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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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가을>

by 브린니 2020. 10. 17.

가을

 

 

이제는 가을 : 가을 ― 마음을 괴롭게 하는 때!

날아가라! 날아가라!

태양은 기어서 산으로 다가가서는

숨을 헐떡이며 오르고 또 오르니,

걸음마다 쉬고 있다.

세상은 몹시 시들어 말라 버렸으니!

지쳐서 느슨해진 줄 위에서

바람이 노래를 부른다.

희망은 이미 사라진 뒤 ―

바람의 노래가 떠나 버린 희망을 한탄하도다.

이제는 가을 : 가을 ― 마음을 괴롭게 하는 때!

날아가라! 날아가라!

오오, 나무의 열매여,

너는 떨고 있느냐, 떨어지고 있느냐?

밤은

어떤 비밀을 너에게 가르쳐 주었는가,

얼음과 같은 전율이 너의 뺨을,

새빨간 뺨을 감싸고 있다고?

너는 입을 다물고는, 대답하지 않을 셈인가?

아직도 말하는 자가 있는 건가? ―

이제는 가을 : 가을 ― 마음을 괴롭게 하는 때!

날아가라! 날아가라!

“나는 아름답지 않노라

― 아스타 꽃은 이렇게 말하도다 ―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사랑하며

인간을 위로하노라 ―

인간들은 가을인 지금에도 꽃을 보고,

내게로 몸을 구부려서는,

아아, 그리고 나를 손으로 꺾어야 하느니 ―

그러면 인간들의 눈에는

추억이 되살아나니,

나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리니 ―

― 나는 분명히 그 모습을 보며 ― 그렇게 해서 죽게 되노라!”

이제는 가을 : 가을 ― 마음을 괴롭게 하는 때!

날아가라! 날아가라!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1844-1900)

 

 

【산책】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고, 성숙의 계절이다.

풍요로운 결실이 있는 계절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을은 쇠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꽃이 지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그래서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며 사색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가을을 즐기며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술과 음료를 마시며 모임을 즐긴다.

 

그러나 유독 가을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

니체는 가을을 심하게 타는 남자인가보다.

 

 

이제는 가을 : 가을 ― 마음을 괴롭게 하는 때!

 

그 이유는 태양이 힘을 잃고, 세상은 말라버리고,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태양은 숨을 헐떡이며 오르고 또 오르니, 세상은 몹시 시들어 말라 버렸으니!

희망은 이미 사라진 뒤 ― 바람의 노래가 떠나 버린 희망을 한탄하도다.

 

뿐만 아니라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침묵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오오, 나무의 열매여, 너는 떨고 있느냐, 떨어지고 있느냐?

너는 입을 다물고는, 대답하지 않을 셈인가? 아직도 말하는 자가 있는 건가? ―

 

하지만 가을에도 꽃은 피어난다.

9월과 10월에 꽃을 피우는 아스타꽃!

 

그러나 아스타꽃마저 인간들의 손에 꺾이고 만다.

시인은 이를 두고 마음 아파한다.

 

인간들은 가을인 지금에도 꽃을 보고, 내게로 몸을 구부려서는,

아아, 그리고 나를 손으로 꺾어야 하느니 ― 그렇게 해서 죽게 되노라!

 

니체는 비극적인 가을을 노래한다.

그에게는 가을이 거의 죽음의 계절에 가깝다.

 

여름에 맹렬하던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잃고,

바람은 나무의 열매를 떨어뜨리고,

인간들은 가을에 핀 꽃을 꺾어버린다.

 

자연이 무성했던 여름의 푸른 옷을 벗고,

앙상하고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계절이 시인에게는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아마도 니체에겐 가을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이어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이어서 아픈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이 되살아나니,

나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리니 ―

 

니체는 가을의 한쪽면, 즉 쇠락을 보면서 가슴 아파한다.

그에겐 가을은 고독과 고뇌와 사색의 나날들일 것이다.

 

그러나 가을은 넉넉한 곡간을 숨기고 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고……

 

 

* 이스타꽃 ― 이스타국화

여러해살이 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 개화 시기는 9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까지,

꽃이 화려하고 가지도 많아 9월 말경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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