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1
며칠 뒤 서울 강남에서 행복당 정책에 관한 지역 공청회가 열렸다. 이 지역은 결혼금지법, 아니 상속을 없앤다는 정책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아직 발의도 되지 않는 법안이 마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처럼 생각하고 반발하고 나선다는 것이었다.
김효은은 마침 방송이 없는 시간대라 사회를 자청하고 나섰다.
“오늘은 행복당 한성실 대표님과 함께 결혼금지법에 관해 좀더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역주민 대표 3분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한성실 대표님 함께 하셨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 질문하시면 대표님이 대답하시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네, 압구정동에 사는 김은실입니다. 상속이 없다고 하셨는데 개인의 재산을 국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나요?”
“국가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가는 살아 계신 국민의 재산은 반드시 보호할 것입니다. 어느 분이 자기 재산을 가족과 나누고 싶으면 그분이 살아 계실 때 증여하시면 됩니다. 굳이 상속할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증여세가 80%라니 말이 되나요? 상속세는 높아도 40-50%인데요.”
“먼저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이므로 명의자가 돌아가셔도 가족이 계속 거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증여는 집 한 채를 제외한 부분을 가족이나 친척, 친지와 나누는 것입니다. 증여세는 증여 받는 사람이 부담하는 세금입니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증여받는 재산은 그야말로 불로소득입니다. 자기가 일해서 번 것이 아니죠. 그러므로 80% 세금을 물고 20%만 취하더라도 매우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저 받는 것이니까요. 1조라면 2천억, 1억이라면 2천만원이 그냥 생기는 것이니까요.”
“아니, 우리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는데 왜 세금을 80%나 내야 됩니까?”
“청담동 이경진 님께서 질문하셨네요. 상속이 아니라 증여라는 점, 다시 기억하시고요. 대표님, 답변해주시죠.” 김효은이 대꾸했다.
“우리는 근대 사회란 개인의 권리와 의무, 자유와 능력 등을 존중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 개인의 것이죠. 아버지가 날 낳았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물려받아야 한다는 정당한 근거가 있을까요? 아, 저는 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몸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머니 뱃속에서 10달 있다가 세상으로 나옵니다. 그저 알몸으로요. 그런데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고, 사회로부터 교육을 받은 뒤 성인이 되어 경제 활동을 합니다. 성인이란 무엇입니까? 부모로부터 독립된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자기 손으로 벌지 않은 것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나요?
부모의 재산은 부모가 애써서 모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것이고,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 그분들 자신을 위해 쓸 돈입니다. 그분들이 충분히 다 쓰고도 남은 돈이 있다면 나눌 수 있겠죠. 그러나 그때부터 그 재산은 잉여 재산이며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공적 재산입니다. 한 개인이 다 쓸 수 없는, 쓰고도 남는 것을 사회 공동의 것으로 삼는 게 이치에 맞지 않나요? 그래서 그분이 그 재산을 누군가에게 증여하시려면 20%만 사적으로 증여하고 80%는 사회를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아니, 애써서 모은 재산을 죽기 전에 다 쓰고 죽으라는 말씀인가요? 다 가족들 먹여 살리고 자식들에게 남겨주려고 그렇게 죽을둥 살둥 벌어 모은 것 아닙니까?”
"서초동 이정근 님께 질문하셨는데요. 대표님께서 어떤 답을 하실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요." 김효은이 받아 한성실에게 토스했다.
“우리가 무엇을 벌었다고 할 때 그것은 순수하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서 번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면 땅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것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햇볕이 쬐고, 바람과 공기 등등. 자연으로부터 큰 혜택을 받아야 농사가 잘 되고 소득도 많습니다. 반대로 자연재해가 잇따른다면 농사를 망치겠죠.
우리가 직장에 다닌다고 해봅시다. 내가 직장에서 담당하는 부분은 아주 작습니다. 그 회사가 사업을 잘해야 나도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 혼자 일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협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번 돈은 내가 혼자 잘해서 번 게 아닙니다. 농부는 자연으로부터, 직장인은 회사와 노동자 동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소득은 이미 사회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개인의 재산의 상당 부분은 이미 공적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은 다양합니다. 자아실현이나 자기가 욕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땀 흘려 일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일하다 보니 소득이 늘고 재산도 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도울 수도 있고, 재산을 가족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증여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잉여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남아도는 것은 증여할 수 있고, 그냥 쌓아두느니 나누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잉여 재산이란 오로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재산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한 그 재산 속에는 자연이나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의 80%를 사회로 돌리는 것은 그리 부당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대표님은 참 이상한 논리를 펼치시는군요. 모두 다 한 가족인데 다 떼어서 개인이라고 하고, 재산도 다 각각이라고 하시면 좀 곤란하죠.” 김은실이 말했다.
