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2
“아버지가 농부면 아들이 이어받을 수 있잖습니다. 아버지가 우동집하면 아들이 이어받을 수 있고요.”
“네, 그렇습니다. 1가구 1주택, 1인 1직업 원칙에 의해서 그게 맞습니다.”
“그럼 아버지가 경영자면 아들이 경영자 되는 게 맞잖습니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창업했다고 해서 그 회사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투자를 해서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모집해 기업 활동을 합니다. 회사가 점점 커져서 주식회사로 발전하고 대기업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것은 회사 설립자 혼자 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자본가, 경영자, 노동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죠. 서로 함께 뜻을 모아 일을 합니다. 회사는 시작부터 사회적인 것입니다. 개인의 것이라면 1인 기업으로 계속 머물러야지 왜 주식회사로 발전하고 대기업이 되는 것입니까. 1인 개인 회사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기업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을 하고 소득을 나누는 구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창업했다고 해서 내가 지분이 많다고 해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동시에 내 회사니까 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생각도 없어야 합니다. 내 자식이 회사에 많은 기여를 했다면 그만큼 소득이나 지분을 나누어줄 수 있겠죠. 아니면 경영권 분쟁이 왜 생기나요? 기업이란 애초부터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개인사업자, 구멍가게 사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기업은 이미 공공의 것이며, 사회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일로 재판정에 섰을 여러분께 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고인은 그동안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기에 법적 형량보다 낮은 형량을 적용하겠다, 하고 말입니다. 농부나 개인사업자, 노동자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도 않고, 감형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대기업은 사회공익사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 회사니까 내가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식이 능력이 있다면 자기 능력껏 회사의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너 일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경영은 전문가들 데려다 쓰면 되니까요.”
“네, 좋습니다. 그러니까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 창업주가 돌아가시고 2세대, 3세대까지 오너일가가 지분을 많이 소유하고 경영을 책임지거나 혹은 다른 경영인에게 맡기고 오너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만약 더 이상 오너 일가의 구성원들이 회사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지분에 따른 이익만 챙긴다면 그게 옳은 것일까요? 더욱이 창업주가 죽고 몇 세대가 지났는데도 계속 그런 식이라면 말입니다. 그것은 해당기업에게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그래서 결혼금지법은 창업주 혹은 오너가 살아 있을 때 회사 지분을 가족에게 증여하라는 것입니다. 증여받은 사람은 80%의 세금을 내고요.”
“80%내고 나면 지분율이 떨어져 어떻게 경영을 합니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진짜 자본주의식 경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너 일가의 2세대 지분이 적어졌으니 회사를 위해 더 큰 기여를 해야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되고 경영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죠. 그렇지 못한데 계속 경영권을 유지한다면 그게 오히려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재벌들을 문제삼는 것은 그들이 회사를 자기 가족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물려주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기업을 물려받으려면 그만큼 기여를 해야 합니다. 그 이유 말고는 기업의 경영의 맡을 다른 근거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능력이 있어서 80%를 내어놓고, 20%만으로도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다면 그들이 회사를 경영할 것입니다. 3세대도 마찬가지고요.”
“아니, 왜 80%를 내야 하냐고요. 지금도 상속세를 40-50% 내는데”
“여러분이 과연 40-50% 내시나요?”
한 대표가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거라도 내면서 경영권을 물려준다면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내지 않고 불법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기업은 가족 경영이 가장 실속이 있습니다. 내 가족들은 이 기업이 내 것이니까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의 가족만으로 경영도 하시고 노동도 하시면 되겠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회사에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요. 여러분이 계속 그렇게 주장하시려거든 구멍가게나 가족기업을 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대기업을 경영하시려거든 그 기업이 나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본가, 경영자, 노동자 기타 다른 사회환경의 결합체라는 것을 인정하시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경영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진들과 함께 하는 것 아닙니까? 창업주나 2, 3세대 오너가 돌아가시면 계속해서 이사진들 중에서 지분도 어느 정도 있고, 경영 능력이 있는 분을 경영자로 모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오너일가에서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80% 증여세를 물려서 건전한 경쟁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제 생각이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빌게이츠 자녀들이 재산을 많이 소유했을지 몰라도 MS를 경영하나요?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도 대표 자리에서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재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다 해먹거나 가족에게 물려줘서 대대손손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전근대사회, 왕정시대에서나 볼 법한 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오너일가가 꽉 잡고 일을 해야 회사가 돌아갑니다. 주인 없는 회사는 곧 망해요.”
“그럴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우가 망한 것이 오너가 없기 때문인가요? 대우의 여러 계열사들은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오너가 아닌 경영인과 이사진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고요. 대우 계열사들 중 사라진 곳은 그 회사 자체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오너가 없다는 이유로 망한 회사는 사실 별로 없지 않을까요? 경쟁력이 있는 회사는 오너가 바뀌어도 반드시 살아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회사를 세웠고, 아버지가 물려받아 더 크게 키웠죠. 그리고 제가 3대째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물려주세요. 대신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요. 증여세 80%를 내시고요.”
