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장수진 <친애하는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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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장수진 <친애하는 비애>

by 브린니 2021. 1. 4.

친애하는 비애

 

 

숲은 뒤집혀

불타고

 

불은 부리가 되어

탄 숲을 새의 눈 속에 넣고

날아갔다

 

돌아오기 위해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심부름을 했지

 

불은 내 거야

 

―장수진

 

 

【산책】

 

비애 : 슬플 悲 슬플 哀 ― 슬프고 거듭 슬프다 : 슬픔과 설움

예문) 그는 친구의 배신에 비애를 느꼈다.

 

 

누군가 철저하게 배신하고 떠난 뒤 그의 슬픔은 불과 같이 타올랐다.

그의 슬픔은 저주였고, 죽음이었다.

 

숲을 온전히 다 태울 만큼 크고 거대한 분노의 파도가 마음을 뒤덮었다.

불붙은 마음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피안을 향해 날아가는 새, 그러나 돌아와야 한다.

슬픔과 분노 뒤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다른 무엇인가가 그의 불 때문에 대신 죽어야 했다.

그의 슬픔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만 씻을 수 있었다.

 

 

호주의 숲에 사는 솔개는 건조한 날씨 때문에 숲에 불이 나면 불 속으로 뛰어든다.

메뚜기를 잡아먹기 위해서.

 

그리고 더 큰 불을 내기 위해서

불타버린 숯덩이를 물고 들어가 나무들 사이로 던진다.

 

심부름을 했지

 

불이 더 깊은 숲으로 옮겨 붙는다.

불의 심부름꾼, 솔개.

 

불은 내 거야

 

솔개들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더 큰 불을 지르며 돌아다닌다.

 

 

삶의 비애는 숲을 태울 만큼 크고 깊다.

슬픔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

 

비애는 우울로 바뀌고 우울은 사람을 깊이 병들게 한다.

마음의 병은 몸을 썩게 한다.

 

보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의미 없음'이야말로 삶에서 죽음으로 첫발을 떼는 시작점이다.

돈이나 명예나 기타 어떤 것도 의미없다는 사실 앞에서는 무력하다.

 

우리는 무엇에든 의미를 부여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라도 부여해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찾아야만 한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의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 삶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의미와 가치를 찾지 마라.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당신은 가치 있다.

 

당신의 삶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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