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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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

by 브린니 2021. 3. 6.

하루 동안 벌어지는 어긋난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마리아는 스페인 어느 마을의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과 술을 마시며 오늘 있었던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라는 남자가 토니 파레스라는 남자와 자신의 아내를 총으로 쏜 사건이었다.

 

마리아는 남편 피에르와 딸 쥐디트 그리고 친구인 클레르와 함께 마드리드로 여름휴가를 떠나왔다. 쥐디트는 비가 오는데 카페와 광장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놀고 있다. 소나기가 저녁 여섯 시 일곱 시 사이에 퍼붓다가 좀 잠잠해졌다.

 

옆자리 손님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지금 어느 집 지붕에 숨어 있을 거라고 말한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는 페레스의 차고 안에서 페레스와 자신의 아내를 쏘았다.

 

마리아는 만사니야를 몇 잔 마셨다.

마을의 호텔은 만원이어서 방을 구할 수 없었다. 오늘밤은 호텔 복도에서 잠을 청하거나 빗속을 뚫고 마드리드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남편 피에르와 클레르는 호텔에서 마리아와 쥐디트를 기다리고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밤 열 시 반>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리아의 가족과 그녀의 친구 클레르, 이렇게 네 사람은 프랑스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여행을 떠났다. 남편 피에르와 클레르는 이제 막 불륜을 시작하려고 하는 참이었고,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여름휴가를 온 것이다.

 

소설은 마드리드 근처 한 마을에 도착해 밤을 보내고 떠나려던 마리아 가족에게 닥친 작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정오 무렵 이 마을에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불륜을 맺은 페레스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찰이 출동해서 온 마을을 수색하고 있고, 비가 퍼붓고 있다. 휴가철이라 호텔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술을 자주 마시는 마리아는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피에르와 클레르는 호텔에서 쉬고 있다.

 

마리아가 왜 굳이 남편과 불륜 관계인 클레르는 여름휴가에 동참하게 했는지 소설에서는 끝내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소설은 별 다른 내용 없이 주로 마리아를 중심으로 사건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동시에 마리아의 내면을 섬세한 심리묘사로 그려낸다.

 

마리아는 피에르와 클레르 사이를 모두 다 알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이 오늘밤 불륜의 첫날밤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예감한다. 마치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가 아니라 어떤 강박,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강박증 같은 것이리라.

 

마리아가 술을 많이 마시는 걸 두고 피에르와 클레르가 걱정하지만 마리아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그들 두 사람의 불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리아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계속해서 충고한다. 마치 마리아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모든 게 다 정상이라는 듯이.

 

마리아는 왠지 모르게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에게 끌린다. 어쩌면 그도 마리아처럼 불륜의 희생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마리아 역시 피에르와 클레르를 살해하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리아와 여행자들은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복도에서 잠을 청한다. 오늘 밤 마드리드로 떠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기서 밤을 지새우고 내일 오전 이 마을의 성당에서 고야의 그림을 감상한 뒤에 떠나는 것도 결론을 냈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는 반복했고, 경찰관들은 교대로 마을을 순찰했다. 플래시 불빛과 호각소리, 발자국 소리, 경찰들의 외치는 소리들이 잠을 방해했다.

 

마리아는 오늘 밤 피에르와 클레르가 무슨 일을 벌일까 기대하면서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다. 밤이 깊었을 때 두 사람이 호텔 발코니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번개와 천둥 사이에서 호텔 맞은편 지붕 위에 살인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숨어 있는 것을 언뜻 발견한다.

 

마리아는 발코니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며 여러 차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상대방 쪽에서는 한참 동안 응답이 없다. 계속해서 지붕 쪽을 응시하던 마리아가 그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호의에 찬 인사를 한다. 그제야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도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응답한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차를 몰고 호텔을 빠져 나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숨은 집 아래서 그를 기다린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지붕을 타고 내려와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그는 뒷자석 밑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숨었다.

 

마리아는 경찰 검문을 받았지만 별 탈 없이 빠져 나와 마드리드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밀밭 앞에 멈췄다.

 

마리아는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에게 다시 호텔로 돌아가 일행과 합류해야 하니까 밀밭에 숨어서 기다리면 정오에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로드리고는 밀밭 한쪽에 숨을 곳을 마련하고 누웠고, 마리아는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소설은 마리아의 심리를 세밀한 필체로 이야기한다. 마리아가 듣고 보고 느끼는 것만을 서술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거의 마리아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그녀는 불안하고 갈팡질팡하고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도 없다.

 

마리아는 고야를 감상하고 나오는 피에르와 클레르에게 자신이 새벽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데리고 나가 밀밭에 숨겼고, 정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클레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피에르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찾아 나선다. (피에르가 왜 그렇게 살인자를 도우려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어쩌면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밀밭으로 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권총으로 자신을 쏜 뒤였다. 페레스와 자신의 아내를 쏜 바로 그 총으로.

 

 

마리아와 피에르는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마드리드로 들어간다. 거기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드리드로 들어가기 직전 어느 호텔에서 피에르와 클레르는 매우 급하게 정사를 치른다. 클레르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피에르는 자신이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한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여름 휴가는 계속된다.

 

 

이 소설은 마리아와 피에르 그리고 클레르가 이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에 대해 그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직 어느 날 저녁에 시작된 이야기가 다음날 저녁까지 이어질 뿐이다. 이 소설은 시간의 추이를 세밀하게 기술한다. 만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를 마리아를 따라다니며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고 거의 사건도 없다.

 

하지만 마리아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 독자들은 묘한 매력에 빨려들 수밖에 없다. 마리아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마리아가 듣는 것을 함께 듣고, 그녀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낀다. 마리아의 불안으로 독자들의 내면도 흔들린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독특하고, 섬세하고, 단순한 필체가 독자들에게 줄거리 이상의 느낌을 선사한다.

 

독자들은 불륜인 남편의 애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살인자를 숨겨주는 행동 등 마리아를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뒤라스의 탁월한 묘사 능력 탓에 자신도 모르게 마리아의 편에서 소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마음속에 저장하게 될 것이다.

 

 

◆ 만사니야

스페인에서 생산되는 세리주의 일종.

스페인의 Fino(삐노)를 대서양 연안의 산루까르 데 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라는 곳에서 발효 숙성시킨 것을 말하는데, 약간 짠맛이 있는 듯한 자극성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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