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3
본문 바로가기
창작글(시, 짧은 소설)

행복 13

by 브린니 2025. 6. 3.

행복 13

 

 

두 시간 뒤 김효은과 한성실은 성수동에서 만났다.

여기 어때요? 대표님.” 김효은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겠네요. 우리 같은 사람도 받아주니 좋네요.”

그러게요. 90년대 압구정에선 사람 봐가면서 들여보냈다면서요?

그랬죠. 나이 제한 같은 게 있었죠.”

세상 참 재밌어요. 어쨌든 변한다는 게 좋지 않아요?”

변하니까 세상이죠. 안 변하면 감옥 아닐까요?”

“맞아요. 옛날 사람이 말 안 통할 때 딱 그래요.”

 

저랑은 말이 통한다는 거죠?” 한성실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요. 대표님이 생각은 저보다 더 젊으시죠.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음식부터 주문하고 이야기할까요?”

두 사람은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와 셀러드가 나오는 2인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 저는 얼마 전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얘기하자면 좀 긴데,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부터 거의 고1, 2 때까지 왕따 비슷한 걸 당했어요.”

? 대표님이요?”

제 몸에 냄새가 난다며 애들이 피했거든요.”

어릴 때 잘 안 씻으셨어요?”

매일 씻고 또 씻었는데도 그랬어요. 집에선 아무도 그렇지 않다는데 학교에만 가면 다들 피했어요.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하면서 몇 년을 지냈어요. 나중에 커서 보니까 제가 어린 시절 어머니랑 같이 굿을 하는데 갔던 거예요. 거기서 어머니가 저에게 막대기 같은 걸 맡겼어요. 저는 그걸 들고 이리지리 끌려다녔죠.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고, 나름 재밌고 신기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뒤에 애들이 냄새난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정말 왜 냄새가 난다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죠.”

 

김효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독립영화에나 나올 법한 한 장면 같았다. 막대기를 들고 굿판을 돌고 있는 소녀의 모습만 흐릿하게 보였다.

 

근데 고등학교 언젠가부터 그런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어요. 냄새가 희미해졌나봐요. 그래서 친구도 한두 명 생기고 그랬죠.”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드셨어요? 공부도 못하고 학교 가기 싫고, 그러셨나요?” 

저는 학교 가는 걸 좋아했어요. 공부도 곧잘 했어요. 냄새난다고 피하면 처음엔 괴로웠지만 그러려니 했어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그럼 타의에 의해서 왕따가 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고독한 걸 선택하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학창시절이 힘들었겠네요."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니에요. , 저 초등학교에서 합창단을 했어요. 나중에 애들이 하도 뭐라고 해서 그만두었지만요. 그래도 합창단 할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기엔 가수들 쫓아다녔어요. 이선희 정말 좋아했고요.”

"어찌보면 보통 아이들처럼 청소년기를 보냈다고도 할 수 있네요."

"네,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왕따 비슷한 경험 있지 않나요. 크든 작든. 전 제가 대체로 평범했다고 생각해요."

 

“아, 참. 최근에 정체성을 찾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주 최근은 아니고, 3, 4년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했어요. 사실 저는 누굴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보람도 있고,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어요. 아이들 성장하는 걸 보는 게 행복했거든요. <행복한 청소부>란 책이 있어요. 청소부가 음악 공부를 많이 해서 아이들에게 클래식에 대해 잘 가르쳐줘요. 그래서 학교에서 초빙을 하지만 그냥 청소부 일을 계속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얘기예요. 저도 그렇게 살면 된다고 나의 정체성을 잡았죠.”

 

근데 뭔가 더 있죠? 그걸로는 오늘 대표님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 정당 대표가 된 것은 나의 정체성이 아니에요. 잠시 하게 된 일? , 일종의 사명 같은 거죠. 제가 발견한 정체성은 내가 어떤 존재냐 하는 거죠. 정체성이란 사회적인 거예요. 사회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어쩌면 그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가 부여하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정체성은 부여받은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내 스스로에게 명명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좋게 말하면 주체성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체성이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뭔데요?”

저는 거의 50살 때까지 사람들이 절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게 싫었어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게 괴롭기도 했고요. 인정욕구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인간의 제일가는 욕망이라는데 인정받지 못하니까 자존감도 낮아지고 그랬죠. 한 마디로 사람들과 말이 잘 안 통하는 거죠. 근데 이유를 알게 된 거예요.”

 

갑자기? 뜬금 없이요?”

제가 일했던 독서논솔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들끼리 스터디를 했어요. 애들 가르치기 위한 스터디가 아니라 교사들 역량을 높이기 위해 서로 토론하라는 것이었죠. 몇 년 지나니까 제가 리더 아닌 리더가 됐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스터디를 1년 정도 했어요. 책 한 권을 지정해서 미리 읽고 와서 토론하는 거죠. 근데 다들 책이 어렵다고 안 읽고 와서는 제 입만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곤 했죠. 근데 다음해 스터디 인원이 대폭 바뀐 거예요. 책임자가 내가 설치는 걸 보기 싫어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조직에서 미움받는 스타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아무튼 새로 바뀐 스터디엔 저보다 선배들이 더 많았고, 다들 회사에서 한가닥하는 분들이었죠. 저는 그저 그분들 하는 얘기를 듣는 편이었어요. 근데 하는 얘기라고는 자녀들 입시 이야기가 전부였어요. 아니면 갱년기가 와서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 살기 싫다,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다, 등등 이게 스터디 하러 모인 사람들인가 싶었어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느낌?”

맞아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나는 누굴까, 하고요.”

결론은요?”

앵커님도 좀 급한 편이시네요.”

