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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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by 브린니 2021. 1. 17.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키냐르가 음악을 테마로 쓴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이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생트 콜롱브는 아내를 잃고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생트 콜롱브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으며 아내가 죽자 상심에 빠져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생트 콜롱브는 딸들이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르쳤고, 마들렌이 9살, 투아네트가 5살 때 처음으로 세 사람이 삼중주를 연주했다.

 

아내가 죽은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렸고, 5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날 그는 친구 보클랭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수의를 입은 채 촛불과 눈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생트 콜롱브는 집안에 틀어박혔고, 음악에만 몰두한 탓에 비올라 다 감바 명인이 되었다.

 

그는 정원에 오두막을 짓고, 하루 열다섯 시간씩 연습했다. 그는 비올라 다 감바를 장딴지에 대지 않고 양 무릎 사이에 놓는 방식을 찾았다.

훨씬 더 무게감을 실어주고 훨씬 더 우울한 톤을 만들기 위해 저음의 현을 하나 더 덧붙였다. 손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검지와 중지만 사용해 말총 활 위에 살짝만 힘을 실어주는 활 기법을 고안했다.

 

그것은 탁월한 기교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그가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을 모방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퐁카레 부인의 요청으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기도 했고, 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삼중주를 연주했다.

보름에 한 번씩 열리는 생트 콜롱브 가족의 삼중주를 보러 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왕에게까지 생트 콜롱브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리자 왕은 왕실악단의 케녜를 보내어 생트 콜롱브를 왕실실내악단의 일원으로 일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생트 콜롱브는 두 차례나 거절했다. 음악은 왕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그저 두 딸과 조용히 사는 삶을 택했다.

 

어느 날 생트 콜롱브는 간식거리를 준비해놓고 죽은 아내를 위해 지은 <회한의 무덤>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나타나 조용히 그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아내가 떠난 자리에는 반쯤 마신 포도주잔과 반즘 갉아먹은 고프레가 남겨져 있었다.

 

아내는 가끔씩 나타나 그의 연주를 듣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음악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고, 그의 깊숙한 곳에서 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훨씬 평온해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이름은 마렝 마레였다. 두 딸들은 그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생트 콜롱브는 그에게 연주를 시켜보고는 제자 삼기를 거절했지만 딸들의 요청으로 마렝 마레에게 자작곡을 연주해보라고 주문했다. 생트 콜롱브는 마렝 마레의 연주에 약간 마음이 움직여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마렝 마레는 생트 콜롱브의 집에 드나들면서 큰딸 마들렌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얼마 뒤엔 작은딸 투아네트와도 관계를 하게 된다.

 

그 사이 연주 실력이 향상된 마렝 마레는 궁중 음악가가 된다. 출세를 했지만 그는 생트 콜롱브의 연주를 잊지 못해 그의 집을 자주 찾아온다.

 

마렝 마레는 더 이상 마들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마들렌은 마렝 마레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데 죽은 아이가 태어난다.

 

마들렌은 아버지에게 마렝 마레가 마들렌을 위해 작곡한 <꿈꾸는 여인>을 연주해달라고 했다. 생트 콜롱브는 투아네트를 통해 마렝 마레에게 마들렌을 보러 오라고 요청한다.

 

처음엔 요청에 응하지 않던 마렝 마레가 마들렌을 보러 다녀간 뒤 마들렌은 천장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마렝 마레는 일과가 끝나면 거의 매일 생트 콜롱브의 오두막으로 달려와 생트 콜롱브의 연주를 엿들었다. 그러나 마들렌이 죽은 뒤로 생트 콜롱브는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

 

추위가 살을 에는 날 마렝 마레는 오두막 문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 생트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 현을 멍하니 퉁겨댈 뿐이었다. 활로 우울한 톤을 몇 줄 그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연주는 무심한 듯, 노쇠한 듯, 황량한 듯했다.

