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5
선거 운동이 계속되었고, 한성실 대표도 지쳐갔다. 평생 이런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저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을 현실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했지만 정치는 도리어 그녀의 생각을 바꾸려고 들었다. 정치와 현실은 같은 듯 달랐다. 정치가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정책 아이디어쯤은 그저 휴지 쪼가리가 될 때가 많았다.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 생각이 정치로서 현실에 반영되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끝없이 불타올랐지만 그 희망의 불에 자신이 데일 때가 많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부터 생각이 다른 사람은 설득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애초에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처음부터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다른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들과 대화하려면 높이가 맞아야 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든지 모두 다 부모가 없든지 하지 않으면 결코 서로 말하고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상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없으니까.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약을 먹고 쓰러져 간신히 잠드는 경우가 많았다. 꿈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꿈과 현실이 잠 속에서 뒤엉켰다. 두텁게 꼬인 실타래 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처로운 몸짓을 하다 깨면 자신이 누에 꼬치 속에 들어 있었다. 꿈에서 깨면 다른 꿈이었고, 그 꿈에서 달아나면 깊은 잠의 수렁 속을 헤매고 있었다. 꿈이 겹치는 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또 열쇠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시간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깊은 밤이었고, 두 명의 집행관이 그녀를 법원까지 동행했다.
그녀는 13호 법정에 섰다. 법관들은 모두 열둘 아니 열셋이었다. 남자 넷, 여자 여덟, 성별을 알 수 없는, 어쩌면 AI이거나 복제인간 같아 보이는 누군가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자로 법이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법복을 걸친 채 책상 밑으로 아랫도리를 벗고 있었다. 볼 수 없는 신체였지만 그녀는 그들의 헐벗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법정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법관들은 그저 늙어빠진 노인에 불과했다. 간혹 인자한 옆집 영감 같아 보였고 잠시 뒤엔 먹잇감을 산채로 넣은 마법 스프를 끓이고 있는 마녀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녀가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너만이 알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무슨 죄를 지었든 상관없어.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널 소환할 수 있으니까. 너는 소환을 피해 달아날 수 있지만 그건 죄지은 걸 자백하는 꼴이니 무모한 짓이지. 이미 법정에 서 있으니 너는 그저 피고일 뿐이야. 네가 누구인가 따위엔 우린 아무런 관심이 없어. 자 그럼 당신의 죄를 낱낱이 불도록 해.”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법복을 입은 자들은 마치 성당의 고해신부처럼 그에게 자백을 요구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내 죄목이 무엇입니까?”
법관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네가 네 죄를 말하면 곧 그게 네 죄목이지.”
다른 법관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녀가 대답을 하려고 하자, 다른 법관이 말했다.
“아, 여기 있군. 너는 오래전부터 안티고네라고 불렸다지?”
“네? 아니, 제 이름은…”
그녀가 말하려 하자 또 다른 법관이 말했다.
“우린 네 이름이 필요하지 않아. 네가 누구라고 불리느냐가 궁금할 뿐이야. 안티고네? 아, 아주 오래전부터 너 같은 여자애들을 그렇게 불렀어. 그게 네 죄목이기도 하지.”
그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는 일단 말을 걸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현행법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십니다.”
“그래, 넌 왜 자꾸 지금 잘 굴러가고 있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지? 가당치 않게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더라도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골자로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토지 역시 하늘, 바다, 산과 강, 공기 등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취지로 법안을 만들고도 있습니다. 물론 그 외 작은 법안들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네 말대로라면 혼인금지법이나 토지국유화법 따위겠지?”
“법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고, 그런 취지입니다. 토지에 대해서는 국유화법이라기보다는 토지자연화법 정도가 타당하겠습니다. 땅을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너는 안티고네처럼 인간이 만든 법 위에 자연법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거니? 인간이 법의 통치를 무시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법은 우상과 같습니다. 사람이 만들지만 만든 후에는 모두 그 앞에 절하기 때문이죠.”
“법의 통치를 받는 것이 우상 숭배와 같다는 거냐? 법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다.”
“법이 신으로부터 왔다는 믿음이 있다는 걸 압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걸 두고 원초적 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 손에 들려진 것은 인간이 만든 법일 뿐입니다. 원초적 법을 보충하고, 모방하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법은 도구여야 합니다. 그것이 통치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법치가 곧 민주주의가 아닐뿐더러 법은 인간의 손에 들려진 유용한 도구일 뿐입니다. 국민이 자기 주권을 주장하고 발휘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는 법을 무시하기 때문에 여기 서 있는 거야. 법은 이미 너를 통치하고 있고, 너의 주장이 법에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 처벌할 수 있어. 너는 법을 두려워해야 하고, 법에서 금지하는 것을 시도해서는 안 돼. 너는 법을 존중하고, 법 앞에서 스스로 살펴야 해. 법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단 말이다.”
