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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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병률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by 브린니 2020. 11. 1.

사랑, 그 아름다운 슬픔이여!  

 

 

이병률의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은 따스하고, 아름답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그리고 슬프다.

 

사랑을 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사랑은 차라리 슬픔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사랑이 왔을 때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리고, 사랑이 떠났을 때 슬퍼서, 지독하게 슬퍼서 운다.

사랑과 슬픔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책에는 사랑을 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사랑의 이야기는 어쩌면 슬프다.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라는 소제목이 붙은 글에서는 산을 오르는 모녀가 나온다.

저녁 시간, 노을이 지는 산꼭대기를 오르는 엄마와 딸. 그런데 엄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었다. 엄마는 빨리 걸어갈 수 없기에 자기 때문에 늦어서 딸이 노을을 보지 못할까 걱정을 한다.

 

엄마의 더딘 걸음 때문에 해 지는 풍경은 이미 볼 수 없는데도 딸은 엄마에게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앞을 못 보는 엄마에게 노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굉장한 아름다움 앞에 서 있게 해드리고 싶어한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바다를 보여준다거나 석양을 바라보게 한다거나 하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나온다. 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앞을 못 보는 분을 모시고 힘들게 산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것은 일단 산을 오르는 일부터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엄마와 딸은 힘들게 산을 올라 노을을 본다.

이미 해가 져서 노을을 볼 수 없는데도 노을을 본다.

 

정작 엄마와 딸이 보는 것은 어둠뿐이다.

 

엄마의 세상은 이미 온통 어둠이다. 그런데 또 어둠을 보려고 이 높은 곳까지 오르다니!

어둠을 미치도록 아름다운 노을이라고 여기고 어둠을 본다.

 

어쩌면 진짜 아름다움은 어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사랑이랑 여행이랑 닮은 것은」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내가 경험했던 몇 번의 사랑을 통해 나는 정말 나를 잘 알게 되었을까?

 

또 이런 글도 있다.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이 말은 정말 맞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미 끝난 사랑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거울을 봐도 먼지가 보이지 않는다」

 

전철에서 두 할머니가 빈 자리를 차지하려고 뛰어간다. 재빨리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데 자리를 차지 못한 할머니가 말한다.

 

“미안합니다. 제가 자리에 앉으려고 그만……”

 

무엇을, 왜 미안해야 할까?

빈 자리 하나를 두고 싸웠던 일을? 싸워서 진 일을? 자신이 달리지 않았다면 천천히 걸어가서도 충분히 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달리게 해서 상대방을 힘들게 만든 일을?

 

살다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잘못했는데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을 결코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미치도록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별로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면 정말 민망하다.

그러나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는 마음의 넓이는 무엇으로도 잴 수 없다.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인격, 성품, 그런 마음……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고귀하다!

 

 

시인이 남해를 갔는데 새조개를 파는 식당에서 주문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식당 주인 아들이 있다. 시인과 가족들은 좀 모자란 사람 같다고 수근댄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 젊은이가 시인을 불러 말한다.

 

“만원을 더 주셨어요.”

 

식대가 4만 8천원인데 5만 8천원을 낸 것이다. 주인 아들은 만원을 돌려주었다.

 

누가 더 모자란 사람인가.

듣는 귀가? 지능이? 인격이?

 

 

「세상이 여러 맛을 보려고 사는 것 같아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사치이기도 한 나는 영화 본 것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 또한 몇 안 되는 나의 사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고 산다. 남에게 본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이상하리만치 음미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은 바닥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나도 그랬다. 이제는 좀 수다스러워졌다. 지금은 사치를 부릴 나이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엔 고독이 사치였다면 이제는 나누는 게 편하다. 어쩌면 사람이 좀 너그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우리는 더 멀어져야」

 

이 글에는 시인의 스승 이야기가 나온다. 스승은 시인이며 좋은 분이며 노을을 느끼며 사는 분이다.

저녁에도 불을 켜지 않는 스승.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빛의 끝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러나 나이 들고 보니 나이든 내가 불편하다.

 

 

「하루만 더 만나고 헤어져요」

 

아침드라마와 같은 일.

애인의 아버지가 나타나 시인더러 헤어지라고 한다.

 

연인들에게 결별의 시간이 들이닥친다. 하루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을 때 당신이라면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낼 텐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 텐가.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사랑에도 적용될까?

사랑이 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할까?

 

어쩌면 에로스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냥 사랑이라면?

 

넘치도록 사랑하라!

 

 

「봄이 오는데 당신이 가네요」

 

노인 한글학교에 1년 반 정도 다닌 할머니가 시를 써서 낭독회에서 발표한다.

 

동백이 피었는데요

봄이 가네요

 

내 마음이 피었는데

조금만 머물다 봄이 가려고 하네요

 

나에게도 글씨가 찾아와서

이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됐는데

 

봄이 왔는데요

당신이 가네요

 

이 할머니의 인생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아니, 상상할 수 없다.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았는데

사랑한다고 쓸 수 없었는데

 

이제 편지도 쓸 수 있는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봄은 늘 다시 돌아오는데

이미 피안으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 없는데……

 

 

「이토록 서서히 퍼지는 광채」

 

술을 마신다는 것은 내가 젖는다는 것, 술에 취한다는 것은 내가 잠긴다는 것, 술이 깬다는 것은 나에게 도착한다는 것.

 

나에게 술은 영감을 얻게 하고 친구를 얻게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두 가지를 얻음으로써 글을 쓰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술집은 어디인가. 누가 뭐래도 나는 그런 술집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편한 술집이었으면 한다. 마음대로 내 마음을 어지를 수 있는 술집.

 

마음을 마음대로 어질러도 되는 그런 술집.

그런 사람의 마음의 집.

 

그립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나 나는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말을 했지만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하기엔 이르다. 창문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그게 좋다고 말했다. 저녁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그녀도 저녁이 좋다고 말했다.

슬픔을 아는 사람 같았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이상하게 마음을 홀린다.

아픔이 아픔을, 상처가 상처를 끌어당긴다.

 

슬픔을 좀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따스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빛이 난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도 그렇다.

 

저녁, 노을, 석양, 모두 빛인데 너무 환하지 않고, 눈부시지 않다.

 

빛인데 감정이 담긴 빛,

이 책은 빛의 다양한 감정이 번져 있는, 고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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