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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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by 브린니 2020. 11. 22.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

 

 

사람들은 왜 산문집을 읽을까. 깊은 시의 향기도 아니고, 흥미로운 스토리도 아닌 약간 심심한 내용과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산문집을.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소소하고 달달하고, 늘 먹는 심심하고 간이 덜한 음식처럼 정갈한 맛을 느끼게 하고 일상의 행복감을 되살리는 산문집의 매력 때문이다.

 

작은 이야기를 속에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라고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삶의 품격을 더하는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산문집을 읽으며 살면서 느끼는 이런 저런 감정들을 발견하고

그 감정들에 대해 공감하면서 일상을 추스르며 오늘의 소중함을 마음에 담는 것!

 

이병률의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에는 산문을 읽는 매력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의 푸르스름하고, 서늘하면서, 슬픔이 밴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는 것으로, 다른 덧붙이는 말들을 대신해도 될 것이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사랑을 하면 풍경을 진하게 보는 시인이 되고 시간 속에서 부자가 된다. 마른나무에 잎이 돋고 그 잎에 새가 와서 앉는다. 그렇다고 찬란한 날들만 만나게 되지는 않겠지만 전반부에는 요상한 것들이 요상하게 와서 충돌한다. 그럼에도 사랑을 하면 아프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아픈가’ 싶은 그 아리송함 자체가 속 터지게 아프다.

 

 

누굴 좋아하는 건, 기분 좋은 어느 맑은 날이 가슴에 한가득 들어와 있는 상태다.

 

 

 

바람에 동백나무가 잠시 흔들린 것뿐인데 나는 숨이 가빴다.

한때 버거워했던 누군가의 집 앞에서 서 있다는 것은, 그리고 집 안에 있던 그 사람이 식구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것은, 별안간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아 다리에 힘을 잃고 말 것 같은 것은…… 얼마나 황홀하도록 벅찬 일인가.

 

바람에 동백나무가 잠시 흔들린 것뿐인데 그 사람이 온 것처럼 바람 향이 나를 툭 치는 것 같아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바람의 향기보다 더 좋은 향기는 세상에 없다고 내가 언제 당신에게 나지막이 말했었다.

 

 

나의 허기를 가장 잘 채워주는 음식은 계란말이다. 아마 가장 손쉬운 요리이니 급할 때 감히 생각으로나마 엄두를 내는 것인지도.

 

날계란의 맛과 계란말이 맛의 다름과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겠지만 날계란의 반대말은 ‘계란말이’이다.

 

 

어느 먼 곳에서 목이 마르면 물잔 하나를 샀다. 그 밤이 너무 쓸쓸할 것 같은 때도,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은 친구를 꾹꾹 그리워하면서 역시나 술잔 하나를 샀다.

종일 찬바람을 맞아서 목이 칼칼하거나 몸살 기운이 닥쳤을 때는 국을 담기 좋은 움푹한 그룻을 샀으며 도무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날에는 칼을 사기도, 도마를 사기도 했다.

사면서 슬프기도 했으며 조금 나아지기도 했으며 그런 와중에 또 다시 허기 속으로 함몰되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 그 사람과 함께여서 맛이 두 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별 음식도 아닌데 그 사람하고 함께 먹으면 맛있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산을 넘을 때마다 생각한다. 힘겹게 산을 넘을 때마다 한 사람을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을 넘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 그대로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가졌다는 것은 한 사람을 등반하여 끝내 정상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전부를 머리에 가슴에 이고 지고 오른다.

 

 

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잠시 뭔가에 푹 빠져 지내고 싶은 무작정의 무엇, 우리가 원래 상태대로 돌려지고 싶은 어쩌면 회귀 욕망……

우리는 첫눈이 오면 꼭 만나자고 약속을 했을까.

그리고 첫눈 오면 만나자고 한 그것이 다였을까.

 

첫눈 오는 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이미 어떤 약속이 잡혔는지도 모를 일인데 우린 참 어리숙하게도, 미련하게도 몇몇의 약속들을 배치하는 일에 열을 냈다. 지켜지지 않아도 좋다는 맑고 착한 말이어서 그랬을까. 그 말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그 순간만으로도 행복해서였을까.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며 기뻐할 준비와 슬퍼할 채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느 먼 곳의 한 기차역에서 나를 기다려 나를 맞이해준 것은 다름 아닌 라디오였다. 어떤 희망도 가져본 적 없으며 아무 보잘것없는 추레한 소년이었을 때…… 라디오만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 믿는 바람에 나는 이렇게나 시간을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고, 상상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었고, 혼자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일방적이면서도 눈먼 애정이 나의 불안한 시절을 살렸던 역설적인 결과라고 말해도 좋겠다.

 

 

우리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으며 혼자라더라도 당당할 수 있으니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분명 어딘가 도달할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내 밑바닥의 어쭙잖은 목소리를 스스로 듣게 된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종교가 간절한 시대는 지난 것인지 사람들은 이제야 시간을 믿기 시작했다. 시간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시간이 우리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 말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괜한 것의 무게로 욱신거려서 마음까지 허기질 때는 종점까지 향하는 버스를 탄다. 어딘가를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스의 마지막 종착지까지 가서, 얼마간을 있다가 다시 같은 방법으로 되돌아오는 것, 그러니까 동쪽 서쪽인 것도 중요하지 않고, 그곳에서 내려 꼭 뭘 해야 할 일도 없는 것. 종점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풍경도 함께이고, 탔다가 내리는 사람들도 함께이고, 내 옆의 빈 자리까지도 함께이다.

 

 

 

버스를 타고 종착점까지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갔다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리는 경험처럼

이병률의 산문집은 첫장에서부터 마지막장까지 우리를 어느 모르는 장소에 데려다 준다.

 

그곳은 아마도 사랑과 행복이 어우러진 그러나 푸르고 슬픈 곳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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