 

, 그렇죠. 제가 궁금한 걸 못 참아요. 직업상도 그렇고요. 방송이 워낙 초를 다투어서.”

알죠. 그러나 오늘은 좀 편하게 계세요. 우리 데이트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제가 데이트하자 해놓고는.”

그 중에 한 분이 저더러 자기는 꽤 여유있어 보이네. 하시는 거예요. 제가 네? 하고 되물으니까. 그냥 편해 보이고 걱정 없어 보이네, 또 그렇게 대꾸하시더라고요.”

 

그렇죠. 대표님, 조급해 보이시는 분은 아니죠. 여유도 있고, 뭔가 될 것은 다 될 거다, 하는 식으로 배짱 있어 보이고요.”

사실은 안 그래요. 저 불안하고 걱정 많아요. 근데 다행히 표시가 잘 안 나나 봐요. 근데 그런 얘길 들으니까 내가 진짜 편하고 여유로운 사람인가? 다시 생각해봤어요. 그분 말씀 중 빠진 게 있더라고요

 

뭔데요, 그게?”

이런 거죠. 우리들은 너처럼 그리 여유를 부릴 수 없는데 너만 그리 여유롭냐? 넌 무슨 통뼈냐? 뭐 이런 거?”

아하. 너 참 편한 백성이네. 너 뭔데? 이런 거요?”

 

그렇게 나쁘게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그런 속뜻도 좀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나와 그분들과 다른 게 뭘까, 생각했어요. 그분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근데 50-60되니까 힘들어 하세요.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살았나 싶은 거죠. 자식은 다 키웠고, 부부관계는 살갑지 않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 그런 느낌도 들고.

 

그분들이 그럴 때마다 저는 이제 가족으로부터 해방되었으니 맘껏 자기 인생을 즐기라고 말씀드리죠. 맘껏 놀아라. 그럼 다들 놀라죠. 자주 병원엘 다니시는 분이 계세요. 이런저런 보험도 많이 들고. 그분은 늘 병에 대해서 걱정에 많으시죠. 제가 나는 건강진단 20년 동안 받지 않았다니까 정말 놀리시며 그런 사람 처음 봤다고, 그러다 암 걸리면 어떻게 하냐, 보험은 많이 들어놨냐고 하셨죠. 저는 국가 의료보험 말고는 없어요. 그것도 안 내고 싶은데 의무니까 내죠. 알고보니 저는 국가 의료시트템에 저항하고 있더라고요.”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저항하는 투사 같지는 안 보이시는데.”

 

또 한 분이 로봇 청소기를 비싸게 사셨는데 아주 청소를 잘한다고 자랑을 하셨는데 이번 연휴 때 집에 있는 가전제품 3개가 고장났다는 거예요. 로봇 청소기, 에어컨, 냉장고 정말 얼마 쓰지 못하고 다시 비싼 돈 들여 수리를 했다고 투덜대셨죠. 가만 보니 저는 5년째 같은 휴대전화를 쓰고 있고, 그것도 보급형이에요, 가전제품도 비싼 것보다 실속형으로 오래 쓰고 있어요. 현대 과학기술은 점점 발전하지만 동시에 일부러 고장이 잘 나게 설계해서 계속 새로운 것을 사도록 유도하죠. 저는 거기에도 저항하고 있는 거더라고요.”

“아, 그것도 저항이라?”

 

하하하. 그것만이 아니더라고요. 그분들 중 한분은 자녀를 점쟁이한테 날짜 받아서 낳았어요. 그래서 애가 운이 좋대요. 다른 분들도 대부분 자녀들 입시 때문에 낮밤 가리지 않고, 정말 애를 많이 쓰고 계셔요. 근데 저는 중2부터 고2까지 아들 녀석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지 않았아요. 3때 영어, 수학을 좀 했을 뿐이죠.”

아하, 또 우리나라 입시교육에 저항하셨구나?”

 

하하하. 맞아요. 일부러 저항 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저항한 거죠.”

, 소극적 저항도 저항이니까요.”

그래요. 근데 나의 소극적 저항이 모이면 큰 게 될 수 있어요. 나같은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큰 쓰나미가 될 수도 있어요.”

, 그래서 교육이 좀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아들 녀석도 걸작이에요. 1 어느 날 갑자기 자기는 수시로 대학 못 가니까 수능 봐서 대학 간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우리 부모 입장에선 수시가 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녀석은 공부를 별로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고, 근데 창의력이 뛰어난 편이어서 수시에 적합한 인재라고 봤거든요. 부모들이 설득을 하니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고2 말쯤 정시로 수능봐야 한다고 우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도 이것저것 알아봤어요. 현재 아들 녀석 내신이나 수행평가 등을 보니 좋은 대학 가기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교육부에서 하는 입시 박람회에 가봤어요. 교육부 공무원이 저더러 왜 독서란이 텅 비어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아들 녀석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거짓으로 읽었다고 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 자기는 아무것도 안 썼다고 그러더라고 대답했죠. 아들 말로는 학교 공부하기에도 바쁜데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요약본을 대충 훑어보거나 부모나 학원 선생들에게 줄거리 전해 들은 걸로 읽었다고 쓴다더라고요. 자기는 그런 거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안 썼대요.

