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산책] 김행숙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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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산책] 김행숙 <따뜻한 마음>

by 브린니 2020. 11. 11.

따뜻한 마음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김행숙

 

 

【산책】

 

눈이 녹으면 뭐가 되나요?

이 질문의 답은?

 

봄.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

봄과 마음.

 

마음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얼어붙어 있을 때나

녹을 때.

항상,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얼어붙었을 때 마음은 몸 밖으로 삐져나올 것만 같다.

마음이 고체 덩어리처럼 눈앞에 드러날 때

 

마음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마음이 얼어붙었으니 호호 입김을 불어 녹여볼까.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마음이 녹아서 점점 보이지 않게 되자

왠지 더 외로워진다.

텅 빈 마음, 아무것도 없는, 있지만 없는 마음.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헤아려 아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된 것 같고,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믿는다(혹은 착각한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나와 함께 있을 너는 항상 웃는다.

그 미소는 영원할 것이다(그렇게 믿는다).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그런데 그 미소가 사라질 때

사랑이 식을 때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의 감정 작용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미소가 사라진 뒤 아무 것도 없는,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사막과 같은 마음에

오로지 빛뿐이다.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끝어안는다.

빛이 우리를 감싼다.

 

그 빛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어둠의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춘다.

 

포옹은 서서 할 때 가장 완벽하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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