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홈 스위트 홈> 2023 이상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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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최진영 <홈 스위트 홈> 2023 이상문학상

by 브린니 2023. 11. 6.

최진영 <홈 스위트 홈> 2023 이상문학상

 

 

사진이나 미술(회화, 조각, 조소)을 제외하고 다른 예술은 모두 시간 예술이라고 불린다. 문학(, 소설, 희곡)을 비롯해 음악, 영화, 연극, 무용 등 모두가 시간의 시작과 끝애 따라 완성된다,

 

특히 문학과 영화, 연극 등은 시간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삶, 인생을 테마로 삼기 때문이다.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뜻한다. 인간의 삶은 생과 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총체이다. 특히 소설은 그야말로 인생 자체 다시 말해 시간을 다룬다.

 

물리적인 시간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시간, 의식의 흐름 속에서의 시간, 무의식의 시간 등 인간이 겪는 모든 시간의 문제를 다룬다.

 

최진영의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기존의 세 가지 시간에 균열을 내면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몇 가지를 기억하는데(꿈이나 무의식에서 뜬금없이 떠오르는 식으로) 그 가운데 몇몇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심지어는 미래의 일조차 기억해내기도 한다. 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것으로 기억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미래를 과거처럼 경험하기

과연 이런 게 가능할까.

 

우리는 시간을 한 방향으로만 인지한다. 그러나 과연 시간이 그런 식으로만 존재할까.

아니,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는 사물일까?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듯이

구멍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구멍의 실체는 없는 것처럼.

(도넛을 다 먹고 난 뒤 남는 것은 구멍이라는)

 

 

 

<홈 스위트 홈>은 자신도 알 수 없는 기억들에서 시작해서 자기의 죽음 이후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서술로 가득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기억하고, 미래의 어떤 일까지 기억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거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거나) 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몇 차례 암이 재발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며 삶을 정리한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집을 기억하고는 그 집을 찾아내고 거기서 삶을 새로 시작한다. 삶이란 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고, 그 중간마다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만은 없고.”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아마도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소설은 이미 끝난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간은 언제나 과거이다.

아무리 미래의 일을 쓴다고 해도 소설은 끝난 사건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과거형으로 쓴다.

독자들은 비록 현재처럼 읽게 될 수도 있겠지만.

 

희곡은 현재형이다.

희곡은 연극 상연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현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서술한다.

관객들 역시 지금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며 연극을 감상한다.

 

시나리오는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시간이다.

카메라가 보는 것을 기록한다.

영화를 보는 관람객도 현재로서 인식한다.

 

소설은 이미 끝난 이야기를 서술하지만 독자들은 끝을 알지 못하고 읽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순간순간 감동한다.

 

소설, 연극, 영화 모두 일직선, 한 방향 시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나 연극, 영화에서 시간을 회상, 상상, 미래 예측 등을 다루더라도.

 

그중에서도 소설은 기억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소설가에게서도 자신이 글의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소설가를 선택해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어쩌면 현재는 없고, 오직 과거와 미래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늘 미래에 닿아 있다.

돌아보는 순간 시간은 모두 과거가 된다.

미래는 늘 오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이다.

 

철학자 알튀세르의 자서전은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육체의 눈과는 차원이 다른 정신의 눈이 있어 미래를 보고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인생이 한 방향으로만, 그러니까 책장을 넘기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흐른다는 생각을 버렸다.”

 

신은 시간을 휘게 해서 자신만의 시간을 만든다고 어느 신학자가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도, 그의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시간이 있다면 재미있을까.

불교에서처럼 윤회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시간이 둥글다면

그럼 어떤 세상이 될까.

 

일회적인 시간

한 번뿐인 인생

이런 것들은 모두 사라질까.

 

아무리 윤회하고

시간이 원처럼 돌고돌아도

 

인생은 한 번뿐이지 않을까.

둥근 시간의 선의 일부로서의 인생.

 

 

나는 죽음 이후에 남을 나의 시체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시체가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하며 장례를 치르겠지. 시체는 정말 나일까? 내가 나의 시체까지 처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쩌면 내가 죽고 난 뒤 남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인지도 모른다.