 

그런데 그분이 아들 녀석 수상 내역을 보더니 놀라시더라고요. 상을 50개나 받았으니까요. 그분은 고민에 빠진 얼굴로 이런 학생이 잘 되야 하는데 하시면서 말을 흐렸죠. 모의고사 성적을 보면서는 차라리 수능으로 승부를 보는 게 낫겠다고 조언을 하셨죠. 다행히 아들 녀석은 수능에서 꽤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아들은 학교에서 법정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근데 SKY에 가기엔 좀 간당간당 했어요. 부모와 자식이 밤새 토론을 했죠. 아직도 권력욕을 못 버린? 아빠는 재수를 해서 최고 법대를 가자고 주장했지만 아들은 재수하기 싫다고 했죠. 저는 인서울도 반대했어요. 서울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자본의 독재가 사람을 하찮게 만드는 곳이니까요."

"아, 또 저항하셨구나." 

 

"네, 아빠는 아쉬워 했지만 저는 아들더러 집 가까운 대학에 들어가라고 강하게 말했어요."

"아들 녀석은 흔쾌히 지역국립대를 수석으로 들어갔어요.”

 

요즘 시대에 그렇게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효은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항 투사가 맞네요. 아님 정말……

어리석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 있죠.”

맞아요. 이 여자 세상 물정 정말 모르네. 아들 앞길 망치네, 했겠죠.”

 

죄송하지만 아드님은 지금……

졸업 전에 행정고시 봐서 내년부터 세종시에서 근무해요.”

와우. 5? 그러니까 여유가 철철 넘치실 밖에요. 자식 잘 되는 게 최고죠.”

. 뭐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제가 그 얘길 들은 건 몇 년 전이에요. 아무튼 저는 의료나 교육, 과학기술이나 자본독재에 저항한 게 되었어요. 저는 예수를 믿지만 교회엘 나가지 않은 지 20년 정도 되었어요. 교회는 생명력을 잃었어요. 예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요.”

 

제도권 종교에 저항하시는군요?”

그런 셈이죠. 이렇게 저렇게 보니 저는 정말 저항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게 정체성이다?”

사회에선요. 그러니까 제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모양이에요. 자꾸 다른 생각을 하니까요.”

 

그렇죠. 생각이 다르면 친구가 되기 어려우니까요.”

우리는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해 말을 많이 하죠.”

코기토 에르고숨.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건 생각을 올바로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말이에요. 생각을 올바로 하지 못하면서 존재를 들먹이면 안 돼요. 우리는 히틀러의 나쁜 생각을 막지 못했어요. 친일파의 올바르지 못한 생각도요. 민주주의를 그르치는 자들의 생각도 알아채지 못했고요.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데카르트 주체가 부정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올바르냐, 그르냐의 문제에서, 말하자면 윤리적 측면에서 의심받는 거예요. 더욱이 올바르지 않거나 나쁜 생각을 행위로 옮긴다면 실천의 영역에서 판단 받아야만 해요.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올바로 생각해야죠. 그리고 그것을 옳게 실천해야만 해요. 그동안 철학은 주로 생각 자체의 논리적 오류에 대해서만 논쟁했어요. 그러나 그 생각의 윤리나 실천 결과도 정말 중요해요. 문제는 그 생각이 생각일 때는 잘 구별하지 못하거나 속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많은 유럽인들은 나치의 생각이 옳은 줄 알았어요. 유대인은 차라리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게 더 낫다고 믿었죠. 대부분이 그랬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진짜 현실로 나타나자 다들 경악했어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빚은 거예요. 우리는 잘못된 생각을 거부해야 해요. 그래야만 그게 현실이 되지 않아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 사람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갑자기 병사하거나 교통사고로 죽는다면 마음이 시원하고 좋을까요? 행복할까요? 하물며 그런데 일부러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얼마나 잔혹할까요? 하지만 그 생각은 단지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거예요. 좀 미워하면 어때, 하고 넘어간 게 문제예요. 설령 그랬더라고 그 생각을 멈췄어야 해요. 생각이 자꾸 커지면 그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나쁜 생각은 생각의 차원에서 돌이켜야 해요. 심지어 그것이 법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해요.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법을 만들어요. 우리는 작은 생각일 때 그 생각부터 거부해야 해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잘못된 것이라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더 나은 것을 생각해야 해요. 이제 주체란 나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때 주체라고 불릴 수 있어요. 생각의 올바름이란 정치영역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자기 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 때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어요. 윤리가 상정되지 않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라고 거부해야만 해요. 정치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생각이 올바를 때만이 좋은 결과를 내는 거예요.”

 

김효은은 한성실의 생각의 빌드업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급상승한다면 사람들은 그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생각으로 나아가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작은 거부들,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다른 생각과 그 생각에 따른 실천들이 있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그녀의 생각의 습관들, 보잘것없다고 여길만한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 오늘 그녀가 제시하는 완전히 다른 정책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 갑자기 생각난 건데, 정신분석이나 현대철학에서 주체는 텅 빈 장소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멍? 결여? 빈 곳, 뭐 이런 말을 많이 쓰죠. 저는 철학전공자가 아니라서 용어 정의에 약해요. 다만 그것들이 무얼 이야기하려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우리 몸에서 24시간 열려 있는 공간이 뭘까요?”

음 코? ? 입도 많이 열려 있기도 하고, 눈도 그렇고, 항문도 그런가요? 하하하.”

구멍들은 열려 있죠. 그중에서도 코는 들어오고 나가고 자유로워요.”

, 들숨, 날숨.”

그렇죠. 다른 기관들은 들어온 것과 나가는 것의 성질이 같다고 볼 수 없어요. 귀는 늘 열려 있지만 나가는 것은 없어요.”

그렇네요.”

