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의 신비로운 능력
회색 두부에
꼿꼿한 혀 한 장 박혀 있다
부러진 커터 칼날처럼
혀 없는 고양이 ‘두시’는
푸른 베일을 쓴 채
한쪽 발로
초승달의 목을 밟고 있다, 파르르
파르르
달은 숨이 할딱거린다
파랗게 점점 파랗게 미미한 파도처럼
살짝
살짝 치 떨던 달은
차갑게 식는다
모든 낭만의 밤은 끝났다
고양이의 작은 발 주먹 아래서
두시의 등 뒤로 가끔 해변이 열리고
닫히고
누군가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거짓말 없는 밤이 지속되었다
혀 없는 고양이 두시는
버려진 괘종시계에서
두 시를 물어뜯었다
아무도 모른다
두 시가 없는 시계
두 시가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끝나지 않는 라디오를
영원히 들으며
오래된 영화 음악 속에서
어쩌면 이 세계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두 시의 연인
두 시의 오해
두 시의 자살
같은 것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두 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두시 속에서
지겹게 곰팡이를 피우며
착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갈
두 시의 파국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장수진
【산책】
오후 두 시를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벽 두 시?
어정쩡한 시간
밥을 먹고 약간 졸리는, 나른해져오는 그러나 아직 배부른
오후 두 시
잠들기엔 아직 고민거리가 남은 시간,
깨어있기엔 새벽이 아직 먼 시간
새벽 두 시
고양이는 잠들어 있을까.
낮잠이거나
혹은 깊은 밤의 꿈 속.
고양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
흰 두부에 혀를 빠뜨리는 어리석은 바보는
감옥에라도 다녀온 것일까.
◆
혀가 없어도 고양이는 사물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맛을 느낄 수는 없다.
혀가 없어도 고양이는 울 수 있을까.
추가 없어도 괘종시계는 울 수 있을까.
고양이가 물어뜯은 것은 시계일까.
시간일까.
흘러가는 시간을 물어뜯어서 멈춰 세울 수 있을까.
◆
두 시가 없는 시계
두 시가 사라진 세계에서
두 시를 건너뛰고 어디로 넘어갈 수 있을까.
두 시가 없는 3시.
두 시가 지워진 15시.
◆
라디오에서 2시의 데이트라는 음악방송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엔 두 시의 연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두 시의 오해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두 시의 자살도 발생했을 수도 있다.
과거나 추억 같은 것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다.
◆
혀 없는 고양이 ‘두시’는
푸른 베일을 쓴 채
한쪽 발로
초승달의 목을 밟고 있다, 파르르
파르르 달은 숨이 할딱거린다
파랗게 점점 파랗게 미미한 파도처럼
살짝
살짝 치 떨던 달은
차갑게 식는다
모든 낭만의 밤은 끝났다
★
보름달이 뜨는 밤은 밝다. 그러나 위험하다.
초승달은, 눈에서 떨어져 나간 눈썹 같은 초승달은 창백하다.
고양이가 달을 밟아서 죽이듯
연인들이 죽어나간다. 목을 맨다.
낭만이라는 말은 떠난 사랑과 함께 차갑게 식는다.
★
고양이의 작은 발 주먹 아래서
두시의 등 뒤로 가끔 해변이 열리고
닫히고
누군가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거짓말 없는 밤이 지속되었다
★
젊어서 죽은 가수의 노래를 십수 년 뒤에 다시 들어보면
슬픔이 자꾸 기어 올라온다.
유명해서 잘 따라 불렀던 노래보다
귓가엔 익숙하지만 입술에만 맴돌던
두 번째, 세 번째 노래가 가슴을 툭툭 치면서
슬픔은 거듭 거듭된다.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처럼.
해변에는 사람이 서 있고,
해변을 거니는 사람이, 혹은 단 한 사람이……
해변이 닫히는 것은
세계에서 두 시가 사라져서일까.
★
거짓말 없는 밤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진실이 뒹굴고 있을까.
차라리 달콤한 거짓말이 그리울 테지.
진실처럼 아픈 게 또 어딨니.
★
착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갈
두 시의 파국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불행은 언제나 한꺼번에 밀려들고,
착한 사람들은 무더기로 죽는다.
불행한 착한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파국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두 시는 사라졌다.
◆
시간의 빈 틈 속으로
착한 사람들이여,
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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