“가족 구성원이 한사람, 한사람 다 개인이 아니면 뭐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남겨진 재산을 두고 자녀들끼리 싸우는 일이 많은데 그게 다 각자 개인이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면 재산을 두고 싸울 이유가 없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 하니까 1가구 1주택을 인정한다. 그것을 넘으면 잉여 재산으로 사회에서 취할 수 있다. 자식이 3명일 경우 1채는 100% 승계, 2채, 3채는 최소한의 증여세를 지불하고 승계할 수 있다는 게 행복당의 생각입니다. 그 나머지는 80% 증여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고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요?”
“아무래도 80%는 좀 과한 것 같은데요.” 이정근이 말했다.
“그게 너무 높다면 수정할 수는 있겠죠. 어느 분이 집을 3채 이상 갖고 있기 쉽지 않습니다. 물려줄 재산이 많은 분도 그리 많지 않고요. 그러므로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집이 한 채뿐인 분은 증여세를 한 푼도 물지 않습니다. 지금은 집값에 따라 상속세를 물고 있으니 더 이익인 셈입니다. 총 3채까지는 최소한의 세금만 물게 되고요.”
“대표님, 그럼 세수가 더 줄게 될 텐데요.” 김효은이 끼어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꼭 필요한 증여나 승계에는 세금을 거의 물리지 않고 나머지에 많은 세금을 물리면 세수는 비슷하지 않을까요?”
“자동차는요?”
“자동차도 1대까지는 상관없습니다. 사실 자동차는 집과 달리 꼭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자동차가 얼마나 필요한데요. 그것도 가족 수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동차 역시 1가구 1대 원칙으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 수대로 증여하는 것을 검토하겠습니다. 동시에 대중교통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중교통이 얼마나 불편한데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알겠습니다. 자동차를 집과 마찬가지로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개인이 살아 있을 때 배우자나 자녀에게 자동차를 1대씩 증여하는 것은 용납하는 게 낫겠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남아도는 것에는 반드시 세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그럼, 돈을 어디 다 다 쓰라는 말이죠? 여행도 한두 번이고, 옷을 사거나 외식도 어느 정도지 어떻게 다 쓰고 죽으라는 겁니까?”
“그러니까 자기 욕심껏 쓰고 남는 재산은 공공의 것으로 여기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욕망하는 동물입니다. 많이 벌고 싶어서 많이 벌었는데 그걸 왜 나누라는 겁니까?”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되네요. 개인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장려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그 돈을 자기 욕망껏 다 쓰는 것도 다 가능합니다. 얼마든지 허용됩니다. 쓰고 남았으니 그것을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그것을 받는 사람은 거저 받는 것이니 20%만 받고 80%는 세금으로 내라는 것입니다. 국가는 그 세금으로 국민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다 안 쓰고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다니까요.”
“왜죠? 왜 가족에게 물려주시려는 겁니까?”
“내 아들 딸들이 없다고 무시 안 당하게 하려고요.”
“좋은 말씀입니다. 혼인금지법을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부모의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이 차별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부모가 잘 살고 지위가 높으면 그 자녀들의 인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대우를 받고,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재산이 없고, 지위가 낮으면 자녀들의 인격과 상관없이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그런 사회가 계속되지 않도록 부모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들도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벌고, 노력해서 지위도 얻어야 합니다. 더 이상 부모의 덕을 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지금 말씀하신 분도 저와 같은 생각 아닙니까? 더 이상 우리 가족, 우리 자녀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행복은 나만 소유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만 행복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개인의 인격과 능력 등이 기준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 혈연, 지연, 기타 사회적 배경이 한 사람의 앞길을 좌지우지 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행복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버는 돈 하나도 나 혼자 잘해서 버는 게 아니라 사회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개인이지만 사회 구성원입니다. 한 개인은 그 개인의 한계 속에서 자신의 소유와 권리와 의무를 진다고 하겠습니다.
