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소나무와 번개>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프리드리히 니체 <소나무와 번개>

by 브린니 2020. 10. 7.

소나무와 번개

 

 

인간과 짐승을 넘어서서 높이 자라나

말을 하는데 ― 아무도 나와 더불어 말하지 않네.

 

너무 외롭게, 너무 높이 자라나

기다리는데 ―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너무 가까이, 내 곁으로 구름이 흐른다 ―

나는 첫 번째 번갯불을 기다리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1844-1900)

 

 

【산책】

 

나무는 인간보다 짐승보다 키가 크다.

나무는 하늘에 가장 가까운 생물이다.

 

나무는 인간과 짐승보다 더 오래 산다.

나무는 가지를 하늘에 뻗고, 뿌리를 땅 밑으로 내리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나무.

 

인간도 나무 아래서 빌고,

짐승도 나무 아래서 누워 쉰다.

 

나무는 하늘의 소리를 땅에 전하는 메신저가 된다.

 

나무는 하늘의 빛을 가리고 그늘을 만든다.

 

나무는 인간과 짐승이 맞기 전에

먼저 번갯불을 맞아 속이 시커멓게 탄다.

 

번갯불에 탄 나무는 인장이 되고, 부적이 된다.

 

 

인간과 짐승을 넘어서 하늘로 뻗은 나무는 감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다.

아무도 나무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나무는 너무 높이 자랐다.

그러므로 외롭다.

 

나무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번개불이 그의 몸을 관통했을 때

비로소

나무는 뒤늦게 알아챈다.

 

자신이 첫 번째 번갯불을 기다려왔다고.

 

 

우리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에야 정말 목이 말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무는 번갯불에 몸이 불 탄 뒤

자신이 번갯불을 기다렸다는 것을 안다.

 

왜 나무는 번갯불을 기다렸을까.

외로워서일까?

 

어쩌면 외로웠던 나무가 기다렸던 것은

신탁과 같은 하늘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인간과 짐승과 말할 수 없었던 나무는 하늘과 소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늘로부터 번갯불이 떨어졌다.

 

번개와 함께 천둥은 신탁처럼 왔다.

나무는 무엇을 들었을까.

 

나무와 번갯불과 한 몸이 되어 불타면서

어떤 사랑을 경험했을까.

 

외로웠던 나무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어떤 속삭임보다

강렬한 하늘의 불에 휩싸여 나무는 외롭지 않고 행복했을까.

 

불에 타는 고통이 열반에 드는 기쁨처럼

뜨겁고, 서늘했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