 

코만 텅 빈 공간에 적당해요. 들어오고 나가고 다 가능하고, 비어 있어요. 주체가 텅 빈 공간이라면 그 주체를 지배할 수도 있는 생각도 들어가고 나가고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주체가 무어라고 정의된다면, 어느 것이라고 한정되면 자유롭지 못할 거예요. 변하는 것도 불가능할 수 있어요. 그래서 주체는 비어 있는 것이 더 나아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생명을 만들 듯 생각도 들어오고 나가면서 주체를 자유롭게 하죠. 숨이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한다면 생각이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고착된다면, 요즘 꼰데라는 말이 유행하듯 생각이 변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자유로운 주체가 될 수 없을 거예요. 뭔가에 사로잡힌 주체가 되겠죠.”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성령을 받아들이거나 악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예전에 어떤 분이 큰 죄를 짓고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왔을 때 어느 순간 자기 몸속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게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고 간증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소위 귀신 들렸다는 것도 그런 건가요?”

아마도요.”

 

그런데 방금 저도 종교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대표님은 종교와 정치를 같은 궤에서 생각하시는 듯한데요. 헌법에도 종교와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신앙과 신념 속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삶과 정치, 직업 등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믿어요."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이론적인 측면보다 정치인이 자기 신념을 지키면서 정치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군요."  

"무엇보다 종교가 없으면 윤리가 없어요. 현재 우리 정치에서 윤리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철학에서도 윤리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그건 점차 현대로 올수록 그렇죠. 그리스 로마 시대나 제자백가 시대 모두 철학은 대개 정치였어요.”

, 그래서 스피노자부터 철학에서 윤리를 다루었다는 건가요?”

칸트도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고대철학은 달라요. 그들이 윤리를 생각했다면 노예제를 생산의 기반으로 두지 않았을 거예요.”

 

고대엔 많은 종교들도 노예제를 인정한 것 같은데.”

그래요. 그래서 종교가 제역할을 다하지 못한 거죠. 노예란 자연적인 게 아니에요. 아무도 노예로 태어나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노예는 없어요. 대개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죠. 힘이 없어 싸움에서 진 사람들이 노예가 될 뿐이죠. 그래서 아버지가 노예니까 너도 노예여야 한다는 잘못된 법칙이 생겨난 거죠. 어쩌면 지금도 옛날 노예제 같은 신분제가 존재해요. 근대 전까지 아버지가 왕이면 아들도 왕, 귀족이면 귀족, 양반이면 양반이었죠. 평민이면 평민, 노예면 노예.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아버지가 부자면 아들도 부자, 아버지가 기업가면 아들도 기업가, 뭐 이런 식이죠. 세습인데 상속으로 부르죠. 재산만 상속하지 신분은 상속하지 않는다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사실 그게 그거죠. 자본주의 시대니까 재산이 많으면 부자이고, 부자는 권력자이니까요. 우리는 북한을 왕조국가라고 비난하죠. 하지만 우리도 그래요. 돈에 의해 신분을 가르고, 돈을 상속하면서 신분을 세습하니까요.”

 

, 그래서 혼인금지법을 생각하신 거구나.”

근대시민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능력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게 윤리예요.”

그런데 현대자본주의사회는 돈이 장땡 아닌가요?”

그럼 그렇다고 선언해야 해요. 돈이 장땡이라고요. 그런데 우린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능력을 존중하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요.

돈이 장땡인데 돈이 장땡이 아니라고 속이고 있다는 말씀이죠?”

 

. 천국은 이 세상에는 없고, 저 세상에만 있다고 속이는 것처럼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 세상 천국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잘 살고 행복해지려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좀 비약이 심하신 거 아닐까요?”

,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돈이 전부 다, 라고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뭔데요.”

그럼 혁명이 일어나니까요.”

?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거 아니에요. 또 실패했고요.”

 

아뇨. 욕망의 혁명이 일어날 거예요. 돈이 전부라고 하면 정말 돈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미친 듯이 싸울 거예요. 그런데 돈이 전부는 아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돈 말고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런 식으로 욕망을 억압하죠. 공산주의는 다 같이 잘 살자였지, 돈이 전부니까 너도 나도 돈을 갖기 위해 싸우자, 하는 게 모토가 아니예요. 공산주의가 망한 건 모두 다 잘살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망한 거죠. 하지만 진짜 욕망의 혁명엔 대의가 없어요. 그저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돈 최우선주의만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부자들은 자신들만 부자로 살면서 비윤리적이라고 욕을 먹을 테니 다른 사람들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윤리나 가치를 따라 살라고 선전하는 것이죠.”

 

그래서 대표님은 어쩌자는 거예요?”

저는 그냥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사람에게는 부자가 되고, 남을 지배하고,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추구하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싸움에서든 승리자는 소수가 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내가 부자, 권력자, 주인의 욕망이 있다고 한들 하나뿐인 권좌를 차지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국 그런 욕망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남에게 지배당할 가능성만 키울 뿐이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크면 클수록 그걸 차지할 가능성보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까요?" 

"포기하지 못하니까 행복하지 못하는 거겠죠. 하지만 돈이나 권력을 좇으면 그것의 노예가 될 뿐이죠."

"간혹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그걸 기대하기엔 확률이 너무 떨어지죠.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게 뭐죠?"

 

"돈이나 권력을 좇아 헤매느니 차라리 다같이 잘 살고, 다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자는 것입니다. 한 자리를 놓고 싸우느니 사람 수대로 자리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부자, 모두가 권력자, 모두 주인이 되는 것이죠.”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모든 사람이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면서 서로 사랑하면 되죠.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거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을 수 없는 세상요. 아무도 자기 욕망을 거부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거죠. 다 부자가 되는 겁니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아주 쉬워요.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기는 이유는 자원이 한정되었기 때문이죠. 100명이 있고, 자원도 100이 있는데 한사람이 90이 가지면 나머지 99명이 10을 가지고 싸워야 해요. 하지만 한 사람이 하나씩 가지면 모두 다 부자예요. 아무도 더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요.”