죽었으니 시체라고 부르겠지.

 

로르카의 시집 제목은 <사랑의 시체>.

 

<홈 스위트 홈>의 끝에도 주인공의 모든 말, 신호, 몸짓은 모두 사랑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죽음 뒤에 남은 나의 시체가 사랑의 시체라면 그것도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엄마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나와 가장 닮은 사람. 내가 나이 들면 그런 얼굴이겠지.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눈을 떴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엄마는 나를 보며 과거를 생각할까?”

 

나는 엄마에게서 미래를 보고

엄마는 나에게서 과거를 본다.

 

이 순간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한순간에 붙어 있다.

꼬리를 문 뱀처럼.

반지처럼.

 

사랑의 보석으로 만든 목걸이처럼.

 

 

이웃의 웃음과 울음, 다툼과 화해, 사랑과 비극이 어렴풋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이고 이웃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음을 깨달은 어느 날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수치스러웠다. 어진과 나의 생활도 그렇게 노출되었겠지.”

 

이웃이라는 말을 소설에서 읽으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언젠가부터 이웃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 듯하다.

 

이웃과 철저하게 단절하며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아파트에 다닥다닥 붙어사는데 더 잘 모른다.

 

어쩌면 거리가 있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옆집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동네 어귀로 마실 나가서

이웃 사람과 만나는 것 좋은 풍경이었다.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서로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우리집 좀 봐줘, 이렇게 쉽게 부탁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아. 집에서 죽고 싶어.

왜 죽을 생각부터 해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하다가 죽고 싶진 않단 말이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내가 할 일은 건강을 되찾는 거야.

건강을 어디 맡겨 둔 것처럼 말하지 마.

아픈 사람이 어떻게든 나을 생각을 해야지.

아픈 사람이란 말 좀 그만해, 엄마. 나는 나을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더 행복해질 수는 있어.”

 

인생을 살다가 집에서 죽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아름답다고도 숭고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집은 사람과 시간의 흔적을 묻히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많이들 세상을 떠난다.

병을 고치기 위해 들어간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는 것은 끔찍하다

병원은 늘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죽음 바로 직전에 잠시 머무는 정거장엘 불과하다.

생의 열차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기를 윈한다

곧바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

 

주인공은 행복을 선택한다.

그것은 죽는 날까지 집에서 사는 것이다.

아주 평범하게.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인사를 남길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간신히 내뱉는 그 어떤 단어든 사랑한다는 뜻일 거야. 듣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야. 같은 말을 어진에게도 했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하면 자유로워진다.

진리를 알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예수가 말했다.

진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면서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벽과 지붕을 철거하기 전, 키 재기 흔적이 남아 있는 문틀과 야광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절대 버리지 말아 달라고 업체에 부탁했다. 그런 흔적은 나에게 나와라 꼬마 돈가스와 비슷했다. 내게 남은 기억, 나와 함께 사라질 기억, 나는 육체고 이름이며 누군가의 무엇이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영역에서, 나란 존재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의 합에 더욱 가까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이란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났고 집은 버려졌어도 거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런 것을 폐기물로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은 버려진 폐가를 사서 고쳐서 거기에 살기로 한다.

그러나 그 집이 지닌 사람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어쩌면 자신이 살다간 흔적도 누군가가 보존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언제나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어느 여름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고 청개구리는 사라지고,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울어 버릴지도. 나는 다시 아플 수 있다.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미래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도 그것만큼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슬픔과 고통을 동반한다.

 

사랑을 하면서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어떤 존재를 자기 속에 들여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래 <가시나무>에서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래라는 시간이 곧 현실이 되는 것을 종말이라고 부른다.

임박한 종말

시간은 사실 임박한 종말에 다름아닌지도 모른다.

 

시간은 순간순간 죽으니까.

 

우리는 모두 예정된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해서 그 시간을 연장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 죽게 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행복은 어디서 올까.

결국 사랑하는 데서 온다.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지는 고통의 시간들일지라도.

 

 

오랜만에 참 기분 좋은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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