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프란시스 잠 <햇살을 받아 유리병의 샘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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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프란시스 잠 <햇살을 받아 유리병의 샘물이>

by 브린니 2020. 12. 30.

햇살을 받아 유리병의 샘물이.....

                                 - 샤를 드 보르도에게

 

 

햇살을 받아 유리병의 샘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농가의 담벼락 돌은 낡아 부서졌고,

물기 어려 윤기 나는 이끼 밭처럼

푸른 산들은 부드러운 능선을 짓고 있었다.

강물은 탁했고, 강이 핥아 무너진 강기슭에서

나무뿌리도 거무튀튀하게 틀려 있었다.

땡볕 아래서 사람들은 햇빛에 흔들리는 풀을 베고,

개는 옆에서 눈치를 보며 의무처럼 처량하게 짖어 댔다.

거기서도 삶은 꾸려지고 있었다. 한 농부는

강낭콩을 훔치는 여자 거지를 다그치고 있었다.

담벼락은 검은 돌로 쌓여 있었고,

정원에서는 배 냄새가 훈훈하게 풍겨 오고 있었다.

경작지는 꼴 베는 연장을 닮아 있었다.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아스라이 기침하듯 울려 왔다.

그리고 하늘은 희푸르렀고, 밀짚 우리에서는

메추라기들의 무겁게 날다 잦아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프란시스 잠(프랑스, 1868-1938)

 

 

【산책】

 

풍경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된다.

 

햇살을 받아 유리병의 샘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첫 구절만으로 시가 된다.

 

유리병에 담아놓은 샘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옛날의 샘물은 지금 마트에서 파는 생수보다 맑고 시원했으리라.

 

백년 전만 해도 미세먼지 없는 공기와 그냥 마실 수 있는 냇물이 흘렀다.

옛날은 그저 옛말이 되었다.

 

풍경은 이제 사진이나 영상에서나 볼 수 있다.

이토록 정겨운 풍경을 시로 쓴다는 것은 그저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거기서도 삶은 꾸려지고 있었다.

 

옛날처럼 지금 여기서도 삶은 꾸려지고 있다.

숲의 풍경은 도시의 빌딩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살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지만,

아마존의 나무들이 송두리째 베어지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은 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프란시스 잠이 살았던 옛날을 거의 까맣게 잊었지만.

 

 

어린 시절 살았던 산언덕빼기 동네엔 작은 폭포가 있었다.

거기 올라가 웅덩이를 향해 뛰어내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헤엄을 치지 못한다.

유년의 기억을 잊은 것처럼 헤엄치는 법도 잊었다.

 

그 동네 교회에는 마당에 아주 큰 대추나무가 있었다.

덜 익은 대추를 따려고 나무에 매달려 흔들어대곤 했다.

 

배가 부르도록 대추를 실컷 먹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는 대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입맛도 변했다.

그 교회에는 종탑이 있었고, 종소리는 매우 청명하게 울렸다.

 

종에 아주 긴 줄이 있어서 비쩍 마른 사찰 아저씨가 줄을 당기면서 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저씨는 종 속에서 빠져나와서 곡예를 하듯 하늘을 날았다.

 

수요일에는 언덕 밑 밭에서 감자를 서리를 해다가 교회 뒷마당에 숨겼다.

그리고 종소리를 들었다.

 

죄를 지은 아이들은 기침을 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걸 먹었고, 얼마 뒤 집을 나가서 죽었다.

 

 

그러나 하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높고 푸르다.

해는 날마다 떠오르고 저녁을 붉게 물들이고 진다.

 

그렇다.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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