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클래식 음반회사 도이치그라모폰(DG)와 전속계약을 맺어 화제가 된 소프라노 박혜상이 최근 데뷔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를 발매하였습니다.
한국인 중에서 도이치그라모폰과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소프라노 박혜상뿐이기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박혜상이 세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첫걸음은 2015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였습니다. 이때 연주한 곡이 도니체티의 <람머무어의 루치아>입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도니체티(1797~1848)는 희가극, 경가극 형태의 오페라부파로부터 고전적 비극이 주가 되는 오페라세리아로 바뀌어가는 시점에 있었던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 같은 오페라부파도 작곡하였고, <람머무어의 루치아>와 같은 오페라세리아도 작곡하였습니다.
특히 <람머무어의 루치아>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슬픈 작품이라고 불리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노래는 제3막의 ‘광란의 아리아’입니다.
소프라노 박혜상이 2015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연주하여 2위에 입상한 노래가 바로 ‘광란의 아리아’라고 불리는 “감미로운 목소리(Il dolce suono…)”입니다.
오페라의 내용을 살펴보면, 왜 이 노래가 ‘광란의 아리아’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됩니다.
람머무어 가의 아름다운 여인 루치아Lucia는 가문의 원수 집안인 레이븐스우드 가의 에드가르도Edgardo를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샘터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결혼을 맹세하고 반지를 교환합니다. 그리고 에르가르도는 나랏일로 프랑스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그러자 루치아의 오빠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에드가르도가 없는 사이에 루치아를 정략 결혼 시키려고 꾀를 냅니다.
오빠는 에드가르도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서 마치 루치아 외에 다른 여자가 있는 양 꾸며 루치아를 속입니다.
순진한 루치아는 충격을 받아 혼란에 빠지지만 루치아의 오빠는 서둘러 가문에 도움이 될 만한 상대 아르투로Arturo와 루치아의 결혼식을 준비합니다.
루치아가 오빠의 등살에 떠밀려 아르투로와의 결혼계약서에 서명을 한 그 시각, 프랑스로 떠났던 에드가르도가 돌아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드가르도는 두 사람의 결혼계약서를 보고 분노하여 루치아와 사랑의 약속으로 나누었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칩니다.
절망에 빠진 루치아, 그러나 이미 결혼 계약은 끝났고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몰려와 결혼을 축하하는 피로연을 성대하게 치릅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주재한 목사가 황급히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루치아가 남편 아르투로를 죽였습니다.”
충격의 피로연장에 나타난 루치아의 손에는 단도가 들려있고 잠옷에는 피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 ‘광란의 아리아Aria of mad scene'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에드가르도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소식으로 충격을 받았던 루치아가 배신의 쓰라림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사실 알고보니 그 소식이 거짓이었고 결국 자신이 에드가르도를 배신한 꼴이 되고 말았다는 현실과 그로 인해 에드가르도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고, 이제 자신은 결혼계약에 서명을 하여 엉뚱한 남자의 신부가 된 현실 속에서 루치아는 그만 정신이 나가 버립니다.
손과 옷에는 피가 가득하지만 루치아는 전혀 다른 망상 속에 사로잡힙니다. 그 환영 속에서 루치아는 에드가르도와의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의 환영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에게 주셨고,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면서 황홀한 기쁨에 싸여 노래합니다. 하지만 그 환영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고통 속에 펼쳐지는 것이기에 이 노래는 극과 극의 두 감정이 공존하는 ‘광란의 아리아’가 됩니다.
최고의 기교를 자랑하는 소프라노 콜로라투라가 결혼식 장면을 노래하는 황홀한 목소리와 환상적인 연주 속에 살인의 번득이는 공포와 고통,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하는 이 곡은 뛰어난 실력이 아니라면 전혀 그 맛을 살릴 수 없는 고난도의 아리아입니다.
고통 속에 실성한 루치아의 이 아름답고 구슬프며 비극적이고도 광적인 아리아는 듣는 이들의 눈과 귀, 마음을 온통 사로잡습니다.
특히 박혜상의 뛰어난 연기력은 이미 배우의 흡입력 이상을 보여주어 뛰어난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표현력에서 이미 루치아 이상을 보여줍니다.
가사를 보면서 박혜상의 연주를 함께 들으면 그 연기와 목소리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Il dolce suono mi colpì di sua voce!
그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두드렸네!
Ah, quella voce m'è qui nel cor discesa!
아, 그 목소리가 나의 심장으로 들어왔네!
Edgardo! io ti son resa. Edgardo! Ah! Edgardo, mio! Si', ti son resa!
에드가르도, 나는 당신에게 항복했어요! 아! 나의 에드가르도, 그래요 나는 당신께 항복했어요!
fuggita io son da' tuoi nemici. (nemici)
나는 당신의 적으로부터 도망쳤어요.
Un gelo me serpeggia nel sen!
싸늘한 한기가 내 가슴에 느껴져요!
trema ogni fibra!
온 몸이 떨려요
vacilla il piè!
다리가 흔들려요
Presso la fonte meco t'assidi alquanto! Si', Presso la fonte meco t'assidi.
잠시 샘 가까이에 나와 함께 앉아요
Ohimè, sorge il tremendo fantasma e ne separa!
아아, 무시무시한 유령이 나타나 우리를 갈라놓네!
Qui ricovriamo, Edgardo, a piè dell'ara.
여기로 피합시다, 에드가르도여, 제단의 아래로
Sparsa è di rose!
장미가 뿌려져 있네요!
Un'armonia celeste, di', non ascolti?
천상의 하모니가 말해줘요, 들리지 않나요?
Ah, l'inno suona di nozze!
아, 결혼식 축가 소리가 들려요
Il rito per noi s'appresta! Oh, me felice!
우리들을 위한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어요! 오,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Oh gioia che si sente, e non si dice!
오, 환희가 느껴져요,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기쁨!
Ardon gl'incensi!
향이 타들어가고 있네요!
Splendon le sacre faci, splendon intorno!
성스러운 횃불이 타오르고, 주변을 환하게 밝히네!
Ecco il ministro!
여기 신부님이 오시네!
Porgimi la destra!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요!
Oh lieto giorno!
오 행복한 날!
Al fin son tua, al fin sei mio,
마침내 나는 당신의 것, 마침내 당신은 나의 것,
a me ti dona un Dio.
나에게 당신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Ogni piacer più grato,
모든 기쁨에 더욱 감사해요
mi fia con te diviso
나로 당신과 함께 하게 하네요
Del ciel clemente un riso
하늘의 저 온화한 웃음
la vita a noi sarà.
삶은 우리에게 그 웃음을 줄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6YewFhT0fDM&lc=UgiFloTODRbjiXgCoAEC
이런 집중력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녀의 혼신의 노래가 아마도 세계인의 가슴을 흔들었나 봅니다. 이제 그녀의 행보를 바라보며 더욱 멋진 연주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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