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오래 한 중년 남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 1위는 “미안하다”였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왜 아내에게 미안할까? 그런 물음을 오래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애청하는 TV 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황건하, 고영렬, 길병민 트리오가 부르는 윤상의 <바람에게>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뮤지컬 배우와 한 맺힌 소리를 내는 판소리 가수와 깊고 중량감 있는 베이스 가수가 하모니를 이루어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혹시 그 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우연히도 마주치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니
아직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날 테니까
혹시 그 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나를 기다리거든 내 대신 위로해주렴
이젠 잊어야 한다고 없었던 일이라고
결국 끝내지 못한 그 많은 말들
안녕이란 세월 함께 가져다주렴
아직 다 못한 사랑이 울고 있는 그곳으로
용서를 빈다는 것!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쉽지 않은 그 일을 하게 만드는 사건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윤상의 노래를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소설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러티브는 노래를 듣는 사람 각자의 삶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지니 각자의 이야기를 담게 됩니다.
한국 대표 시인 중 한 사람인 서정주 시인은 말년에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손수 밥상에 아내의 밥을 먼저 퍼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젊을 때 저 사람 속을 많이 썩였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지요.
왜 남편들은 혹은 남성들은, 아내에게 혹은 어떤 여성에게 미안해할까? 그들이 미안해하는 대상은 한 명일까, 여러 명일까?
또 다른 TV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김정렬이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오랫동안 별거 중이라고, 젊고 잘 나갈 때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아내가 힘들어했는데, 그런 아내에게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고,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니 너무 미안하다고,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용서하고 돌아와 준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남편들은 혹은 남성들은, 아내에게만 혹은 한 여성에게만 미안할까요?
이 노래의 가사처럼 이젠 잊어야 하는, 없었던 일이 되어야 하는 그 누군가에게도 미안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의 미안함의 진정성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의 거절당한 미안함과 용서는 바람을 타고 떠돌게 됩니다.
가닿을 곳 없는 그 회한의 감정을 남자의 외로움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깊이 아프기는 합니다.
라라라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라 랄라라라
세 명의 팬텀싱어들이 부르는 하모니는 마치 끝이 없는 듯 우뚝 어느 순간에 멈춥니다. 그리고 무대의 불이 꺼집니다. 가 닿을 곳이 없는 어느 곳에서 멈춘 그 소리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표정 같습니다.
그런 노래를 만나서 라라라~ 노랫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www.youtube.com/watch?v=4YpY0x3rv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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