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캠핑 맛보기 ― 태안 곰섬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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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겨울 캠핑 맛보기 ― 태안 곰섬 캠핑장

by 브린니 2020. 12. 21.

곰섬 캠핑장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903-34

 

 

캠핑을 20년 동안 즐겨온 분이 있어 따라 나서기로 했습니다.

우선 캠핑 용품을 대여하고, 캠핑장 예약을 했습니다.

 

캠핑 3일 전 물품이 도착했습니다.

주말 오전엔 이것저것 장을 보고 드디어 캠핑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금요일부터 그곳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주말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겨울 바다를 보면서 하룻밤 밖에서 지내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가서 저녁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오는 것이 여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방식의 짧은 외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을 보면서 힐링을 하고, 자동차 안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캠핑이라니. 사실 여행은 고생하면서 하는 거라지만 아직까지는 집밖에 나오면 고생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좋은 호텔과 맛깔나는 음식,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받는 여행이라면 경비를 들여서도 가끔 갔다 오고는 했지만요.

 

하지만 인생의 첫 캠핑이라니 살짝 설레기도 했습니다. 길병민의 앨범 <꽃때>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는 분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낯선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텐트 옆, 작은 화로에 불이 지펴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불을 피워놓고 기다린다는 것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에 바다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바다는 저녁노을이 조금씩 번지고 있었고,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경계가 서서히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곰섬 해변은 모래사장은 그렇게 크지 않고, 돌무더기도 많아서 해수욕을 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습니다.

대신 해변에 솟은 커다란 바위와 바위틈으로 솟은 소나무가 인상적이었으며 바위를 끼고 돌면 숨어 있던 또 다른 해변이 나오는 식으로 아기자기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방파제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해변 한가운데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저녁 식탁을 차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곰섬 캠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고 있었지만 매우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코로나가 극성이라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로 와서 차분하게 바다와 해변을 즐기면서 그분들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저녁식사를 하려고 모였습니다.

 

 

오늘 저녁은 소고기 등심 약간과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브라질산 닭다리 등 고기 파티입니다.

우리를 초대한 분들이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 만찬으로 배를 채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대충 마트에서 고기를 사왔는데 그분들은 미리 고기를 사서 시즐링을 하고 숙성해서 고기를 준비해온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닭고기를 먹었습니다. 와우, 장작불로 석쇠에 구운 고기는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고소했습니다. 닭고기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고, 마른 장작의 불맛까지 입혀져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등심 몇 조각으로 입가심을 하고, 통으로 가져온 숙성한 삼겹살과 목살을 두껍게 썰어 입에 넣었습니다.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씹는 즉시 목을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와인을 조금씩 곁들이니까 멋진 호텔 야외 라운지에서 스테이크를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장작불은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서 웃고 떠들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장작불 사이에서 타는 솔방울도 아주 예쁜 모양으로 빨갛게 불꽃을 피워올립니다.

 

 

낯선 분이 직접 로스팅 했다는 코스타리카산 커피도 한 잔 마셔봅니다. 약간 쓴 맛이지만 깊고 진한 향과 맛을 냈습니다.

커피를 마시다 보니 달콤한 게 당겨서 말을 꺼냈더니 당장 마시멜로가 등장했습니다.

 

마시멜로를 꼬치에 꿰서 불에 구우니까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립니다.

한 입 입에 물면, 와, 달콤함의 끝판왕입니다.

 

뜨거운데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립니다.

너무 달아서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곁들여 먹었습니다.

하얀 마시멜로와 빨간 딸기의 환상적인 조합입니다.

 

고기를 실컷 먹고, 와인과 커피 그리고 마시멜로와 딸기와 방울토마토.

디저트까지 완벽한 저녁식사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분들께 말했었죠.

“우리는 캠핑의 고생은 싫고, 혜택만 누리고 싶다”고.

정말 말 그대로 된 것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 숲에서 장작불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저녁만찬을 즐기는 것은 캠핑의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혜택을 더 누리고 싶어서 다음에는 우리가 재료를 다 준비할 테니까 다시 한 번 초대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불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습니다.

불멍(불 앞에서 멍 때리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그분들은 일찍 텐트로 돌아가고 우리는 해변을 좀더 걸었습니다.

 

 

2인용 텐트는 너무 비좁았습니다.

다행히 그분들이 전기장판까지 마련해 주시는 바람에 텐트 안은 매우 따뜻했습니다.

코끝으로 외풍이 지나가는 것만 빼고는 아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로 쇼미더머니까지 한 시간 시청했지만 잠들 수 없었습니다.

두어 시간을 뒤척인 뒤 다시 일어나서 해변을 걸었습니다.

 

간절하게 불이 그리웠습니다.

텐트 앞에 다시 불을 피우고 불멍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불도 장작도 없었습니다. 그저 숯을 품고 있는 화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풍요로운 저녁식사와 불멍까지가 최고의 캠핑이었습니다.

텐트에서의 숙박은 좀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텐트로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두어 시간 잠들었을까 빗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비가 오다니!

 

정말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첫 캠핑에 비까지 오다니.

잠은 설치고, 텐트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난감했습니다.

 

그분들의 텐트에서 전화가 와서 날이 밝으면 텐트를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날이 밝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짐을 정리해서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바닷가를 벗어난 시골마을에는 눈이 제법 내린 모양이었습니다.

바닷가는 내륙보다 덜 추워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린 것이었습니다.

 

 

아, 눈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다에 눈이 내리고, 해변의 숲에도 눈이 내려 쌓이는 광경.

텐트를 열고 나왔을 때 눈 덮인 세상을 보았을 텐데.

캠핑의 진짜 맛을 보았을 텐데.

 

하지만 캠핑의 혜택만을 누리려는 우리들에겐 눈을 맞는 축복까지는 없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올해 첫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다음엔 우리도 스스로 용기를 내서 캠핑에 도전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해변이나 숲에서 불을 피우고 저녁식사를 한 뒤 충분한 시간 동안 불멍을 즐긴 뒤 깊은 밤이나 새벽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식의 무박 2일 캠핑!

 

밖에서 하룻저녁, 하룻밤이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낯선 분과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모래사장과 바위와 숲 사이에서 그리고 장작불 앞에서 보낸 주말 하루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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