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
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것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천국보다 낯선>이란 영화가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국이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천국보다 낯선 곳은 어디일까.
내가 태어난 고향에 오랫동안 가보지 못하다가 십수년이 지나 찾았을 때 그 낯섦이란!
매우 익숙하지만 너무나 낯선 것.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내가 다른 그 누구보다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Multi identity?
과연 당신과 나는 몇 개의 identity를 갖고 있을까?
한 사람이 12개의 identity를 갖고 살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13은 불안한 숫자이다.
13부터는 병원에 가봐야 한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처럼 잘 변하는 것도 없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
내가 나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애써 나를 찾아간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혼은 무엇일까? 영혼은 왜 평온할 수 없을까.
시인의 영혼은 고뇌로 가득차서일까?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내가 나를 볼 때 나는 풍경이 된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그들이 지나간다.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나를 느낄 수 없고,
내가 없는 곳에 그곳에 나의 여러 개의 영혼이 있다.
나는 읽어나간다
나 자신을
나는 ‘나’라는 책을 읽는다.
그러나 나를 알 수 없다.
“이게 나였어?”
여전히 나의 실재를 알 수 없다.
나는 되묻는다. 내가 이것인가?
시인은 자신의 한계 너머를 향해 묻는다.
그리고 겸손하게 인정한다.
나를 아는 자는 오직 그분뿐이라는 것을.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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