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어느 늙은 가장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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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어느 늙은 가장의 사랑 이야기

by 브린니 2020. 6. 17.

어느 늙은 가장의 사랑 이야기

 

 

그가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네 손에

어른 환자용 기저귀 박스를 들고

 

반대편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왔네

첫사랑 연인보다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대사건이 벌어졌네

 

건널목 한복판에서 그는 멈췄네

그의 전생애가 영원으로 빠져들고

 

그녀가 그를 스쳐지나 가고 있었네

느린 템포로 시간은 음악을 연주했네

 

그는 오던 길로 몸을 돌렸네

여인의 등을 향해 침묵의 사랑고백을 했네

평생을 기다린 사랑이 왔노라고

 

음악이 멈췄네

시간이 풀렸네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박거리며

빨간불로 바뀌려 하네

나인 에잇 세븐 …… 쓰리 투 원 제로

 

그는 건널목 한복판에 갇혔네

여인이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고

그는 가야 할 길을 보네

 

양쪽으로 차들이 그를 위협하며 미친 속도로 질주하네

그는 지금 구원이 필요하네

그는 아내의 이름을 고요하게 부르네

 

그가 손에 든 어른용 기저귀를

시어머니의 엉덩이에 갈아 끼우며

똥 수발을 드는 어진 아내의

오래된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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