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마사오카 시키 <가는 가을에……> 외 9편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마사오카 시키 <가는 가을에……> 외 9편

by 브린니 2020. 10. 4.

마사오카 시키 하이쿠 10편 감상

 

* 마사오카 시키 正岡 子規 (일본, 1867-1902)

 

*하이쿠 [haiku, 俳句(배구)]

하이쿠는 일본의 정형시로 대개 5·7·5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짧은 시구詩句 속에 자연의 미美를 담은 시들이 많다. 짧은 시구처럼 찰나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한다.

 

 

 

유채꽃이네

확 번져가는 밝은

변두리 동네

 

유채꽃 밭이 노랗게 펼쳐진 변두리 동네의 모습을 “확 번져가는 밝은”이라는 소박한 언어로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말의 꼬리여

잽싸게 몸을 돌려

피하는 제비

 

말의 엉덩이에서 왱왱거리는 파리를 잡으려고 말이 꼬리를 흔든다. 파리를 잽싸게 파리를 피해 달아난다. 동물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순간을 포착해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기교가 넘치는 시이다.

 

 

번개로구나

노송나무만 있는

골짜기 하나

 

노송나무로 가득 찬 골짜기에선 하늘이 매우 좁게 보인다. 그 사이로 번개가 쳐서 하늘이 쪼개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찰나의 미학이 돋보이는 시이다.

 

 

가는 가을에

종 치는 요금을

받으러 오네

 

마을에 있는 절에서 특별한 날에 종을 치는 관습이 있고, 종을 치면 종을 치는 요금을 마을 사람들에게 받았던 것 같다.

 

 

살아 있는 눈을

쪼러 오는 것일까

파리의 소리

 

시키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쓴 시로 파리가 날아오는 모습을 조금은 공포스럽게 과장되게 표현한 시다. 병상에 누운 사람에게는 파리가 윙윙거리며 치근덕거리는 게 여간 신경 쓰이고 귀찮은 게 없을 것이다. 특히 징징거리는 파리의 소리는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 못지않게 온몸으로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끊임없이 사람

쉬었다가는 여름

들판의 돌 하나

 

뙤약볕이 내리쬐고, 길을 가던 나그네들은 햇빛을 피하고, 지친 다리를 쉴만한 곳이 필요하다. 그런데 들판에 돌 하나가 놓여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나오는 나무둥치처럼 들판에 있는 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앉아서 쉬었다 가고 있다.

 

 

장작을 패는

여동생 한 사람의

겨울나기여

 

시키는 병상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아 여동생 혼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장작을 팬다. 몸이 아픈 시인을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림을 꾸리며 혹한을 견디고 나가는 고된 생활을 표현하고 있는 시이다.

 

 

여윈 말을

요란스레 꾸몄네

새해 첫 짐에

 

1월 2일이 되면 그 해 첫 장사를 시작하는데 비록 말이 야위었어도 배두렁이와 삼으로 치장을 해준다. '여위다'와 '요란스럽다'를 대비해서 배치해 유머러스한 느낌을 준다.

 

 

수세미 피고

가래가 막아버려

죽은 자인가

 

수세미가 피는 가을, 병상에 누워 가래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시인은 자신의 몸이 마치 죽은 시체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며 묘사하는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가래가 한 되

수세미 꽃의 즙도

소용이 없네

 

가래가 한 됫박이나 될 정도로 천식이 깊다. 치료를 위해 마시는 수세미 꽃 즙도 이제 소용이 없을 정도다. 가래가 한 되에서 비통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안간힘을 볼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