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말 H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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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말 Horse>

by 브린니 2020. 10. 22.

 

 

그 말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는가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그것

 

나는 당신을 본다, 당신이 홀로 있을 때

저 뒤 들판으로 말을 타고 달릴 때

당신의 손은 암말의 갈기 속에 파묻혀 있다

검은 털 속에

 

나는 당신의 침묵 뒤에 누운 것을 안다

멸시, 나와 결혼에 대한 여전한 증오

내가 당신을 만지길 원하면서도; 당신은 비명을 지른다

신부들이 울듯이,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안다

당신의 몸속에는 아이가 없음을

그럼 거기엔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내 생각엔, 단지 너무 서두를 뿐

 

내가 죽기 전에 죽는 것

 

꿈속에서, 나는 당신이 말 타는 것을 보았다

메마른 들판 너머로 달려가서는

당신은 말에서 내려: 말과 함께 걸었다

어둠 속에서, 당신은 그림자도 없이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어둠이 내린 후 그들은 어디로든 걸어다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주인이다.

 

나를 보라. 당신은 내가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짐승은 무엇인가

이 생의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면

 

 

Horse

 

What does the horse give you

that I cannot give you?

 

I watch you when you are alone,

When you ride into the field behind

your hands buried in the mare's

Dark mane.

 

Then I Know what lies behind your silence:

Scorn, hatred of me, of Marriage. still,

You want me to touch you; you cry out

As brides cry, but when I look at you I see

There are no children in your body.

Then What is there?

 

Nothing, I think. Only haste

 

To die before I die

 

In a dream, I watched you ride the horse

Over the dry fields and then

Dismount: you two walked together;

In the dark, you had no shadows.

But I felt them coming toward me

Since at night they go anywhere,

 

they are their own masters.

 

LooK at me. You think I don't understand?

What is the animal

If not passage out of this life

 

― 루이스 글릭 Louise Glück (미국, 1943― ) 2020년 노벨문학상

 

 

【산책】

 

생의 바깥으로 가는 통로가 있을까?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처럼.

 

대나무 숲이거나 동굴이거나 사막이거나

도시의 빌딩 한 모퉁이거나 여관 문이거나

 

그러나 식물성도 광물성도 아니고 동물성이라면?

 

시의 주인공 당신은 말을 탄다.

그러나 그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 말을 타면 어디론가 간다.

아마도 그 끝은 생(生)의 밖이리라.

 

그 말을 타면 죽음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라면 생의 바깥 어디?

 

생生 너머.

혹은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생生.

 

과연 이것이 말(言)이 되는가?

 

죽기 전에 죽는 것. To die before I die

 

이 시는 이 한 줄로 요약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과 같다!

 

죽음은 루이스 글릭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근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 近死體驗 ― 죽음 가까이 간 경험

 

루이스 글릭은 실제로 이런 체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근사체험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죽음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돈과 명예와 건강까지 다 잃었을 때

 

처절한 배신을 겪었을 때

모든 희망이 무너지고 절망만 남았을 때

 

아마도 이 시의 나는 시인 자신이며, 당신은 실제의 ‘나’일지도 모른다.

 

시인인 내가 현실의 나를 보며 안타까워 울부짖는 모습이 보인다.

 

결혼을 꿈 꿀 수 없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의 몸?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면서도 오히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스스로 죽은 것 같은.

몸뿐 아니라 영혼마저도?

 

말을 타는 것은 생의 밖으로 나가는 일이라면

들판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말이 당신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정녕 죽음이란 말인가?

 

 

말은 단지 죽음으로 가는 통로만은 아니다.

뛰는 말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생의 상징이다.

 

시의 주인공은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린다.

그렇다면 말을 타고 달려간 들판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하는 생명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차라리

To die before I die

죽기 전에 죽는 것이란

 

죽음을 두 번 부정하는, Doubling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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