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나는 탈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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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나는 탈주자>

by 브린니 2021. 1. 2.

나는 탈주자

 

나는 탈주자

태어나자마자

그들은 날 내 안에다 가뒀지.

아, 그러나 난 도망쳤어.

 

사람들이 만약

같은 장소를 지겨워한다면,

같은 존재는 어째서

지겨워하지 않는가?

 

내 영혼은 나를 찾아다니지만

나는 숨어서 피해 다닌다.

바라건대 그것이 절대

날 찾지 못하기를.

 

하나로 존재한다는 건 사슬.

나로 존재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나는 도망치며 살겠지만

제대로 산다.

 

                                                             1932. 4. 5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는 ‘나’라는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에 갖히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수많은 다른 이름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도 자신의 본명 말고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마도 두 개의 삶, 혹은 여러 사람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모양이다.

 

필명을 쓰는 어느 소설가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필명으로 알아보기 때문에 본명으로 무엇을 할 때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되어 딴짓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 말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

내가 지금 여기 말고 다른 거기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고, 그런 삶을 꿈꾼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였다.

 

아니, 나는 나여야만 한다.

내가 오직 나로서만 존재할 때

내가 오로지 하나의 인격으로만 존재할 때

이때가 가장 ‘나’일 수 있다.

 

다른 나는 내가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다.

 

내가 오로지 나에게 충실한 나일 때 그것이야말로 나의 삶이다.

인생이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로서만 사는 것이다.

 

그것을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어쩌면 운명은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나에게 묶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개의 나를 원한 페소아의 욕망을 욕

할 수 없다.

또 그가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를 뭐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가 원한 대로 사는 것 역시 그의 삶이니까.

 

다만 그는 현실에서는 그 자신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가 예술의 영역에서만큼은 여러 개의 자아를 지닌 다중적인 예술가였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주했기에 오늘날 그의 시가 그의 산문이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이 그가 죽은 뒤에도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장르의 숱한 글을 썼지만

평생 시인으로 불리기 원했던 페르난두 페소아,

 

자기 자신을 넘어선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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