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 말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는가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그것
나는 당신을 본다, 당신이 홀로 있을 때
저 뒤 들판으로 말을 타고 달릴 때
당신의 손은 암말의 갈기 속에 파묻혀 있다
검은 털 속에
나는 당신의 침묵 뒤에 누운 것을 안다
멸시, 나와 결혼에 대한 여전한 증오
내가 당신을 만지길 원하면서도; 당신은 비명을 지른다
신부들이 울듯이,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안다
당신의 몸속에는 아이가 없음을
그럼 거기엔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내 생각엔, 단지 너무 서두를 뿐
내가 죽기 전에 죽는 것
꿈속에서, 나는 당신이 말 타는 것을 보았다
메마른 들판 너머로 달려가서는
당신은 말에서 내려: 말과 함께 걸었다
어둠 속에서, 당신은 그림자도 없이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어둠이 내린 후 그들은 어디로든 걸어다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주인이다.
나를 보라. 당신은 내가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짐승은 무엇인가
이 생의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면
Horse
What does the horse give you
that I cannot give you?
I watch you when you are alone,
When you ride into the field behind
your hands buried in the mare's
Dark mane.
Then I Know what lies behind your silence:
Scorn, hatred of me, of Marriage. still,
You want me to touch you; you cry out
As brides cry, but when I look at you I see
There are no children in your body.
Then What is there?
Nothing, I think. Only haste
To die before I die
In a dream, I watched you ride the horse
Over the dry fields and then
Dismount: you two walked together;
In the dark, you had no shadows.
But I felt them coming toward me
Since at night they go anywhere,
they are their own masters.
LooK at me. You think I don't understand?
What is the animal
If not passage out of this life
― 루이스 글릭 Louise Glück (미국, 1943― ) 2020년 노벨문학상
【산책】
생의 바깥으로 가는 통로가 있을까?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처럼.
대나무 숲이거나 동굴이거나 사막이거나
도시의 빌딩 한 모퉁이거나 여관 문이거나
그러나 식물성도 광물성도 아니고 동물성이라면?
시의 주인공 당신은 말을 탄다.
그러나 그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 말을 타면 어디론가 간다.
아마도 그 끝은 생(生)의 밖이리라.
그 말을 타면 죽음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라면 생의 바깥 어디?
생生 너머.
혹은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생生.
과연 이것이 말(言)이 되는가?
죽기 전에 죽는 것. To die before I die
이 시는 이 한 줄로 요약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과 같다!
죽음은 루이스 글릭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근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 近死體驗 ― 죽음 가까이 간 경험
루이스 글릭은 실제로 이런 체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근사체험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죽음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돈과 명예와 건강까지 다 잃었을 때
처절한 배신을 겪었을 때
모든 희망이 무너지고 절망만 남았을 때
아마도 이 시의 나는 시인 자신이며, 당신은 실제의 ‘나’일지도 모른다.
시인인 내가 현실의 나를 보며 안타까워 울부짖는 모습이 보인다.
결혼을 꿈 꿀 수 없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의 몸?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면서도 오히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스스로 죽은 것 같은.
몸뿐 아니라 영혼마저도?
말을 타는 것은 생의 밖으로 나가는 일이라면
들판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말이 당신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정녕 죽음이란 말인가?
★
말은 단지 죽음으로 가는 통로만은 아니다.
뛰는 말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생의 상징이다.
시의 주인공은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린다.
그렇다면 말을 타고 달려간 들판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하는 생명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차라리
To die before I die
죽기 전에 죽는 것이란
죽음을 두 번 부정하는, Doubling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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