사회는 한 개인에게 그 사람을 초과하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개인이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재산을 올바로 나누기 위해서는 그 재산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만 그의 소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재산을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재산을 올바로 쓰고 나머지는 처분해야 합니다. 한 개인이 다 쓰고 남은 잉여 재산에는 세금을 물려 사회로 환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도 상속하지 않아야 아무도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한성실이 말을 마치자 김효은이 공청회를 마무리하면서 말했다.
“한평생 모은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지 않고, 100% 사회에 환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깁밥장사를 해서 모은 돈을 대학에 기부하는 분들도 계시고, 폐지를 줍고, 빈 병을 모아 번 돈을 불우이웃돕기에 모두 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지난 탄핵 때 얼굴이 알려진 어느 헌법재판관은 재산이 4억 정도였는데 자신은 평생 한국인 평균으로 살고자 했는데 평균(3억 5천 정도)보다 조금 높다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윤리적인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분의 말씀처럼 우리 집안 대대로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대표님 말씀을 들어보면 혼인금지법이 발효되면 국민의 대부분이 덕을 보게 되지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당의 정책은 그야말로 개인의 잉여 재산만을 사회 공동의 재산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 공적 재산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에 따라 차별받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조금 더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물론 잉여 재산이 너무 많은 분들께서는 걱정되시겠지만 말입니다. 공청회를 마치겠습니다.”
며칠 후 한성실은 기업가들과 간담회를 했다.
“토지를 국유화하시겠다고 정책 발표를 하셨는데 땅은 인류가 처음부터 점유하고 경작하고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국가가 마음대로 국유화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부동산 재벌 이창준이 말했다.
“토지가 자연이라는 데 동의하시나요?”
“자연이긴 하죠.”
“그렇다면 자연은 주인이 없다는 데 동의하시겠네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땅은 다르지 않습니까. 태초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고, 우리가 여기 살고 개간하고, 개발하고, 집이나 공장 같은 걸 세우고 다 해왔습니다.”
“네. 자연을 이용해왔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의 소유주는 아니죠. 자연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굳이 말하면 공공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태양에서 내리쬐는 햇볕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혜택을 받습니다. 바람이나 공기나 물도 마찬가지이고요.”
“땅은 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전처럼 사용하세요. 다만 소유하지는 마시고요. 땅은 하늘이나 바다나 강과는 좀 다르죠. 하지만 우리가 하늘을 이용하려면 비행기 삯을 내야 하고, 강물을 마시려면 수도세 정도는 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땅을 사용할 때도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국가가 땅을 관리하고 땅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땅을 소유하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땅 주인이 있다고.”
“그렇게 땅 주인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시려면 좋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도 자기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서양인들이 들어와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만약 회장님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누가 쳐들어와서 빼앗는다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결국 땅은 힘센 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빼앗고, 또 빼앗고.”
“그러니까요. 지금 국가가 내 땅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토지 자연화는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빼앗고 소유권을 침탈하려는 게 아닙니다. 땅을 그냥 자연으로 두자는 것입니다. 다만 국가가 관리하고 개인은 그 땅을 이용하는 비용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내 땅인데 국가한테 빼앗기고 이제 사용료까지 내라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땅을 자연 그대로 두고, 그 땅을 이용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국가가 이를 더 나은 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치고요. 그런데 왜 내가 내 땅을 내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국가에 바쳐야 하고, 내가 낸 사용료로 다른 사람 좋은 일을 시켜야 합니까? 자본주의 사회가 그래도 됩니까?”
“자본이 땅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 이익을 사회공동체 구성원과도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땅은 자연이고, 자연은 인간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햇볕을 쬐면서 혜택을 받듯이 땅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자연하는 데 땅은 좀 다르다고요. 이미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땅을 소유해왔어요.”
“옛날에 땅을 경작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데 이용했죠. 그리고 힘센 사람들이 땅을 점유하고 살았고요.”
“그게 뭐 어때서요. 자기 돈 갖고 자기가 땅 사고 거기서 일 하고 먹고 사는 게 뭐가 나쁩니까?”
“네. 좋습니다. 그러니까 소유하지는 말고 거기서 혜택을 보시라는 겁니다. 누군가 그 땅을 관리해야 하니까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이고요.”
“내가 소유하고 관리하면 됩니다. 왜 국가가 나섭니까?”
