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쾰마이어가 들려주는 <니벨룽의 노래>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미하엘 쾰마이어가 들려주는 <니벨룽의 노래>

by 브린니 2021. 1. 2.

‘니벨룽의 노래’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매우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은 언젠가 읽은 듯하지만, 사실은 읽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참에 확실히 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미하엘 쾰마이어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최고의 신화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힙니다. 그가 니벨룽의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니벨룽의 노래는 어떤 한 사람의 원작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춘향전이나 심청전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음유시인과 가인들에 의해 구전되어온 게르만 민족의 영웅 서사시입니다.

 

그래서 게르만 민족이 세운 나라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총 35편의 서로 다른 필사본과 단편들이 전해져 내려와 많은 작가들이 여러 필사본 중 하나를 선택해 재구성하거나 변형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창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프리드리히 헵벨의 비극 <니벨룽엔>(1862)과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1879)가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가 지금도 전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미하엘 쾰마이어는 많은 필사본 중에서 13세기 후반에 발견된 호엔엠스 필사본을 기초로 이야기를 전개하였습니다.

 

중세 유럽 문학의 진수로 손꼽히는 <니벨룽의 노래>는 이처럼 많은 창작자에 의해서 재탄생하면서 각각 다른 형태의 특징들을 보이는데, 쾰마이어는 특히 인물의 심리묘사와 성격묘사를 탁월하게 펼쳐서 신화와 동화를 넘나드는 이 환상적 이야기를 보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차갑게 혹은 치열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선 쾰마이어는 이 이야기가 정확히 언제적 이야기인지 모르나 대략 800년 전의 일이라고 역사적 위치를 잡아줍니다.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이라면 대략 1200년대라고 보겠습니다.

 

1200년대라면 십자군 전쟁이 진행중이며, 몽골이 강성해져서 유럽을 향하던 시기이니 전쟁과 긴장으로 험난한 상황이며, 흉흉한 소문과 함께 난세를 평정해줄 영웅을 구하는 각종 민담, 전설, 신화적 이야기들이 떠돌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북유럽의 많은 신화들도 문자화되어 정리되었습니다.

 

이때 부르군트 족의 영토인 보름스 궁정의 왕과 왕비에게는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왕은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이 평온했었다고 기억하게 될 거야.”

 

이 어지러운 시기에 나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왕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말을 듣고 자라난 세 아들은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마인드를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말처럼 정말 아무 일도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무기력한 세 아들이 나라를 이어받아 나누어 다스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 대신에 나랏일을 돌보는 신하 하겐이 오히려 일인자가 되고 맙니다. 하겐은 아름다운 공주를 사랑하고 있고 결혼하고 싶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질 수 없는 것을 은근히 뒤에서 조종하는 형태의 비열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을 비극으로 만듭니다.

 

공주를 찾아온 수많은 구혼자 중에 네덜란드 크센텐 왕국의 지크프리트 왕자가 있습니다. 그는 용과 맞서 싸워 이긴 후에 용의 기름에 몸을 적셔 몸에 전혀 상처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만 기름에 몸을 담갔을 때 보리수 잎 한 장이 등에 떨어져 심장 뒤쪽 보리수 잎 한 장 만큼이 기름에 닿지 않아 유일한 약점이 됩니다.

 