“난 공정하게 할 생각이 없어요. 내가 알고 있는 공정은 아버지가 내게 물려주었듯 나도 내 아들 녀석에게 물려주겠다는 것뿐입니다. 상속은 예부터 그러해왔던 것입니다. 예부터 그러했던 것을 법조문 좀 바꿔서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지요.”
“역사는 흐릅니다. 그것은 바뀐다는 뜻이지요. 신라나 고려시대는 여성들이 자유분방하게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엔 여성들은 억압받았고, 남성들은 첩들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20세기 끝물까지도 남성들이 여자들 좀 울리고 다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런데 21세기가 되자 미투운동이 벌어지고 성범죄와 관련해서 많은 남성들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바뀐 것이죠. 그래서 미투로 처벌받은 많은 남성들이 억울해 했죠. 불과 얼마전까지 그저 술안주거리였던 여성 편력이 갑자기 중대범죄가 되고 말았으니 그럴만도 하죠. 하지만 그들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몰랐던 거죠.
그럼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가족에게 재산이나 회사 지분이나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모든 것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개인의 능력으로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찬스 쓰던 좋은 시대는 다 간 것이지요.”
“그럼 혼인금지법이니 토지국유화를 막는 수밖에.”
“네, 그렇게 하세요. 아직 발의조차 안 되었으니 너무 걱정마시고요. 여러분이 이렇게 나와 계신 것만 보더라도 이 법안은 머지않아 발의되고, 통과될 것 같습니다.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사실 생각이시라면 지금부터 아주 열심히 막아보십시오.”
“공청회 그만 끝냅시다.”
“빨갱이도 이런 빨갱이가 없구먼.”
“내가 피땀 흘려 벌어서 모은 재산을 내 가족에게도 줄 수 없다니 이게 무슨 놈의 법이야.”
“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정말 실용적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큰 자동차 생산 공장에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라인에서 일하는 것은 대부분 AI 로봇입니다. 노동자들의 일거리를 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주요 아르바이트 거리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편의점이나 마트,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제 식당이나 카페, 편의점과 마트 역시 곧 로봇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유럽 어느 선진국에서는 중요한 일은 모두 AI 로봇이 맡아서 하고,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맡아서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돈벌이를 해야 경제가 돌아가니까요.
여러분들은 비용 절감이나 업무 효율을 위해 똑똑하고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AI 로봇을 선호할 것입니다. 생산라인이나 기타 중요한 업무에 로봇을 투입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올릴수 있으며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거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편의점, 마트, 식당과 카페는 물건을 사러오거나 식사나 차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벼야 수익을 얻을 수있는데 사람들이 일거리가 없어 돈이 없으니 물건을 살 수도 없고, 먹을 것을 장만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런 일은 곧 수년 내에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이 만든 물건들은 누가 소비할 수 있을까요? 로봇으로 인해 저비용 고효율로 높은 생산율을 자랑한들 그것을 소비할 주체는 바로 사람입니다. 로봇은 먹고 마시지 않아도 되고, 옷을 사 입지 않아도 되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텔레비전이나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이 오직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한다면 곧 더 이상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소비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여러분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돈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서도 막바지에 도달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입니다.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생산한 물건들이 소비되어야 합니다.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본이 자본가나 기업가에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합니다. 분배가 되지 않고, 쌓여 있는 자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시대도 곧 막을 내릴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해서 집 하나를 관리하기 힘들 것이며 건물을 임대해서 장사를 하고 싶어도 손님이 없을 것이며 결국 공실이 넘쳐나고 건물은 텅 비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일도 하고, 쓸 만큼 돈을 벌고, 그 돈을 먹고 사는 데뿐만 아니라 즐기는 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정한 인구가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노동이나 생산 주체로서보다는 소비 주체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K-pop, K-드라마 등 한류도 그것을 소비할 사람이 있어야 더 활성화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고 잘 놀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돈을 쥐어 줘야 합니다. 잉여재산이 있다면 바로 바로 사회 재산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AI 로봇에게 일거리를 다 빼앗겨 생산 주체로서 능력을 잃게 된다면 소비 주체로서 거듭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기업들의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야 하고 문화를 소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 역시 일자리를 잃는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은 로봇이 하고, 사람들은 더욱 창의적이고,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면 됩니다. 책을 읽고, 영화나 미술, 음악을 향유하면서 소비 주체로서 살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는 사회의 자원을 잘 분배하면 됩니다.
토지 자연화, 결혼금지, 상속금지 등은 오히려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제 소유 자체가 의미 없어 질 것입니다. 정말 사유재산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 공동의 것으로 하고 그것을 사회구성원들이 마음껏 나눠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성장해야 하고, 부를 축척해야 합니다.”
“좋은 게 나오면 늘 그랬죠. 아직은 시기상조다. 우리는 더 나쁜 걸 좀더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고, 좋은 것이라면 지금 당장 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에요. 사람이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말이야.”
