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서강준의 트라우마를 대하는 새로운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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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서강준의 트라우마를 대하는 새로운 방식

by 브린니 2020. 6. 19.

수많은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단초는 트라우마입니다.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 받던 주인공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거나 순정적인 연인을 만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와중에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드라마는 그 배경에서부터 마이너이기를 작정하고 만든 것 같은 신선함이 있습니다.

 

시골 폐가를 작은 책방으로 만들어 1960~70년대에나 있을 법한 간판에 <굿나잇 책방>이라고 쓴 모습부터 레트로 감성을 자극합니다.

 

역시나 시청률은 저조하여 보는 사람만 보는 드라마였지만, 마니아에게는 굉장히 아름다운 드라마로 기억됩니다.

 

주인공 임은섭 역의 서강준, 목해원 역의 박민영

 

이 드라마 역시 심각한 트라우마를 지닌 남녀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 트라우마는 여주인공 박민영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박민영의 아빠는 평소의 다정함과는 달리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엄마에게 자주 폭력을 휘두르고, 마침내 엄마가 아빠를 차로 치여 살해하여 교도소에 가게 되며 박민영은 외할머니와 이모가 사는 시골에 가서 살게 됩니다.

 

그곳에서 박민영은 살인자의 딸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게 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그 소문을 낸 사람이 가장 자기가 믿었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심한 배신감에 괴로워합니다.

 

그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계속해서 남아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서울에서 첼로 강사로 일하다가 학생 학부모와 마찰을 빚어 환멸을 느끼며 시골로 내려가는데, 거기에서 <굿나잇 책방>과 스케이트장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고등학교 동창 서강준을 만나게 됩니다.

 

박민영은 서강준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서강준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아이린’이라 부르며 짝사랑하는 감정을 남몰래 글로 쓰고 있었습니다.

 

박민영의 모든 상처를 아는 서강준은 그녀의 상처가 드러나 힘들어할 때마다 고요히 옆에 서서 커피 한 잔을 건네며, 그녀의 어둔 밤길을 비추는 따뜻한 사랑으로 함께 합니다.

 

그저 평온하고 따뜻해 보이기만 하는 서강준에게도 어두운 트라우마가 있음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는 산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부랑자의 아들이었고, 어릴 적에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죽어 고아가 되었습니다.

 

산짐승처럼 버려진 서강준을 마음씨 착한 마을 부부가 입양하여 아들로 키우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가 부랑자의 아들이고 고아였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강준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 듯하지만, 또 뒤에서는 뭔가 수군수군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서강준이 아픈 과거 때문에 괴로워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 과거를 숨기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강준은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부랑자의 아들이라서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가끔은 그도 관계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린, 박민영이 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도 쉽게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혹시라도 어릴 적 엄마가 자신을 떠났던 것처럼 자신을 떠나는 상처를 줄까봐 두더지처럼 산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두운 동굴에 마냥 숨어있지만은 않습니다. 과감히 어둠 속에서 한 발짝 나와서 박민영을 끌어안습니다.

 

하지만 그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짧은 사랑은 얼마 가지 않아 박민영의 이별 인사로 다시 아픔을 맞이합니다. 박민영의 아빠를 살해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그 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마을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박민영은 자기 트라우마의 기억과 그 진실 속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립니다. 그래서 현재의 가장 소중한 사람까지 버리는 실수를 합니다.

 

서강준은 고요히 <굿나잇 책방>에 앉아서 또 한번의 아픈 이별을 견딥니다. 어릴 적 엄마가 자신을 떠났을 때 빈 방에 홀로 남았던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 박민영이 떠났을 때도 빈 책방에 홀로 남습니다.

 

그의 어깨 위로 쌓이는 고통의 무게를 꾹 다문 입술과 고요한 눈빛으로 가만히 견디는 그 견딤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떠났던 엄마는 병 들어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서강준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그를 찾았습니다. 죽기 전에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것인데, 서강준은 애증의 감정을 견디며 그 죽어가는 엄마에게 가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여러 달 함께 합니다.

 

왜 나를 버렸냐고, 그래놓고 이제와서 용서해 달라는 거냐고,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속죄하는 거냐고 울며불며 따지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 흔들의자에 앉은 엄마의 옆에 또 고요히 앉아 슬픈 눈으로 엄마를 바라볼 뿐입니다. 회한의 삶을 아파하며 엄마는 아들에게 손을 내밀고 아들은 그런 엄마의 손을 잡아줍니다.

 

그렇게 조용히 따뜻하게 엄마를 떠나보냈던 것처럼 박민영을 떠나보낸 서강준의 공간에는 외로움만이 가득합니다.

 

늘 홀로 남는 서강준

 

그러나 엄마는 돌아오지 못하지만, 살아있는 박민영은 돌아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남자의 대시를 받으면서 박민영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서강준을 떠올리며 다시 <굿나잇 책방>으로 돌아옵니다.

 

왔다갔다 자기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 것도 모르는 그녀 앞에서 서강준은 한결같은 순정을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트라우마를 대하는 새로운 방식의 캐릭터를 봅니다.

 

누구나 당연히 힘들어 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 과거 앞에서 저렇게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서강준은 자기를 버린 부모나 자기를 키워준 양부모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보냅니다. 그의 흔들림없는 고요한 삶의 태도 안에 깊은 강바닥처럼 어두운 소용돌이가 있겠지만, 그는 그것을 굳이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일에 영향을 미칠 필요는 없으며, 현재 당하는 슬픈 일도 마치 과거의 일처럼 그렇게 조용히 흘러갈 것을 믿으며, 오늘은 오늘의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오늘의 햇살 속에서 피는 꽃을 기다리면 되니까요.

 

그런 한결같음을 굳이 ‘성숙’이라는 고루한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서강준이 죽어가는 엄마 곁을 지켜준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으니까요. 연인이 떠나가는 아픔을 말없이 바라보는 나이도 겨우 서른 즈음이니까요.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방식이 진화하여 트라우마 같은 것에 매여 있는 것은 참으로 진부하고 어리석으며 원시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시기가 다가올지 모릅니다.

 

트라우마는 정신분석이 유행하던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하나의 시대적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트라우마에게 가벼운 안녕을 고하고 새로 태어난 봄의 새싹처럼 산뜻하게 웃으며 새로운 햇살 아래로 걸어가는 하루를 사는 것! 매우 홀가분하고 아름다운 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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