사실 그 보리수 잎은 우연히 떨어진 것이 아니고 지크프리트가 주변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자 화가 난 보리수 나무가 일부러 잎 한 개를 떨어뜨린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가 얼마나 판타지인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 미하엘 쾰마이어가 직접 등장해 자기 목소리로 독자에게 니벨룽의 인물들에 대한 비평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이제부터 동화로 들어간다고 설명해 주기도 해서 마치 현대적인 평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동시에 화난 보리수 나무의 결정적인 복수처럼 아이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유일한 아킬레스 건에 의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을 예감하는 전형적인 신화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이 상황과 신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한 비극적 성격의 필연성을 느낄 수 있어 치열하고 섬세한 묘사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미하엘 쾰마이어가 들려주는 <니벨룽의 노래>는 이렇게 다양한 매력이 뒤섞여 있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무튼 지크프리트는 비인간적인 힘을 지닌 멋진 왕자로서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공주 크림휠트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크림휠트의 오빠인 나약한 왕 군터와 간교한 조언자 하겐 사이에서 여러 가지 간계에 빠지기도 하고 서로 타협하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술에 취한 왕 군터는 지크프리트와 크림휠트의 결혼은 단독 결혼이 아니라 합동결혼식이 될 것이며, 또 한 쌍의 부부는 자신과 브린휠트라고 공언합니다. 그것은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는 사람이 흔히 그렇듯 술 취한 허풍이었습니다. 브린휠트는 아름답지만 어떤 남자도 이길 수 없을 만큼 힘이 센 여자였으며, 내기를 걸어 자신에게 진 구혼자는 가차없이 죽이는 마녀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술에서 깬 군터는 후회하지만 왕의 한 마디는 철회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지크프리트의 도움으로 브린휠트를 속이고 내기에서 이겨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 일 때문에 두 부부 사이에는 언젠가 들통나고 말 비밀이 생기고 결국 모든 걸 알게 된 브린휠트는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이 복수심을 뻔히 아는 하겐은 왕비 브린휠트에게 충성한다는 빌미로 그동안 증오해왔던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 유일한 약점을 아는 이는 오직 지크프리트의 아내 크림휠트뿐이었는데, 순진한 크림휠트는 간교한 조언자 하겐을 믿고 있었고 그 약점을 다 알려주었기 때문에 남편을 죽음으로 몰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의 걱정이 오히려 연인의 죽음을 자초하게 되는 이런 모티브 역시 수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합니다. 구전 설화가 그렇듯이 <니벨룽의 노래>에는 이런 원형적 모티브가 무수히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동화와 신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즐겁습니다. 결혼하지 않기로 작정하거나 미망인이 된 여인들이 스스로 탑 꼭대기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내는 모습도 많은 동화 속 여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남편 지크프리트의 죽음 뒤에 10여 년을 소리 없이 탑 꼭대기에서 살던 크림휠트는 돌연 헝가리 왕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여 떠난 뒤 아들을 낳고 과거를 잊은 듯 조용히 지내다 보고싶다며 자신의 오빠들과 하겐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그들을 성 안에 몰아넣고 불을 지른 후 모조리 죽입니다. 특별히 하겐과 첫째 오빠 군터는 끌고나와 직접 목을 자르라고 명합니다.

 

저자인 미하엘 쾰마이어는 중간중간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크림휠트가 조용히 지내던 순간 “그녀는 정말 그들을 용서했을까요?”라고 묻기도 합니다.

 

결론은 잔인한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세계를 알고자 탐구하고 모험하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고 그 속에서 강해지고 현명해지지만 행위의 상대성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원치 않게 상대방의 원한을 사기도 하며 배신을 당하기도 하여 서로 물고 물리는 감정의 격동 속에서 행해지는 간교한 계획과 복수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 속에서 생성되어지는 인물들의 성격과 행위를 통해 인간 군상의 다양한 욕망과 필연적 미움, 사랑 등이 개연성 있게 펼쳐집니다.

 

다만 남성 성격은 상황과 신분 때문에 어떻게 생성되어지는지 필연적으로 잘 설명된 반면, 여성 성격의 부분에서 다소 마녀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순수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이유 없이 남성들을 거부하고 구혼자에게 내기를 걸어 지면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이 역시 정신분석적으로 파고들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많겠지만, 거두절미하고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두 가지 이미지, 즉 순수한 사랑의 구원자로서의 이미지와 아름다우나 그것으로 남성을 위협하는 마녀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브린휠트는 남성보다 훨씬 힘이 세서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하는 설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힘은 약하나 마녀적 술수에 의해서 남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근육의 움직임에 의한 남성적 힘으로 대결하여 이길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설정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이 한계를 뛰어넘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역으로 마녀사냥까지 몰고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밑바닥 감정을 날것으로 만나는 치열함을 느낍니다. 원형적 이야기들이 일깨우는 인간 무의식의 면면을 보게 됩니다. 미하엘 쾰마이어는 선홍색 피가 선연하게 팔딱이는 그것을 세련된 필체로 슬쩍 감싸안아 조금은 편안하게 들려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