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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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by 브린니 2020. 11. 24.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보는 자는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느끼는 자는 그 자신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나의 꿈 또는 욕망 각각은

태어나는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다양하고 움직이고 혼자인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것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천국보다 낯선>이란 영화가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국이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천국보다 낯선 곳은 어디일까.

 

내가 태어난 고향에 오랫동안 가보지 못하다가 십수년이 지나 찾았을 때 그 낯섦이란!

매우 익숙하지만 너무나 낯선 것.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내가 다른 그 누구보다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Multi identity?

과연 당신과 나는 몇 개의 identity를 갖고 있을까?

 

한 사람이 12개의 identity를 갖고 살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13은 불안한 숫자이다.

13부터는 병원에 가봐야 한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처럼 잘 변하는 것도 없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

 

내가 나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애써 나를 찾아간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영혼이 있는 자에겐 평온이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혼은 무엇일까? 영혼은 왜 평온할 수 없을까.

시인의 영혼은 고뇌로 가득차서일까?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

나는 나 자신의 풍경

나의 지나감을 지켜본다

 

내가 나를 볼 때 나는 풍경이 된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그들이 지나간다.

 

내가 있는 이곳에선 나를 느끼지 못하겠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나를 느낄 수 없고,

내가 없는 곳에 그곳에 나의 여러 개의 영혼이 있다.

 

나는 읽어나간다

나 자신을

 

나는 ‘나’라는 책을 읽는다.

그러나 나를 알 수 없다.

 

“이게 나였어?”

 

여전히 나의 실재를 알 수 없다.

나는 되묻는다. 내가 이것인가?

 

시인은 자신의 한계 너머를 향해 묻는다.

그리고 겸손하게 인정한다.

 

나를 아는 자는 오직 그분뿐이라는 것을.

 

신은 안다, 그가 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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