 

“너무 이론적인데요. 그게 공산주의 아닌가요?”

거기에 자본주의를 입히면요? 100명이 노력해서 200을 만드는 거예요. 또 노력해서 300을 만들고요.”

너무 이상적인데요.”

서로 사랑하면 가능해요.”

 

서로 사랑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계속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가, 하고 말이에요. 우리는 정말 천국에 살고 싶어해요. 하지만 이 세상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만들고자 노력하지 않아요. 천국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해요. 왜 자기 욕망에 충실하지 않죠?

, 우리는 천국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군요?”

맞아요. 어느 소설에 여주인공이 스타가 싶어하지만 헐리우드로 가는 버스를 결코 타지 않아요.”

그 여주인공의 꿈이 스타가 되는 게 아니군요. 욕망이 절실하지 않은 거죠.”

“양가적이죠. 그녀는 자기 꿈이 깨지는 걸 막고 있어요.

?”

욕망이 달성되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으니까요.”

, 그게 무슨 말이죠? 스타가 되면 자기 꿈을 이루었으니까 좋은 것 아닌가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선 술도 못 마시고, 바람도 못 피고, 주먹질도 못하고, 밤문화를 즐길 수도 없을 테니까, 심심한 천국보다 화려한 지옥이 더 좋다고들 농담하죠. 우리는 천국에 살고 싶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욕망으로 남겨두길 원해요.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실현되는 것을 거부해요. 욕망이 달성된 천국이란 오히려 욕망이 없는 상태, 불교식으로는 열반이니까요. 사람은 신이 되기를 원하지만 진짜 신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신이 되면 정의로워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죄를 지을 수도 없으니까요.

 

욕망이란 늘 양가적이고, 이중적이에요.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애쓰지만 그 욕망이 정말 만족했다고 여기지 못해요. 더 큰 욕망을 향해 나아갈 뿐이에요. 그래서 소극적인 사람은 차라리 자기 욕망이 달성되는 것을 거부해요. 욕망이 강한 자들은 불로 뛰어들죠. 욕망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죠. 자유에 대한 갈망이 너무 큰 사람은 자유을 얻지 못해요. 그전에 모두 죽으니까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순간 죽게 되니까요. 자유란 2, 3세대에서나 가능해요. 자유란 선대의 피로서 얻게 되는 결과물이지 자유를 욕망한 사람이 직접 거둬들일 수 있는 획득물이 아니에요.”

, 머리 아파. 대표님 소피스트 같아.”

하하하. , 그런가 보죠. 하하하.” 

 

두 사람은 잠시 조용히 차를 마셨다. 김효은은 한성실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그냥 평법해보이는 아줌마처럼 보이는데 머릿속에는 보통사람은 꿈꿀 수 없는 생각이 잔뜩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대표님, 부자들한테 뭔가 맺힌 게 있으세요? 혼인금지법이나 토지국유화, 상속불가 등은 사실 서민들과는 거의 상관없잖아요. 이번 정부는 중도 보수를 표방하면서 오른쪽으로 많이 왔잖아요. 그런데 대표님은 완전히 왼쪽으로 가시는 것 아니에요?” 

 

저는 좌우 그런 거 정말 몰라요. 저는 그저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싶어요. 이치, 원칙 뭐 이런 것을 지키고 싶어요. 저는 종교를 정치에 접목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오직 종교가 말하는 진짜 가르침을 정치에서 실현하려고 합니다앵커님, 예수가 설교했던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뭔 줄 아세요?"

글쎄요. 뭐죠?” 

첫 번째는 하나님 나라였고, 두 번째는 돈이었어요.” 

정말이에요?” 

, 그래요. 부자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정말 유명하죠. 저도 아니까요.”

맞아요. 저는 부자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거예요.”

무슨 기회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

역시 빠르시네요. 부자들은 빨리 부자를 그만두어야 해요.”

“부자가 부자를 그만둔다고요?”

. 특히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자라는 신분이 대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부자는 신분이 아니에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거예요.” 

 

부자를 그만둔다는 소리는 정말 처음 들어요.”

어느 날 예수에게 부자 청년이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죠. 예수는 계명을 지키라고 해요. 청년이 다 지켰다고 하자 예수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해요. 부자 청년은 재산이 많아 근심하면서 떠났죠. 그 청년은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동시에 부자를 그만둘 절호의 기회도 놓친 거죠. 그 젊은 청년은 자기 스스로 벌어서 부자가 된 게 아닐 거예요. 젊은이가 재산이 많아서 근심할 정도면 분명 상속받은 걸 테지요.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부를 갖고 있기에 예수는 그에게 그 잉여재산을 가난한 자와 나누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기에 그것을 내놓지 못했어요. 천국이나 영생도 얻지 못했고요. 그는 한 손에는 재산을 한 손에는 영생을 쥐고 싶었지만 한 손에 든 것을 버리고 두 손으로 영생을 꽉 움켜잡았어야 해요. 그는 영생보다 돈을 더 사랑했어요.”

 

부자 청년은 영생을 욕망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아뇨. 그는 영생을 욕망했어요. 그러나 현재는 부를 누리고 싶었고, 영생을 나중에 차차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충분히 다 즐긴 후에 덤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했겠죠. 지금 우리나라 부자들처럼요.”

영생을 얻으려면 부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나요?”

돈으로 영생을 살 수는 없어요. 다만 부자를 그만두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죠.”

