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현 <인생의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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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정재현 <인생의 마지막 질문>

by 브린니 2020. 12. 31.

연세대에서 철학을,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대 교수를 거쳐 연세대에서 재직하고 있는 정재현 교수의 책이다.

 

인생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제목은 이상의 질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면 상당히 안타깝다.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알아야 것을 알았다는 뜻이고, 남은 삶은 어쩌면 무의미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상당히 교만한 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진심으로, 실제로 든다면…?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질문이며, 그래서 지금쯤 생을 마감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단지 교만함이라고 말할 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을 집어들었다. 본문의 1,2,3장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 있다. 그래서 한참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마지막 4장에 분이 말하고자 하는 마지막 질문이 농축되어 있는 같다.

 

4장의 소제목은기도의 이다. 우리 속에 꼿꼿이 정신이 있는 최후의 작업은 기도라는 아는 사람이 있는 제목일 것이다.

 

기독교 배경을 가진 이가 말하는기도라는 낱말에이라는 낱말이 조합된 것을 보면, 다음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이 간다. ‘이라는 낱말 뒤에는 이미 다석 류영모와 함석헌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분 역시 기독교적 배경과 함께 기독교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적 관념을 가지고 이야기할 거라는 생각을 있다. 그렇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

 

기독교 낙관주의를 넘어서게 하는 것은 고통이다. 겟세마네 예수의 기도를 경험하게 되는 고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것은 평면화된 교리의 도그마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당연히 엔도 슈샤쿠가 거론된다. 그를 노벨상 후보로 만든 하나님의 <침묵> 거론되지 않을 없는 이유다.

 

침묵하는 하나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기도를 통해 의지가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먼저 , 인간이 이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예수의 성상을 귀하게 여겨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성상을 밟는 따위가 가릴 없는 것이 신의 크기임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서 모든 종교적 도그마를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바로 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믿어온 것을 역전시키는 행동을 가능케 하는 , 신에 대한 무지를 고백하는 , 오히려 신에 대한 불경한 행동이 신의 뜻이 있음까지 수용하는 , 그리하여 형상화될 없고 표현될 없고 형언할 없는 신에게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 길까지 가는 동안 생기는 무수한 물음들이 4장에 수놓여 있다.

 

물음을 좇아 저자가 걸어온 , 기독교적 배경을 넘어 동양종교를 섭렵하며, 인간과 신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물음들에 진지하게 던져온 그의 사상사가 지나온 많은 세계 사상가들의 길과 겹쳐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목은삶이라는 물음의 끝에서 마주한 천년의 지혜이다.

 

모든 종교 사상들을 뛰어넘어 종합하는 한마디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신과 인간이서로 소중히여겨야 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부분을 인용하면서 지고의 선은 신과 인간이 서로를 소중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여 스스로 인간이 되어 인간을 대신해 죽을 만큼 인간을 소중히 여겼다. 인간은 삶의 지난한 고통 속에서 때때로 나를 버린 것처럼 침묵하는 신에 대하여 그의 신실함을 믿기에 신음하면서도 암흑을 신실하게 지나는 모습을 통해 신을 소중히 여긴다.

 

그렇게 서로 소망하는 , 신과 인간이 서로 만나기 위해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 그것이서로 소망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깨달음이 진실일까, 허상일까?” 귀결될지 모른다. 그렇게 믿고 죽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음이 진실이라는 것을 죽은 후에는 알게 될지, 죽은 후에도 모르게 될지 아무도 확신할 없다.

 

그래도 괜찮다. 거기까지 깨달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그것을 진실로 믿고 죽을 수 있다. 그것이 깨달음의 힘이다.

 

그러나 책을 덮은 조금은 허망하고 불안하다. 아직 살아야 날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 깨달을 없단 말인가?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질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살았다. 깨달았다. 인생은 끝났다. 남은 인생,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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