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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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두 여자

by 브린니 2020. 6. 17.

200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뷰티풀 마인드>는 노벨상을 수상한 실존 수학자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러셀 크로우

 

영화에 등장하는 천재 수학 교수는 아름다운 여제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 수학 교수가 늘 이야기하던 대학 친구와 그의 조카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수학 교수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허상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무언가 신호가 온다고 믿고 신문이나 책 속에 나오는 숫자들로 뭔가 조합을 하면서 대학 친구와 그 조카의 환영과 대화를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목욕시키다가도 그 환영에 사로잡히면 미친듯이 숫자를 조합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자기 아들이 물에 빠져 익사할 지경이 되어도 모릅니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그의 아내는 그가 다닌 대학을 찾아가 그가 늘 말하던 대학 친구가 정말 있었는지 찾아보았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천재적인 수학교수이며 사랑하는 멋진 남편이 사실은 정신분열증 환자였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녀는 남편의 곁을 지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자신이 정신분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만도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흘렀으며 결국 그녀가 떠나야만 하는 순간까지 가서야 남편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대학 친구의 조카, 어린 소녀는 몇 년이 지나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자신과 우정을 나눠온 대학 친구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환영이라는 사실에 그 자신도 상처를 입지만, 결국 자신의 병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미 그때는 그가 정신분열이라는 것이 밝혀져 대학에서 그를 파면하여 직업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제 먹고 살 길도 막힌 그에게 아내는 가장이며 간호사이며 위로자입니다. 정신분열 약을 먹으면 신체에 이상이 생겨 아내를 사랑해주지도 못한다는 좌절감에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를 놓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기 힘든 그이지만, 아내를 버팀목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며 혼자만의 연구를 계속하고, 그의 연구는 마침내 인정을 받아 노벨상을 받게 됩니다. 이미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그의 아들 역시 잘 성장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인재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이 노인의 눈에는 여전히 젊디젊은 대학 친구가 보이고 그의 어린 조카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을 때 박수갈채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 그 두 환영이 버젓이 웃으며 앉아서 너무나도 기쁘다는 듯이 박수를 칩니다.

 

노벨상을 받고 나오는 길에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 환영들이 보여서 잠시 머뭇거리지만, 그 모든 것을 보이지 않으나 이미 아는 그의 아내가 그의 팔을 살며시 잡아끌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들

 

그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그의 병적인 환영과 같이 평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의 아내는 평생 그와 함께 살았고, 모든 고통을 떠안았습니다.

 

뉴욕, LA비평가협회로부터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또 다른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는 알콜중독에 빠져 오직 술을 마시다 죽기 위해 도박과 매춘의 도시 라스베가스로 온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포스터

 

가정과 직장이 있던 한 남자가 왜 어쩌다 알콜중독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다 직장과 가족마저 잃게 된 그는 라스베가스에서 한 창녀를 만납니다.

 

알콜중독자 니콜라스 게이지

 

자신에게 폭력을 행하며 함부로 대하는 낯선 남자들과 포주에 의해 밑바닥 인생을 사는 창녀는 오직 술을 마시다 죽기로 결심한 남자의 곁에서 때로는 다투며 때로는 안아주며 때로는 함께 울며 죽음으로 향한 외로운 길에서 맞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알콜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도덕적 교화 같은 것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고통스런 삶의 길을 그냥 함께 합니다. 온갖 종류의 술을 쇼핑하듯이 먹어치우며 하루하루 죽어가는 남자가 덜덜 떨면서 쇠약해져갈 때 그녀는 그냥 그를 안아줍니다.

 

그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의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몸짓을 해주자 그는 “고맙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소리없는 눈물 한 줄기만이 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인생은 우리 소망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아주 일이 잘 풀렸다고, 아주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 어떤 순간에 우리는 끔찍하고 불가해한 어두운 운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어두운 운명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꾸 피하려다 보니 결국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엮이지 않으려고, 차라리 혼자 있는 외로움이 더한 고통의 가능성보다 나으니, 혼자 사는 삶을 택하고, 복잡해지면 그냥 헤어지고 떠나려고 하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열세 살 꼬마들까지도 어른이 되면 좋은 직업을 가지고 큰 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 키우면서 혼자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쿨하고 멋진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두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상대방의 고칠 수 없는 비극적 결함에도 끝까지 사랑을 버리지 않은 희생이라고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뷰티풀 마인드>의 희생적인 아내조차 슬픈 얼굴로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걸어가다가 만난 어떤 사람이 “당신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자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지금도 매일 도망치고 싶어요. 내 죄책감을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들이라고 그 일이 즐거울 리 없습니다. 그녀들이라고 마냥 천사와도 같이 늘 사랑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마더 테레사도 자신의 삶을 힘겨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늘 하나님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다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다고 괴로워했답니다.

 

끝이 안 보이는 지독한 삶들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정신분열의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는 삶, 결코 끊을 수 없는 중독의 쇠사슬에 매인 삶, 나아질 소망이 없는 장애를 끌어안고 사는 삶...... 그 지독한 삶들 앞에서 쿨하게 우아한 척 해봐야 그저 외면이고 회피일 뿐입니다.

 

이 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대한 운명에 부딪혀 마음에 가득 눈물을 담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도 들꽃처럼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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