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빛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김행숙
【산책】
눈이 녹으면 뭐가 되나요?
이 질문의 답은?
봄.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
봄과 마음.
마음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얼어붙어 있을 때나
녹을 때.
항상,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얼어붙었을 때 마음은 몸 밖으로 삐져나올 것만 같다.
마음이 고체 덩어리처럼 눈앞에 드러날 때
마음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마음이 얼어붙었으니 호호 입김을 불어 녹여볼까.
★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마음이 녹아서 점점 보이지 않게 되자
왠지 더 외로워진다.
텅 빈 마음, 아무것도 없는, 있지만 없는 마음.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헤아려 아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된 것 같고,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믿는다(혹은 착각한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나와 함께 있을 너는 항상 웃는다.
그 미소는 영원할 것이다(그렇게 믿는다).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그런데 그 미소가 사라질 때
사랑이 식을 때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감정 작용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빛
미소가 사라진 뒤 아무 것도 없는,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사막과 같은 마음에
오로지 빛뿐이다.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끝어안는다.
빛이 우리를 감싼다.
그 빛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어둠의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춘다.
포옹은 서서 할 때 가장 완벽하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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