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언젠가 많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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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프리드리히 니체 <언젠가 많은 것을……>

by 브린니 2020. 11. 9.

언젠가 많은 것을……

 

 

언젠가 많은 것을 말해야 하는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다.

언제인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독일, 1844-1900)

 

 

【산책】

 

때를 기다리다.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약속 시간에 늦는 애인을 몇 시간씩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휴대전화도 없고, 심지어 전화조차 한 통 걸기 어려운 시대

아무런 말도 없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적이 있는가.

 

정치가들은 자신의 때를 기다리면서 숨죽이고 보내는 세월들이 있다.

너무 일찍 자신을 드러냈다가 한 순간 훅 날아가 버릴 수 있기에 몸을 낮추기도 한다.

 

나설 때가 있고, 물러설 때가 있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섣불리 무언가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벼가 익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투자한 돈이 몇 배의 수익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때를 기다리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할 말을 켜켜이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꺼내려다 잊은 적도 있다.

 

남편에게 할 말을 마음에 쌓았다가 병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그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기도 한다.

 

 

번개와 천둥이 치려면 검은 구름이 모여 쌓여야 한다.

말이 터져 나오려면 수없는 침묵이 탑을 쌓아야 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이 말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때를 기다린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때라는 것이 언제인가?

언젠가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언젠가, 언젠가, 하면서 세월이 간다.

구름이 모여서 마음에서만 번개와 천둥이 친다.

 

말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번개와 천둥은 그저 으르렁댈 뿐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다.

 

때를 기다리는 것,

때를 맞춰서 일을 도모하는 것,

 

모두 다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때가 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 사람,

 

번개로 터져 나오기 위해

오랫동안 ― 구름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슬프다는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말고, 때를 기다리지도 않는데

때가 나를 찾아오게 하라!

 

그때 내가 그 때를 만나게 하라!

오늘부터 그 때를 위해 신께 기도하자.

 

'언젠가'를 불확실한 부사가 아닌

확고부동한 명사로 만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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