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나의 아저씨>의 좋은 사람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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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나의 아저씨>의 좋은 사람 찾기

by 브린니 2020. 6. 16.

좋은 드라마에는 좋은 사람이 나옵니다. 좋은 사람 찾기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좋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 사회에 스며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 클라쓰>와 <나의 아저씨>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드라마 모두 상처 입은 소녀가 나오고, 듬직하고 좋은 사람 아저씨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태원 클라쓰>에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하지만 머리가 좋은 소녀 조이서 역으로 김다미가 출연합니다. 술 먹고 놀면서도 일류대학 입시에 합격할 만큼 머리가 좋지만, 소시오패스 성향으로 인해 바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감히 친구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따귀를 척 올려붙이는 시크한 엉망진창의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세상 무서울 것도 사랑할 것도 없는 김다미

 

<나의 아저씨>에는 부모가 진 빚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다가 견디다 못해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하게 된 소녀 이지안 역으로 이지은(아이유)가 등장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세지만, 여전히 벌어온 돈의 대부분은 또다시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에게 뜯기고, 살인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며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칼로 베인 듯 황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유

 

그런 그녀들 앞에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좋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소시오패스 김다미 앞에는, 아버지의 원수에게 분통을 터뜨리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당당히 맞서 이기려고 십년을 준비해온 박새로이(박서준)가 등장합니다.

 

분노를 견디며 정당한 복수를 꿈꾸는 박서준

 

살인자 아이유 앞에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도 가정을 깨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참아내는 박동훈(이선균)이 등장합니다.

 

내면의 고뇌를 견디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선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김다미는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박서준을 도우면서 헌신적인 사랑으로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극복하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갑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박서준의 우직한 삶의 방식, 사람을 믿고 손해를 보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져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의 방식이 옳다고 믿고 따르며 날카롭던 성격이 바뀌어갑니다.

 

아이유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이선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황폐한 그녀의 삶에는 어른 이선균이 경험하고 알아간 세상의 여러 가지 지혜가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의 요양원 비용을 대지 못해 힘들어할 때도 이선균이 사회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아 그 비용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세상은 이리떼처럼 아이유를 물어뜯기만 했지만, 이선균을 통해 아이유는 세상이 자신을 도울 수 있음을 알아갑니다. 그 굶주린 삵 같던 눈망울에 따뜻한 눈물이 흐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유 역시 이선균의 삶에 아내의 불륜이라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며 위로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이선균 또한 아이유에게 끌리지만 절대로 선을 넘지 않습니다. 그는 듬직한 키다리 아저씨 이상의 선을 넘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아내의 불륜을 견디며 가정을 지키려 참듯이 아이유에게 끌리는 마음을 꾹 참기에 두 사람 사이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좋은 사람입니다.

 

아이유는 이선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를 만나고 사람이 무언지 알게 되었어요.”

 

사람이 무언지 알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김다미가 박새로이, 박서준을 만나서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무언지 알게 되었을 때 김다미와 아이유는 자신들의 결함에서 벗어나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사랑으로 인해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세상의 목소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좋은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찾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많은 국민들이 공분했던 것은, 그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실망감 때문이었습니다.

 

정의연의 윤미향 사건이 터지자 그 파장이 큰 이유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배신감 때문입니다.

 

때때로 뉴스에 등장하는 성직자들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야 마땅할 부모가 학대했다는 사건이 우리의 피를 들끓게 하는 것 등은 모두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누군가에 대한 배신감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우리에게 있기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가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평범하지만 정말 사람이라면 그래야지, 라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런 좋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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