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흰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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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흰 백합>

by 브린니 2020. 10. 10.

흰 백합

 

 

조용하세요. 연인이여. 얼마나 숱한 여름을 내가

살아서 되돌아왔는지, 그게 내겐 중요하지 않아요.

올해 한 차례 여름으로 우리는 영원에 들어섰어요.

당신의 두 손이 느껴져요.

그 광휘를 풀어 놓으려고

나를 묻는 손길이.

 

― 루이스 글릭 Louise Glück (미국, 1943― ) 2020년 노벨문학상

 

흰 백합

 

The White Lilies

 

Hush, beloved. It doesn't matter to me

how many summers I live to return:

this one summer we have entered eternity.

I felt your two hands

bury me to release its splendor.

 

White Lily

 

【산책】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묻어야 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차디찬 땅에 묻고 돌아서야 하는 때

 

장례식은 더 큰 사랑의 폭발과 같다.

연인을 위해 그토록 울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만약 그 연인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주검으로 땅 속 깊이 묻힌 그(그녀)가 되살아나온다면?

 

영원한 세계로 떠났던 사랑이

영원한 사랑으로 되돌아온다면?

 

사랑의 부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빛을,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는 광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연인은 백합처럼 빛나는 오뉴월에 되살아난다.

 

숱한 여름을 되살아났지만

이번 여름엔 영원으로 들어섰다.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영원의 빛 가운데로 풀어놓는다.

 

영원은 죽음을 통해 삶으로 들어온다.

 

삶은 지속된다.

 

사랑하는 연인들, 서로를 묶는 손을 맞잡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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