“법이 통치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법은 정의가 아닙니다. 법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닙니다. 법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도 거짓입니다. 오히려 법은 무지합니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분쟁을 막을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법은 예외를 품고 있는데 이제 그 예외가 상례처럼 되고 있습니다. 그저 법은 인간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 그 도구가 인간이 부여한 막강한 힘으로 인간을 구속하고 있습니다. 법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하고, 법이 득세할수록 인간의 삶이 피폐해진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법치가 법의 독재를 말한다면 법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법 대신 인문학적 상상력을 주장합니다. 무엇이 진짜 인간을 이롭게 하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법 대신 윤리를 그 자리에 놓으려고 해왔습니다. 그러나 윤리조차 어떤 강령, 유사 법과 같은 명령을 통해 인간을 선한 쪽으로 몰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위만을 되풀이해서 주장할 뿐입니다. 윤리가 그냥 윤리로서 적용되려면 결국 종교로서 기능해야 하는데 종교가 되는 순간 다시 신의 힘, 신의 법, 신의 이름으로 강제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강제되는 순간 의미를 잃습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는 것만이 자연을 아름답게 하듯이, 어떤 당위나 강제가 없이 사람이 사람과 서로 사랑하도록 그냥 두어야 합니다.”
“자연을 그냥 자연으로 두자는 말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인간이 인간과 서로 사랑한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그래? 공부 좀 했다면 알 텐데. 인간은 이기적이고, 욕망하는 존재야.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어. 평화롭게 서로 사랑한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단 말이다.”
“그래서 제가 그걸 한 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우선 토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인간도 자기 자리를 찾자는 것입니다. 땅이 자연으로 돌아가면 땅에서 나오는 부를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법을 우상화하는 순간 인간은 심판하는 자와 심판당하는 자로 나뉩니다. 서열이 생기고, 승자와 패자가 나옵니다. 아무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면 분쟁이 줄고, 승자 독식도 줄고, 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사람도 서서히 평등해질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더 많아지겠죠.”
“정말 이상주의자로군. 네가 그런 헛소리를 떠들어대니까 법 앞에 서 있는 거야. 네가 아무리 법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우리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법 없이 살 사람? 흥,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 법은 곧 삶이야.”
“법은 눈멀었습니다. 법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법은 국가가 사용하는 인정받은 폭력일 뿐입니다. 좋은 정치는 가능하면 법이라는 도구를 쓰지 않고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하고 있군. 너는 법이 싫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법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어. 그러면서 감히 우리를 이 세계로부터 쫓아내려고 하고 있잖아.”
“제가 만들고자 하는 법은 처벌규정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 뿐입니다.”
“네가 만든 법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아.”
“부자들요?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부를 가지고 온갖 혜택을 누릴 만큼 누렸습니다. 이제 그들의 잉여재산을 많이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건 인간의 욕망이야. 자신도 맘껏 누리고 자기 자식들에게도 누리게 하겠다는 거야. 왜 그걸 막으려는 건데?”
“살아 있을 때 그 욕망을 맘껏 누리라고 하십시오. 그가 죽으면 사회가 그의 부를 맡아서 이웃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그의 자식들도 부모의 덕을 보는 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뿐입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원해. 사람들은 자기가 번 돈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져 대대로 잘살기를 원한다고 그것이 그들의 영생법이야.”
“그들의 욕망의 법칙이 그러하겠죠. 분명한 것은 법이 위력을 떨치더라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그렇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부자로 살면 충분합니다. 죽어서도 그 부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거리가 못 됩니다.”
“네가 아무리 주장해도 너는 법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그저 우리가 판결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법이 인간을 심판하고 죽일 수 있겠지만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법이 인간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죽이는 일에 더 유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법이 아닌 자연의 이치에 맞는 정치를 하려는 겁니다.”
“넌 정말 모순에 빠졌어. 어떻게 법이 죽는 일에 법을 쓰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법은 어둠을 밝히지만 태양이 뜨면 사라지는 촛불과 같습니다. 태양 앞에서 촛불은 정말 미약한 도구일 뿐입니다. 법은 한계를 두고, 한시적으로 꼭 필요할 때만 쓰는 도구여야 하며 자기 역할을 다하면 죽은 것과 같이 박물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잠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어둠 천지야. 조금이라도 빛을 낼 수 있는 촛불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이냐. 정치를 하겠다는 자가 법의 죽음을 말하다니, 정말 가관이군.”
“법이 없는 정치를 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정말 대책이 없군. 자네는 요순시대 성군정치를 꿈꾸고 있는 모양인데 가당치 않아. 자넨 단지 어떤 처벌로도 교정될 수 없는 무법자일 뿐이야.”
“네, 그럴지도 모릅니다. 법이 신으로부터 왔듯이 저는 태초에 신으로부터 창조된 에덴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법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넌 지금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고 있어. 안티고네처럼 정말 죽겠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저는 생명을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구나. 넌 우리가 널 판단하고 심판할 수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구나. 법을 무시하는 자와는 더 이상 변론할 수 없어. 이 여자를 당장 여기서 쫓아내.”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법정에서 쫓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법관들이 하나씩 사라졌고, 법정 자체가 없어졌다. 주위가 조용해졌고, 그녀가 서 있는 장소는 텅 비었다. 진공상태 속에 붕 뜬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요 속을 지나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운 음성을 들었다.
법이 너를 부르거든 응답하지 말아라. 속이는 자의 속삭임을 듣지 마라. 그리고 기다려라. 법이 자신의 무지와 무용함을 깨달을 때까지.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 기댄 채 떠오르는 생각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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