“국가는 영토, 영해, 영공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땅과 하늘, 바다는 자연이며 이를 국가가 위임받아 관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가 이번에 공장 부지를 얻으려고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나 아십니까? 이걸 왜 국가에 반환해야 합니까?” 대기업 회장 박동근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제 공장이 필요하면 약간의 사용료를 내고 국가에 빌리면 됩니다. 땅을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국가는 그런 기업들에게 아낌없이 빌려드릴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땅을 사려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예요. 이미 우리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 땅을 샀다고요.”
“그래서 당장 국유화하지 않고, 계약한 후 50년이 되는 해부터 국가에 반환하시라는 것 아닙니까?”
“그럼 곧 50년이 되는 땅을 지금 당장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법이 시행 되면 50년의 10%인 5년 동안 유예기간을 거친 후 만기 된 계약은 국가에 반환되어야겠지요.”
“아니 왜 내가 내 땅을 국가에 바쳐야 하느냐고요.”
“회장님 땅이라고요? 회장님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억지로 소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법으로 보장받은 것을 주장하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이제 법을 고치려는 겁니다.”
“뭐야? 이거 이런 생떼를 부리는 게 말이 됩니까?”
“회장님, 역사적으로 가장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 사기꾼이 누군지 아시지요?”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대동강물은 자연이니까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팔아먹었으니 희대의 사기꾼이 된 것입니다. 그럼 자연인 땅을 사고파는 것은 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행위라는 것입니까? 왜 그래야 하죠?”
“지금까지 늘 그래왔잖아요. 그걸 왜?”
“네, 지금까지 자연을 팔고 샀으니 잘못된 것이니까 바로 잡아야죠. 법을 새로 짓고 잘 집행해야죠.”
“역사가 증명하는 데 왜 법을 바꿉니까?”
“역사 말씀을 하시면 더욱 더 법을 바꿔야 합니다. 고대시대에는 힘있는 사람이 땅을 소유하고 지배했습니다. 중세 때도 왕이나 영주들이 땅을 소유하고 소작을 부렸고요. 근대시민사회로 와서 부르조아들이 돈으로 땅을 사고 그것을 문서화했습니다. 법이 뒤를 봐줬고요. 결국 자연이 땅을 힘 있는 자들이나 돈 있는 자들이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법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애초에 법에서 땅이 개인의 소유라고 명시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법이 자연인 땅을 개인이 소유하라고 명령한 게 아니고, 개인이 자기 욕심으로 땅을 소유하려고 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그럼 거기 집 지은 사람은요? 아파트 짓고 분양받아서 들어와 사는 사람은요?”
“그분들도 토지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기왕에 거기 집을 지었으니 거기서 살 수밖에 없으니 살긴 살되 땅을 점유하고 살고 있으니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땅을 점유하고 사는 분들은 집이든 공장이든 그 어떤 건물이든 토지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토지의 관리를 국가에 맡기자는 말은 자연을 자연에게 돌려주고 인간은 겸손히 자연을 빌려 쓰면서 혜택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자연을 자기 개인 소유인 양 하니까 자기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자연파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땅은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관리한다고 땅이 멀쩡할 것 같소. 더 망가질 가능성은 생각해봤어요?” 이창준이 소리쳤다.
“자자, 일단 그 문제는 접어두고, 상속을 못하게 한다는 데 우리 회사 지분을 가족에게 양도하는 것도 안 되는 겁니까?” 회장이 말했다.
“양도하세요. 대신 양도받은 분이 80%의 세금을 내시면 됩니다.”
“이거 완전히 도둑이네.”
“그런가요? 자기가 일해서 번 돈이 아닌데 상속을 받아 부자가 되는 게 더 도둑 같은데요.”
“그게 어째서 아무런 권리도 없이 받은 돈입니까? 다 우리 아버지가 벌어서 남긴 재산인데요.”
“아버지가 번 것은 그분이 살아계실 때 다 쓰고 가셔야 합니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갑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벌어서 먹고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내가 일해서 벌지 않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부자면 아내와 자식들도 다 혜택을 받고 잘 사는 것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요.”
“아니, 부자는 망해도 삼대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다 상속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이 왕조시대입니까? 전근대시대엔 그랬겠죠. 그런데 지금은 근대자유민주주의 시대입니다. 개인이 자기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 힘껏 벌어서 사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아들이 대통령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장관이라고 해서,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아들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의사라고 아들이 그냥 의사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회장님들만 아버지가 회장이니까 아들도 회장이 되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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