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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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by 브린니 2020. 10. 1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그가 가르친 것은, 버림 받아도

그가 살아간 삶은,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자아, 그를 쳐다보라 ―

그는 어느 누구도 섬기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1844-1900)

 

 

【산책】

 

스스로를 '철학의 숨은 황제'로 여긴 쇼펜하우어는 “후세에 나의 기념비가 반드시 건립되리라”고 장담했다.

 

그는 현대 철학의 거장으로 추앙되는 헤겔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는 그렇게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의 삶에 대해서는 매우 크게 공감하고 있다.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 철학을 외친 니체라면 아무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은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해 시를 통해 경의를 표할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

 

*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독일, 1788~1860)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미워했으며, 다른 철학교수들이 ‘철학의 숨은 황제’인 자신을 시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항상 주위를 경계했다.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고, 불이 날까봐 이층에서 자지도 않았으며,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 어머니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인지, 여자를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했으나 전혀관심을 끌지 못했다. 1820년 베를린대학의 전임강사가 된 쇼펜하우어는 “후세에 나의 기념비가 반드시 건립되리라”라고 장담했다.

 

1831년 베를린에 유행한 콜레라로 헤겔이 죽고 1848년 시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낙관론적 헤겔 철학이 서서히 빛을 잃자 염세주의적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명성이 쌓여갈 때 예기치 않게 심장마비로 죽었고, 재산은 유언에 따라 자선단체에 기증되었다. 그의 무덤 앞 묘비에는 그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네이버 지시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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