“왜 꼭 부자를 그만두어야 이웃을 사랑하는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공동체에서 부자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요. 부자는 존재만으로 남들을 탐욕이라는 죄에 빠뜨립니다. 부자는 자신이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부자는 자선을 베풀기도 하고, 기부 행위도 많이 할 수 있기에 자신이 공동체의 독이 된다는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어요.”

 

그럼 왜 부자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사람들은 부자를 약간 부러워했을 뿐이지만 자신들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죠.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 욕심을 부리는 것이 부자를 죽이고 그 사람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같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해요. 동시에 부자도 자신이 더 이상 이웃을 죄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부자인 걸 그만두어야 해요. 그래야 가난한 자들도 그들의 욕망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어요. 부자를 보니까 부자가 되고 싶은 거예요. 없다면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그걸 욕망할 수 없어요.

어렵네요. 부자 없어야 아무도 부자를 욕망하지 않는다?”

 

세리 삭개오가 남의 재산을 빼앗은 것에 대해 4배를 갚고, 재산의 반을 이웃과 나누겠다고 말했을 때 예수는 그 집에 구원을 선포했어요.”

부자들이 과연 스스로 그만둘 수 있을까요?”

법은 이럴 때 필요하죠.” 

그건 정말 행복당이 집권했을 때 가능하겠죠. 국회의원 수도 최소한 과반이 넘어야 할 테고요.”

 

네 그래요. 법은 언제나 힘을 동반하죠. 어쩌면 힘이 법을 도구로 쓰는지도 모르고요.”

법은 권력과 함께 가는군요.”

생각은 법을 넘어서지만 그 생각을 현실화할 땐 법이 필요하죠. 아니, 어쩌면 힘이 필요한지도 모르죠.”

"법이 곧 힘 아닌가요?"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죠. 힘있는자들이 법도 만드니까."  

"법은 정의가 아닌가요?"

"간혹 정의의 도구가 되기도 해요. 법이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몰라요. 다만 법은 도구 그 이상이 될 순 없어요."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통치잖아요." 

"그 무엇도 인간을 통치할 수는 없어요."

"대표님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믿잖아요."

"그것도 신이 인간에게 위임한 것이지 신이 인간을 직접 통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신이 이미 계시한 것을 인간이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만이 인간을 스스로 통치해요. 그게 주권이죠." 

 

김효은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법치주의만 지켜지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여겼는데 한성실의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에 빠진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다른 것일까? 올바론 생각을 하는 것과 법이 올바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의미일 것일 테지만 법을 넘어선 생각을 하고도 법을 위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법을 도구로 잘 쓰는 법은 따로 있는 것일까? 

 

대표님 말씀을 들으면 내가 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다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할 때가 있어요. 법을 넘어서도 정의로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법이 권력과 다른 것이 되고,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법의 통치가 될 수 있을까요? 근데 정의란 또 뭐죠?”

“저도 명확하게 정의할 순 없어요. 법은 정의로운 도구가 될 때만 법으로서 인정할 수 있어요. 정의란 인간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간과 인간은 서로 겹치지만 거기서 빈 곳이 발생하죠. 빈 곳을 인정할 때 정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봐요. 빈 곳에서는 아무도 상대를 해칠 수 없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신의 생각이랄 수도 있겠죠." 

 

"정말 어렵네요. 이런 게 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생각들인가요."

"어쩌면요." 

 

그래서 예수의 사랑을 들이미시는 건가요?”

물론 말하기 쉬운 해결 방법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어요. 사랑하면 만사 오케이냐, 하면서 따지겠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것밖에 없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 말고는 법을 넘어설 수 없어요. 정의도 사랑의 한 방식일 때만 정의로울 수 있고요.”

그런 사랑이란 도대체 뭐죠?”

 

지난 번 만남에서도 잠깐 에로스와 아가페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 좋았어요. 저는 사랑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쓰거든요.”

앵커님, 사랑 때문에 죽으려고 한 적 있으세요?”

아이, . 대표님도. 요즘에 누가 사랑 때문에 죽어요. 그냥 좀 밉고, 싫고, 슬프고, 아프고 그랬죠. 전 남친이 배신하고 떠났을 때.”

노벨상을 받은 쉼보르스카의 <사진첩>이란 시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하하하. 재밌네요. 말들은 다 죽겠다고 하지만 잘들 살아요.”

. 그렇죠. 근데 진짜 죽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죠.”

그러게요. 진짜 죽을 만큼 사랑했나?”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기가 자기 때문에 죽는 거에요.”

그게 무슨……

그 사람이 떠나서 너무 슬퍼서 죽거나, 그 사람이 죽어서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잃어서 죽거나,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분노에 차서 죽거나,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을 만큼 괴로워서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어쨌든 자기 때문에 죽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지는 않죠. 원인은 모두 자기에게 있어요. 연인이 죽었을 때 따라 죽는 것을 칭송할 수는 있겠지만 연인이 죽고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싫다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죽는 것 아닐까요?”

연인이 죽을 걸 대신 죽는 것은요?”

그것도 정도의 차이지만 연인이 죽을 걸 내가 대신 죽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에 죽는 거죠. 원인은 나에게 있어요. 내가 대신 죽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게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에요.”

슬픈 게 아니고요?”

슬프냐 기쁘냐의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고요. 그렇게 행위하는 게 나를 기쁘게 하느냐, 그런 나를 나 자신이 만족하느냐의 문제이죠.”

알 듯 모를 듯 하네요.”

그러니까 내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나에게 만족을 주느냐 하는 문제죠.”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김효은은 한성실에게 좀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애걸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에로스는 그 사람을 내 기쁨의 원천으로 삼는 사랑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이 죽으면(떠나면) 나는 내 기쁨의 원천을 잃은 상실감 때문에 죽고 싶도록 슬프죠. 이해돼요? 이런 사랑은 결국 나를 위한 거예요.”

