을 기념하는 시간이긴 하지만 기념일 당일 아니어서

약간은 어정쩡한, 뭔가 채워지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잊기 위해 텅 빈 시간을 견딘다.

 

조급한 자들은 집으로 가 내일을 기다리거나 시간을 잊기 위해 그 끝을 찾아가고 있다 날이 밝기 전이지만

 

기도를 미룬 채

 

사람들은 막간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다.

 

슬픔을 떠올리기는 이르고 출구를 준비하기도 이르다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중간에 낀 시간이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긴 하지만 곧 닥칠 미래의 시간이다.

기다리고 견디면 당연히 도달할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 자체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실 미래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시간인 것이다.

 

영원한 것들이 미래를 실수할 수 있을까

 

 

날이 깊어지면 서로의 심장이 흔들릴 것이므로

 

약속한 직전의 밤이 이곳에 멈춰 있다 다른 얼굴들이 모두 평범해지는 동안 우리는 같은 쪽으로 어두워진다

 

점점 더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심장 맥박이 빨리진다.

약속 직전 밤이 깊어진다.

밤이 멈춰 있다는 느낌이 다분히 심리적 시간이다.

물리적인 시계와 달리 기다림에 지친 심리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얼굴들은 평범해지고

우리는 같은 쪽으로 어두워진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제 당일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이 기다림의 시간 역시 즐기고 있다.

그런데

몇 몇 우리들은 왠지 어두워지고 있다.

 

우리에겐 어떤 기억이 있고,

고백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뭔가 어둡고 비밀에 싸여 있다.

 

우리는 온전히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축제 당일의 환희와 같이 할 수 없는, 어떤, 비켜가는 기억들이다.

 

란 그런 것이다.

시는 축제라기보다는 축제의 비애와 같은 것은

인생의 화려한 성공기라기보다는

그 뒤에 숨은 씁쓸한 페이소스 같은 것이다.

 

우리는 광장의 축포 한가운데 있지만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다.

 

어쩌면 그냥 단지 밤이 깊어서 어두워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멈춰 버린 시간

전야는 내일을 위해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