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대학로 나들이
본문 바로가기
슬기로운 일상생활

성탄절 대학로 나들이

by 브린니 2020. 12. 26.

성탄절 저녁나절 대학로에 나가 보았습니다. 연애시절 대학로, 창경궁과 창덕궁 길을 겨울 내내 걸어다니며 데이트를 했던 기억을 좇아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20대 청춘을 거의 대학로에서 보냈지만 결혼 후에는 삶의 터전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었기에 정말 오랫동안 대학로를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성탄절 오후에 대학로에나 가서 예전처럼 걸어 볼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살짝 설레기도 하고, 연애시절 기분이 되살아날까 반신반의 하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을지로, 종로, 장충공원길 모두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고, 대학로에 진입했지만 거리는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휩쓴 상황이기에 성탄절인데도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고, 건물들은 모두 불을 끄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골목에 차를 세우고 음식점과 카페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카페는 불을 켜고 영업 중이었지만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기에 텅 비어 있었고, 음식점도 붐비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에 세워진 성탄 트리만이 어두운 거리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열리던 야외 공원의 벤치에도 불이 들어와 있지만 공원의 텅 빈 어둠을 조금은 밝히고 있네요. 포토존에서 커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서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걸었던 대학로 골목을 둘러보며 예전에 갔던 카페와 식당을 찾았습니다. 아직 문을 열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도 한두 곳 있었지만 대부분 새로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엔 그 카페가 있던 자리였는데…… 여긴 그 식당이 있었는데……

 

 

연극을 참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그때 소극장들이 지금 여전히 문을 열고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반가웠고, 또 사라진 극장들도 있네요(아니, 없네요).

 

 

 

 

 

 

 

추억은 여전히 10년도 훨씬 넘은 옛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장소와 공간은 거의 대부분 변하고 없었습니다.

 

 

부재不在하는 것들이 아름다운 탓일까요?

추억은 지금 여기 없는 것을 머릿속에만, 마음에만 간직하고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추억 속의 장소를 보러온 것일까요?

아니면 ‘없는 것’을 보러온 것일까요?

 

 

아니면 추억의 시간을 걸어보기 위해 여기 온 것일까요?

아마도 기억을 걷는 시간을 다시 느끼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모든 것이 다 바뀌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카페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고, 여기선 무슨 선물을 주고받았지.

청혼을 하고 청혼을 받고 기뻐하며 청혼을 받아들였던 카페는 어디였을까?

 

그 장소와 공간은 지금 없어도 청혼은 결혼으로 바뀌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대학로 골목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소의 100분의 1, 정도 될까 말까 정말 적은 수의 커플들이 추위에도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짧은 미니스커트로 멋을 낸 여성도 있고, 남자친구 품에 안겨서 길을 걷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피자 가게에 사람들이 꽤 모여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에 카페가 있었는데 흰 색 건물은 그대로 있는데 피자집으로 바뀌었네요.

 

 

오늘 저녁은 피자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옛날에 갔던 그 피자집을 찾아 보기했습니다. 어느 연예인이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들여온 나폴리식 화덕피자를 파는 곳이지요.

 

대학로 골목에는 카페와 술집, 식당뿐만 아니라 소극장도 많이 있고, 옷가게도 있고, 액세서리 가게도 있습니다. 빵가게, 사진관, 도장 파는 집, 서점과 꽃집과 마트도 있고요.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어울리는 곳에는 있어야 할 것들도 참 많습니다.

 

 

 

 

 

 

 

 

사람 사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생활에는 정말 자질구레하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 많고, 그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삶을 만들고, 추억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여기가 예전에 우리가 그 시절엔 흔하지 않던 화덕피자를 먹었던 곳입니다. 그때 그 맛이 날지 아니면 그저 추억만 되씹게 될지 기대반 의심반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건물의 외양은 그대로인데 인테리어도 많이 바뀌었고, 분위기도 달라졌네요. 피자를 주문하고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자리까지 배달한 것은 로봇이었습니다.

 

이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로봇이 들어서고 점점 더 세상이 편리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냥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옛 추억에 젖어 피자를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와보니 달이 높이 떠 있습니다.

 

 

 

성균관대 앞길과 창경궁까지 걸었습니다. 예전에 눈이 아주 많이 오던 날 이 길을 하염없이 걷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도 이 길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세상에 두 사람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쉬지 않고 떠들면서 걷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정지하고, 사람이 멈춘 시대, 거리엔 성탄노래도 없고, 불빛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고, 그 사람들이 살면서 추억을 만듭니다.

 

 

옛날 이 거리를 걸었던 기억을 십수 년이 지나도 기억하듯이 오늘 우리가 텅 비고, 불 꺼진 대학로를 걸었던 것도 추억으로 남아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겠지요.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죄로 감옥에 있으면서 신문쪼가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여러 번 읽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입니다. 사람은 추억이 있다면 그 추억 때문에 감옥에서의 삶도 견딜 수 있다고.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생의 기억을 되새기며 오늘을 견디고 사는 것이겠지요. 그 설령 그 추억이 행복하지만은 않더라도 혹 아프고 슬픈 기억이더라도 그것들을 되살리며 과거의 삶을 통해 미래를 가늠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겠지요.

 

 

성탄의 밤, 당신은 어떤 기억을 되새기며 어떤 추억을 만들고 계신가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함께 하는 시간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부하고 소중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MARRY CHRISTMA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