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이 보여준 인간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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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이 보여준 인간의 이중성

by 브린니 2020. 7. 5.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문강태 역할을 맡은 김수현은 자폐 증상이 있는 형을 돌보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닙니다.

 

문강태 역할의 김수현

 

역할의 분위기에 맞게 김수현은 허름한 옷차림에 우울한 표정으로 등장했고, 드라마 초반에는 그저 일찍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아이의 아픔 정도로만 그의 과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김수현의 복잡한 내면이 드러나고 상대역 서예지가 맡고 있는 인격장애 캐릭터에 버금가는 심각한 내면의 균열이 있음이 감지되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보호사 역할을 맡고 있는 그는 환자들 앞에서 참으로 반듯하고 환한 웃음을 웃어주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의 웃음을 “조커 같다”고 느낍니다.

 

그 웃음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짓는 웃음이고, 자신의 내면은 한없이 어둡고 음울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이미 수없이 많은 균열이 나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기둥으로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할 수 있습니다.

 

자폐 형과 이야기하는 김수현

 

김수현이 겨우 열 살 무렵 되었을 때부터 어머니는 그에게 “네 형을 돌봐야 해. 그러라고 너를 낳은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자폐 형만 챙기는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김수현의 눈망울은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슬픔으로 가득했지만, 잔인하게도 엄마는 그의 존재 이유에 대해 한 마디로 ‘형을 위해 낳은 아이’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그 말은 존재 자체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잔인한 말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김수현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은 일종의 폭력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아가페적 희생’이라는 허울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김수현은 처음부터 내면에서는 받아들이기 싫고 거부하고 싶지만, 겉으로는 희생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이중적 삶을 강요당했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웃어”라며 아이의 입을 찢었던 조커의 아버지와 다를 것 없는 폭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란 그렇게 서로에게 말없는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고 그 안에서 행복하라고 닫아둔 울타리와 같습니다.

 

김수현은 형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김수현의 삶의 이유니까요.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시종일관 누구를 더 사랑하냐는 말장난 아닌 말장난이 등장합니다.

 

자폐를 가진 형이 동화작가 고문영 역할의 서예지를 너무 좋아하자 김수현은 전화로 “형은 고문영이 더 좋아? 내가 더 좋아?”라고 묻지만, 형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핸드폰을 꺼버립니다.

 

김수현 역시 서예지에게 계속 끌리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형에게 “나는 고문영보다 형이 더 좋아.”라고 말합니다.

 

그가 한 이 말은 형에게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 오히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모르는 형은 더 단순하게 이 말을 받아들이기에 진실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그의 존재 이유인 형과 비교할 만큼,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진실을 고백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서예지에게 끌리는 김수현

 

김수현이 일하고 있는 ‘괜찮은 정신병원’에는 괴상한 원장 김창환이 있습니다. 그는 굿을 하는 무당의 방울을 손에 들고, 악몽을 물리치는 처용 조각상 외에 각종 토속신앙 물품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때때로 기이한 돌출행동을 보여 환자들조차 그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는 환자복 안 입은 정신병자들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기인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환자들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정상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도 정신병리적 징후가 그 내면에 있음을 문득문득 암시합니다.

 

김수현 역시 그런 자신의 내면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어둠을 억눌러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불안한 모습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서예지는 처음부터 김수현에게 불쏘시개 역할을 했습니다. 형을 돌보느라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온 김수현에게 “너 놀고 싶잖아? 얼굴에 그렇게 써 있어”라고 도발하면서 김수현의 내면의 억울함을 터뜨려주고 있습니다.

 

김수현은 술을 마시면서 친구 재수에게 서예지 때문에 가끔씩 자기에게 돌보아야 할 형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내면을 자꾸 건드려 무거운 짐을 순간순간 내려놓게 하는 서예지가 김수현에게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어려서부터 형의 보호자로서의 무거운 삶을 살아온 김수현의 강요된 희생의 그물을 찢어 억눌러온 억울함과 분노를 터뜨리게 만들지, 그의 어두운 내면을 따뜻함으로 채워 강요된 희생의 억울함이 아니라 거기서 한층 더 성장하여 조커 같은 이중성의 고통을 극복하게 만들어줄지 앞으로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전자라면 서예지는 사이코 마녀일 것이지만, 후자라면 김수현의 인격의 어둠을 극복하게 해주는 구원자 천사가 될 것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내면을 치유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깊은 상처를 통해 성숙해진 사람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정신병원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수현은 지금도 상처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조커라고 느낄 만큼 속으로는 벗어나고 싶고 겉으로는 희생자의 삶을 사는 이중성을 견디지 못하기에 미성숙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텅 비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인격장애 서예지를 케어해 주면서 서예지 못지않게 텅 비어 있던 김수현의 마음도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조커의 이중성의 균열이 채워지고, 서예지의 마녀적 성향도 부드럽게 변할 거라고 시청자들은 기대하게 됩니다.

 

그 과정의 설레는 걸음걸음을 함께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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