 

생트 콜롱브는 딸들과 함께했던 <사콘 뒤부아>를 연주했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했다. 문 뒤에서 엿듣던 마렝 마레 역시 추위 때문에 한숨을 내쉬다 그만 오두막 문을 건드렸다.

 

생트 콜롱브는 문밖을 향해 물었다.

“고요한 이 밤에 한숨을 쉬는 자가 누구요?”

 

“궁을 도망쳐서 음악을 찾는 이요.”

마렝 마레가 대답했다.

 

생트 콜롱브가 다시 물었다.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

마렝 마레가 대답했다.

 

생트 콜롱브와 마렝 마레는 마주 보고 앉았다.

 

마렝 마레가 물었다.

“선생님 마지막 수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첫 수업을 해도 되겠소?”

생트 콜롱브가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생트 콜롱브와 마렝 마레는 생트 콜롱브가 작곡한 <눈물들>을 연주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오직 음악을 위해서 살아온 생트 콜롱브의 삶을 통해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인간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음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에 온 삶을 바친 사람 혹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생트 콜롱브는 아내를 기억하면서 연주한다. 그때 아내가 나타난다. 바람이 된 아내의 영혼이 나타나 그의 연주를 듣고 그가 준비한 식탁에서 포도주와 과자를 먹고 마신다.

 

그러나 생트 콜롱브는 아내를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다. 연주가 끝나면 아내도 떠나고 없다.

 

아내는 음악과도 같다. 음이 연주되는 동안엔 살아 있지만 연주가 끝나면 죽는다. 아내의 영혼은 음악처럼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생트 콜롱브는 오르페우스처럼 아내의 영혼을 저승으로부터 불러낸다. 아내는 그의 연주를 아주 흡족하게 즐긴 뒤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

 

왕도 생트 콜롱브의 연주를 듣고 싶어하지만 듣지 못했다. 왕은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지만 자신이 직접 그의 오두막으로 와서 연주를 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왕은 진짜 음악을 들으려는 게 아니라 유명인사를 자신의 궁으로 불러 쇼를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왕에게 음악이란 그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마렝 마레는 궁중음악가가 된 뒤로도 생트 콜롱브의 오두막을 찾아와 몰래 생트 콜롱브의 연주를 듣는다.

마렝 마레는 두 딸을 훔친 도둑이면서 생트 콜롱브의 음악을 엿듣는 첩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트 콜롱브는 마렝 마레를 끝내 거부하지는 않는다.

 

생트 콜롱브는 마렝 마레가 늙은 자신을 대신해 비올라 다 감바 연주를 이어나갈 전수자로 여긴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음악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것은 순수한 마들렌의 사랑이 버림받고 찢겨진 뒤에도 음악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연주되는 동안에만 살아 있고, 연주가 끝나면 죽는 것이지만 다시 새로운 연주가 시작되면 되살아 난다.

 

죽은 아내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저승에서 돌아와 앉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아침은 결코 똑같은 아침이 아니다.

 

아침이란 늘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의 아침과 내일의 아침은 분명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은 오늘의 연주가 다르고 내일의 연주가 다르다.

 

그리고 새로운 음악(곡)이 계속 탄생하면서 늘 새로운 아침을 맞이 한다.

 

 

비올라 다 감바 viola da gamba

16-18세기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현악기로 다시 사이에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라는 뜻이다.

16세기 스페인의 비우엘라 데 마노, 비우엘라 데 아르코를 거치고, 이탈리아의 비올라 다 감바로 이어져 유럽 전역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거장시대(1660-1740) 동안 생트 콜롱브, 루소, 마레 등이 주요 연주가였다. 비올라 다 감바는 오늘날에도 다시 부활되어 연주되고 있는데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음악을 맡은 조르디 사발이 대표정인 명장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친구이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프랑스, 1991)

감독 알랭 코르노 주연 장 피에르 마리엘, 제라르 드파르디 외

 

https://www.youtube.com/watch?v=Zh0B5GMd5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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