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서예지가 담은 무의식의 여성상들
본문 바로가기
슬기로운 일상생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서예지가 담은 무의식의 여성상들

by 브린니 2020. 6. 22.

서예지는 일반 대중들에게 그 이름이 익숙할 만큼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작품의 주연을 맡은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서예지의 낮은 저음에 대한 호불호도 있고, 전체적으로 수애의 이미지가 너무 떠올라 서예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연을 맡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통해 대중들은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강한 인상과 함께 기억할 듯합니다.

 

동화작가 고문영 역할의 서예지

 

성형수술의 의혹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170cm에 43kg의 늘씬한 몸매가 나이 서른에 어울리는 요염한 성숙미까지 덧입어 그저 아무 말 없이 지그시 화면을 응시하는 표정만으로도 눈길을 확 끌 만큼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사이코틱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동화작가 고문영 역의 서예지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오정세, 오정세의 아우 역으로 어릴 적 엄마가 끔찍한 죽음을 당한 트라우마에 형까지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삶을 사는 김수현까지 등장함으로써 어두운 심리 세계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 어두운 동굴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부터 들려오는 과거의 기억들은 사실인지 진실인지 허구인지 모르게 뒤엉켜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습니다.

 

그 밑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이미지와 상을 얻습니다. 서예지는 우리의 무의식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의 여러 부분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여성이 남성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아니무스,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아니마라고 말하는데, 이 여성 이미지 아니마는 크게 두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모성, 순결, 지혜, 구원, 따스함, 연약함 등이며, 다른 하나는 악녀, 창녀, 마녀, 요염함, 음란함, 신비하고 음험한 능력 등입니다.

 

인간의 문화와 역사에는 두 가지 여성상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첫 번째 여성상의 경우는 지혜의 여신 소피아가 예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와 결합되어 순결하고 따뜻한 모성과 지혜로 남성을 구원하며 남성은 여성을 위하여 충성 맹세를 하고 보호하는 기사도의 정신을 갖게 합니다.

 

두 번째 여성상의 경우는 요염하고 음란한 마녀로 나타나 그 신비하고 음험한 능력을 발휘하여 남성을 유혹하고 남성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어두운 나락으로 추락시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담배를 피우며 꽃잎을 뜯고 있는 서예지 앞에 나타난 김수현

 

인간은 이 무의식 속에서 나오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의하여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구원을 얻기도 하며,  반대로 어두운 여성상을 가진 사람은 여성을 혐오하여 여성을 피하거나 여성에게 잔인한 죄악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과거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전쟁 통에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비인간적 폭력 등을 살펴보면 두 번째 여성 이미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 증오, 두려움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1,2회 방영분만 본 상태에서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서예지가 맡은 고문영이라는 인물의 설정에 이 두 번째 여성상에 대한 이미지가 담뿍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요염하지만, 뭔가 음험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듯 그녀가 가는 곳에는 천둥과 비가 내리며, 김수현을 갖고 싶어할 때 그녀가 거인처럼 거대해져서 두 손가락으로 김수현을 집어올리는 등의 연출은 그녀가 가진 마녀적 능력을 보여줍니다.

 

김수현을 유혹하는 서예지

 

하지만 아직 1,2회밖에 보지 못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녀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안전장치로 작동할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 즉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알고 마녀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 그녀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인격장애라는 설정이 있지만, 그녀가 자신의 텅 빈 공허 속에 그리움과 구원에 대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운명의 상대가 김수현이라는 것을 알며, 마치 돌아갈 길은 없다는 듯 그에게로 무작정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서 그 마른 어깨를 보듬어주고 싶은 보호본능을 일으킵니다.

 

인격장애인 서예지에게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김수현

 

여기에서 두 번째 여성상의 어두운 동굴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빛에 대한 갈망은 그녀가 쓴 동화에서도 나타납니다.

 

1회 방영분의 에필로그에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된 악몽을 꾸는 소년의 동화 내용은 그녀가 결코 마녀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견디며 이겨내는 사람만이 행복을 찾게 된다는 결론을 내주고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지만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것이 바로 서예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어줄 조력자, 보호자, 구원자로 김수현이 등장합니다.

 

김수현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를 대면하는 용기를, 서예지를 통해서 갖게 되니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가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통해서 어두운 무의식의 세계로부터 서로를 끌어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서예지의 캐릭터에 대해서 아마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두 번째 여성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사람에게는 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인기리에 방영된 <호텔 델루나>의 아이유를 떠올리게 하는 의상과 분위기가 서예지에게도 있습니다만, 아이유는 얼굴 생김새와 체구가 요염함보다는 귀여움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델루나의 여주인으로 당당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당끼로 웃음을 주는 귀여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두 번째 여성상이 주는 두려움을 지워버릴 수 있었습니다.

 

귀여움은 이 무의식적 긴장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귀여운 캐릭터들은 늘 호불호가 없이 모두에게 사랑을 받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예지가 맡은 고문영 동화작가에게는 귀여운 허당끼라는 매력이 첨가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안전지대가 없어 호불호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 길고 검은 흑단 머리가 주는 음산함,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그 낮은 저음,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그 독특한 의상들......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마녀 세이렌의 노래에 빨려든 로렐라이 언덕 아래 뱃사공처럼 넋을 잃고 따라가다 보면, 어디에 닿게 될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