. 맞아요.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인이 떠났을 때 공허하고 세상을 다 잃은 듯하고 슬프고 아파서 죽는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즉 에로스는 자기 사랑이고, 나르시시즘이에요. 나르시시즘은 자기가 대상이고, 에로스는 타자가 대상이긴 해요. 하지만 작동하는 시스템은 모두 같아요. 그 핵심에는 자기애(自己愛)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로스는 욕망하는 사랑이에요. 내가 어떤 대상을 갈망하고 소유하고 착취하는 사랑이죠.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물론 에로스도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는 희생도 하고, 나를 바치고, 죽기도 하죠. 에로스는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빌기도 하고,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죠. 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써요. 니가 행복하면 나는 죽어도 좋아, 이러면서요. 결국 그 사람을 위해 죽는 게 행복하니까 그래요. 죽어도 좋아, 이런 영화도 있죠. 사랑을 위해서 무엇이든 바치려고 해요. 그래서 에로스는 자기를 넘은 사랑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해요. 왜냐하면 에로스는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사랑이니까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하는 사랑이에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한에서 나도 그사람을 사랑하죠. 쉽게 말해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랑이 에로스인 거예요. 그러니까 돌고 돌아서 자기 사랑이 에로스인 거죠.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이에요. 에로스에서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이웃을 더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요. 두 가지가 같을 수도 없고요. 나의 만족을 위해서 이웃에게 사랑과 유사한 것을 줄 수는 있어요. 배려하고, 아껴주고, 도와주고, 구제하고, 자선하고, 우리가 봉사활동 끝나고 느끼는 느낌 아시죠? 아주 뿌듯하죠. 정말 자기 만족적인 사랑 아닌가요? 우리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이기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최고의 사랑이 에로스인 거예요.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하. 그래서 성경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죽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건가요?그럼 아가페는요? 아가페는 달라요?”

아가페는 이상한 사랑이에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신의 사랑이니까요. 신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죠. 신의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아요. , 물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좀 다르죠. 그들은 인간을 질투해서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하죠. 그리스 신화란 사실 신화 같은 인간 이야기니까요. 아무튼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재창조의 능력과 권한을 주죠. 인간은 생식을 통해 스스로 창조를 할 수 있어요. 물론 다른 피조물들도 어느 정도는 그렇고요. 그런데 인간은 그 창조행위에 사랑을 결부시켜요. 에로스는 창조하는 사랑이예요. 그래서 신의 사랑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창조와 다른 방식의 사랑도 있어요.

 

죽는 사랑이죠. 거듭나는 사랑이죠. 재창조의 사랑이랄까. 아가페가 그래요. 아가페는 아무런 기쁨도 없이 사랑해요. 그러니까 십자가 위에서 죽어요.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싫었어요. 하나님의 뜻을 거두어달라고 수없이 기도해요.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외쳐요. 아버지,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십니까? 하지만 그는 땅을 내려다 보면서 말해요. 아버지,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는 자기를 죽이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요. 그게 아가페죠. 아무런 기쁨도 없어 그냥 죽는 거죠.”

 

, 그런 것도 사랑인가요?”

바로 그거예요. 인간의 사랑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게 아가페죠. 사랑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은 게 아가페입니다. 사랑에 아무런 기쁨도 없는 사랑이니까요. 선한 사마리아인이 선한 것은 바로 아가페를 행위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그저 선한 행위를 한 것뿐이에요. 그에게 아무런 기쁨도 보상도 없어요. 죽어가는 유대인, 강도만난 사람은 그에게 아무런 기쁨도 되지 못해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니까 마음이 뿌듯했을 테고 기뻤을 거라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가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행위는 그 역시 강도만난 자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만한 행위였어요. 그도 강도에게 노출될 만한 짓을 한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도 그대로 갔는데 그는 도와주었어요. 더구나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유대인을 도운 것입니다. 그것은 한 차원 높은 사랑입니다. 에로스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라고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대부분이 하지 못하는 게 아가페입니다. 그래서 아가페는 윤리적인 사랑이며 사랑의 윤리인 것입니다.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주는 사랑이죠. 뭔가 돌아오기는커녕 심지어 목숨까지 내줘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는 사랑이죠. 그냥 주는 것, 그냥 죽는 것이죠. 원인도 이유도 없는데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윤리로서의 사랑 말입니다.”

 

아무런 기쁨도 만족도 없고, 오히려 해가 될 뿐인데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게 아가페라고요?

누가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내 주는 것, 오리를 가자고 하는데 십리를 가는 것, 속옷을 달라고 하는데 겉옷도 주는 것. 아가페는 그런 것을 말하는데 아무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죠.” 

 

그런 사람은 오히려 바보 취급 받죠. 오지랖이 넓다, 넌 배알도 없냐, 하면서요.”

예수가 당한 수치와 모욕이 그런 거예요. 죄가 하나도 없는데 벌거벗은 채 십자가에서 죽는 거요. 신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뛰어내려서 전지전능한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보라는 것, 얼마나 심각한 수치와 모욕인가요. 아가페란 그런 거예요. 사랑이란 말이 사치스럽게 들릴 정도로 치욕스런 십자가를 지는 거죠. 누가 그걸 기쁘게 여기겠어요. 어쩔 수 없어 당하니까 하는 거죠. 그게 신의 뜻이에요.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행위 해야 할 때 그게 아가페죠.”

 

근데 예수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한 거예요. 어쩌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하라고 하신 거죠?”