“여러분도 잘 아시는 빌 게이츠는 부자로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베스킨라빈스31 회장 아들이 상속을 거부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건강을 해치면서 돈을 번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는 환경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해로운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고발합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상속이 정당한 것이 되려면 상속하려는 재산 역시 정당하게, 올바르게, 정의롭게 번 돈이어야 합니다.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치면서 번 돈이라면 상속할 가치가 있을까요?”
“아니, 그 사람 웃기는 사람이네. 그럼 공장을 해서 번 돈도 부정하는 거야? 공장을 돌리면 어쩔 수 없이 공해가 발생하고, 폐수도 나오는 거라고. 자본주의 시대에 그게 왜 나빠?”
“자본주의 시대니까 어쩔 수 없다고요? 그럼 자본주의 사회를 다른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자본주의 속에서 끊임없이 정의로운 경제가 무엇인지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정말 빨갱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구먼.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하자는 거야?”
“아뇨.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자는 것뿐입니다.”
“사랑하자면서 남의 재산을 빼앗는 거야? 말이 돼, 이게?”
다들 저마다 한 마디씩들 하면서 공청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이 나라 경제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공적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이 나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데도 그만큼 기여한 바가 크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만드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고, 계층간 위화감 조성에도 일익들 담당했다. 돈이면 다 된다는 풍조를 만들어내는 데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만든 것도, 돈 없으면 사람 구실 못하게 만든 데에도 책임이 있다.
한성실은 굳게 믿었다.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성경 말씀은 일반 경제에도 절대적으로 적용된다. 분배가 없는 성장은 곧 경제 자체를 멈추게 만들 것이다. AI 때문에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될 것이다. 생산에서는 소외되고 소비만 하게 되는 계층이 생겨날 것이다. 심지어 소비조차 못하는 극빈층도 늘어날 것이다. <설국열차>에서처럼 뒷자리 사람들은 벌레 같은 것을 먹으며 연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경제는 돌아간다. 식충이라고 욕먹는 사람이 있어야 농부의 노력이 결실을 얻을 것이다. 불과 5%만 생산하고 95%가 놀고먹을지라도 그 95%는 개돼지, 쓰레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이다. 내가 만약 5%에 속한다면 나의 생산으로 많은 이웃들이 먹고살 수 있으니 기뻐해야 한다. 내가 95%에 속한다면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후로 구원은 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달려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만약 신이 인간을 직접 구원한다면 말 한 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인간 예수를 보내서 인간을 구원했다. 그러므로 예수 이후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인간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그를 신으로 숭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가 살았던 대로 산다는 뜻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죽었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가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예수가 죽은 것처럼 죽고, 예수가 그랬듯 이웃을 구원할 것이다.
공청회가 끝나고 김효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대기업 회장님들하고 한 판 하셨다면서요.”
“그러게요. 나도 모르게 좀 세게 말하게 되었지 뭐예요.”
“앞으로도 험한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우호적이지 못한 사람들하고는 대화가 잘 안 되요.”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제가 더 온유했어야 해요.”
“예수님도 성전을 더럽히는 장사치들에겐 채찍까지 휘두르셨는데요, 뭘.”
“제가 예수도 아니고, 그분들도 그런 분들이 아닌데.”
“그렇다고 그분들이 진짜 좋은 분들도 아니에요. 정말 그분들이 오블리즈 오블리제였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굴러가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죠. 부자들은 대체로 그래요. 거저 얻었으면 거저 나눠야 하는데.”
“부모 잘 만나서 떵떵거리고 사는 게 마치 신의 선택이라도 받은 거라고 착각하나 봐요. 그저 운이 좀 좋았을 뿐인데 말이에요.”
“또 모르죠. 불교에서처럼 오늘 내가 잘 사는 것은 윤회를 통해 선업을 많이 쌓아서 복이 온 것일 수도 있죠.”
“하하하. 대표님 종교 공부를 다방면으로 하시나봐요. 하지만 그 어떤 존재가 나일까요? 뭐, 물론 윤회할 때마다 매번 다른 나일 수 있죠. 하지만 오늘, 지금, 여기의 인생은 단 한 번 사는 거예요. 자신이 개척하고 자신이 책임져야죠. 왜 부모 탓을 해요. 부모가 부자든 가난하든, 그것으로 나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어선 안 되요.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나로 존재하고, 오직 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해요.”
“그렇죠. 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는 수많은 호모 사케르를 양산하게 될 거예요. 생산수단이 없고, 심지어 노동수단도 없어서 버려지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저는 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봐요. 부가 독점되지 않고, 땅과 같은 자연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자연을 공유하듯 사회적 부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역시 대표님, 꼭 그렇게 되실 거예요. 늘 응원할게요.”
“앵커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정말 힘이 돼요. 고마워요.”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네, 데이트요? 그런 말 30년 만에 처음 듣네요. 설레는데요?”
“저는 집밥 잘 못 하니까, 요즘 핫한 성수동에서 피자랑 파스타랑 아, 스테이크도 먹으면 어때요? 그런 거 좋아하세요?”
“저도 그런 것 좋아하죠. 금방 스케줄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 저도 힘을 좀 뺐더니 배고픈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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