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눈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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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루이스 글릭 <눈풀꽃>

by 브린니 2020. 10. 9.

눈풀꽃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꽃들 사이에서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루이스 글릭 Louise Gluck (미국, 1943― ) 2020년 노벨문학상

 

 

눈풀꽃

 

Snowdrops

 

Do you know what I was, how I lived? You know

what despair is; then

winter should have meaning for you.

 

I did not expect to survive,

earth suppressing me. I didn’t expect

to waken again, to feel

in damp earth my body

able to respond again, remembering

 

after so long how to open again

in the cold light

of earliest spring –

afraid, yes, but among you again

crying yes risk joy

 

in the raw wind of the new world.

 

― Louise Gluck

 

 

눈풀꽃

 

죽음을 경험하는 시간이 있다.

암과 같은 불치병 너머 죽음의 시간을 통과해 다시 삶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절망에 빠져 도저히 삶을 견딜 수 없는,

절망 ―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계속 될 때

도저히 다시 생을 다시 시작할 수 없을 때조차

 

생명은 눈을 뜨고, 삶의 시계가 작동한다.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자동기계처럼 사는 법을 기억하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도 그러하리라.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죽음이 그러하듯

삶도 두렵다.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독한 가난이나

가슴을 도려내는 배신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사는 것이 죽음보다 더 차가울 때가 있다.

긴긴 겨울만이 계속될 때

그러나 그때에도 봄이 온다.

 

이른 봄이 온다.

차가운 햇빛 아래 아직 겨울이 분명한데

아, 그런데 봄이 온다.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오면

삶이 따뜻해지리라 상상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 뿐이다.

 

그러나 생의 기쁨에 투자를 하자.

위험부담을 안고서,

다시 절망할지라도.

 

세상이 냉정한 입김을 불지라도

다시 자신을 열고 생의 열정을 불태우자!

 

눈이 내려 세상이 흰 죽음 아래 고요할 때

뿌리가 움직이고, 줄기가 솟고, 잎사귀가 고개를 들고,

아, 그리고 꽃을 피운다.

 

생은 그렇게 계속된다.

봄이 튀어오른다.

 

눈풀꽃

 

* 눈풀꽃

수선화과의 알뿌리 식물. 알뿌리에 2~3개의 줄 모양의 잎이 붙으며, 이른 봄에 20~30cm의 흰 꽃이 꽃대 끝에 하나 핀다. 추위에 잘 견디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유럽이 원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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