그래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도 못하는 걸 모든 인류에게 명령했으니까요.”

쉬운 거라면 말씀했을까요? 어려우니까 불가능한 계명 아닐까요?”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죠. 아니 불가능하게 만들죠. 인간 스스로.”

인간이 이기적이라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요?”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겠죠. 구원받는 것. 영생하는 것.”

.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는 거죠?”

글쎄요? 이유가? 원인이 뭘까요? 증명할 만한 근거가 있는 건가요? 정말 그냥 맹목적으로 믿는 건가?”

예수의 생애에서 분명한 근거가 있죠.”

그게 뭔데요?”

부활이에요.”

예수가 부활했으니까 그가 메시아라는 게 분명하고 자신들의 믿음도 보장받는 거겠군요. 구원을 받은 게 확실하고 죽어서 영생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겠네요. 그러니까 아낌 없이 순교할 수도 있고요.”

 

비슷해요. 안타까운 건 부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잊혀졌다는 거예요. 더 중요한 것도 다 잊었고요.”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예수는 우리에게 순교를 하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대신 서로 사랑하라고 하죠.”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고 하니까 연인이나 커플들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가페의 서로 사랑은 에로스의 기브앤테이크가 아니에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는 거죠. 만인이 만인을 사랑하는 거예요.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는 거죠." 

"다수 대 다수?"

"서로 사랑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A와 B가 서로 사랑하면 에로스처럼 보일 수 있어요. 사랑을 주고 받으니까요. 근데 에로스는 A가 B를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목적도 보상도 없이 사랑해요. 다시 B는 A부터 받은 되갚을 수 없는 사랑을 C에게 마구 베풀어요. C는 D에게 D는 E에게,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요. 어느 날은 F가 알지 못하는 A에게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사랑을 서로 서로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가페죠. 그러니까 아가페는 대상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아, 특정한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는 방식. 대상이 누구든 지금 만난 사람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 말씀이구나. 근데 무턱대고 사랑을 줄 수는 없잖아요." 

"때와 장소가 있겠죠. 사랑의 방식도 있을 수 있고요."  

사랑의 방법요? 그게 뭐죠?”

부활 이전에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요?”

최후의 만찬?”

, 늘 예수는 식탁을 베풀었죠.”

만찬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제자들 발을 씻겠나?”

, 맞아요. 발씻음이 있었죠.”

 

그게 왜 중요한 거죠?

예수는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었어요. , 계급을 상징하는 옷을 벗고, (노예)이 들어야 할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왕이 노예의 발을 씻는 건가요?”

. 그게 성육신이에요. 신이 인간의 몸을 입은 거죠. 예수는 스승으로서 제자의 발을 씻었어요.”

 

동양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데. 군사부일체잖아요.”

“네. 예수는 설교도 많이 했지만 늘 자신의 행위로서 자신의 말을 몸으로 바꾸었어요.”

그것도 성육신이죠. 말씀이 육신이 되는 거요.”

네 그래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요한복음에서 말한 것은 단지 예수의 탄생에 국한된 말이 아니에요. 예수는 전생애를 통해 말씀이 몸이 되는 행위를 계속했어요. 어쩌면 예수의 복음은 말-복음을 넘어서 행위-복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발씻음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하는 건 예수의 철저한 겸손이에요.”

 

, 그거 정말 어려운 거 아니에요? 겸손은 힘들다!”

우리는 겸손을 잊었어요.”

맞아요. 겸손이 가장 힘들다는 대중가요도 있어요. 겸손이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겸손하지 못하면 사랑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발씻음은 겸손이고, 겸손이야 말로 예수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죠.”

남을 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없죠.”

그러니까요? 겸손할 수 없으니까 사랑할 수 없겠네요. 그럼 어쩌죠?”

 

예수는 신의 아들인데 인간으로 와서 아버지의 뜻을 이뤘어요. 그것이 겸손이죠. 신이 인간에게 죽임당하는 것 말이에요. 예수는 신이지만 그것을 모두 인간으로서 감당했어요. 그러니까 인간인 우리에게도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요. 너희들은 나를 믿고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니 나의 제자들인 너희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해라. 다른 사람은몰라도 나의 제자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말씀이죠.”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군요.”

 

.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죽음의 영역이지만 겸손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삶의 영역이에요. 예수도 죽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었어요. 살아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겸손하게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거예요.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거죠.”

 

겸손하기도 힘든데 발까지 씻어줘야 하고. 그러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고 할까요?”

그러니까 의인은 하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자를 찾을 수 없죠.”

저도 못가고, 대표님도 못가는 거예요?

 

예수의 사랑과 긍휼로 우리 모두 천국에 갈 거예요. 그게 예수가 가져온 복음이죠. 죄인들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천국에 간다는 거죠.”

그런데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고 말씀했잖아요.” 

주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아시죠. 내가 주여 주여 하는 자인지 통회자복하며 예수를 찾는 사람인지.”

정말 그걸 어떻게 구분하죠.”

 

자기 자신이 이미 다 알 거예요. 내가 죄를 고백하면서, 내가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고 있는지.”

 

저는 주여 주여 하지도 않는데.”

앵커님 그러니까 더 잘 됐죠. 이제부터 한 사람씩 사랑하면 되죠. 남편부터.”

, 맞다. 우리나라 여자들 대개 남편이 원수니까 남편을 사랑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맞아요. 그렇게 사랑하세요.”

 

 

'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15  (5) 2025.06.06
행복 14  (2) 2025.06.06
행복 12  (7) 2025.05.30
행복 11  (3) 2025.05.28
행복 10  (7) 2025.05.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