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성복 <그 순간은 참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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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성복 <그 순간은 참 길었다>

by 브린니 2020. 11. 18.

그 순간은 참 길었다 

 

 

그후 나는 우리가 만나기 전에 당신이 지나온 길을 지나갔고 당신은 내가 지나온 길을 지나갔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만남과 지나감」  

 

 

 

   바람 쐬고 오는 길에 저쪽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고 있었다. 엉겁결에 길 옆 상가건물의 교회로 들어갔다.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나왔지만, 다니지도 않는 교회 입구에서 그 순간은 참 길었다. 또 언젠가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오는 걸 보고, 돌아서 다른 길로 들어가려다 정면으로 마주쳤다. 앞만 보고 걸었지만 그 순간도 참 길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내가 오는 걸 본 그가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을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치면서, 그 순간은 한참 더 길었다. 

 

    ―이성복

 

 

 

【산책】

 

그렇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딱!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어느 분은 군대 2달 고참을 제대후 전철 역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그냥 지나가려는데 고참이 불러 세웠다고 한다.

 

“선배님”

고참은 그분의 중학교 3년 후배였다.

 

군대에 늦게 들어간 그분은 제대할 때까지 후배 고참에게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아는 체를 하는 그 고참을 보고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분은 고참을 향해 그냥 갈길 가라고 손짓을 하고는 전철을 타러 역을 내려갔다고 한다.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것일까.

그렇게 만나면 얼마나 민망한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지 않고, 또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을 때.

 

아무리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의 기분이란.

어쩌면 이때는 예수님도 어떻게 하시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피할수록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내 앞으로 다가와 선다.

자, 이래도 피할소냐!

 

피하지도 도망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정말 그 순간은 영원처럼 길다.

 

시간은 정말 상대적으로 길었다 줄었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데이트를 즐길 때는 그렇게 짧은데……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려면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모두 없애버리자.

 

마음속에서!

 

더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남지 않도록.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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