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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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by 브린니 2023. 9. 19.

연옥의 탄생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을 기억한다.

정말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과학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왠지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종교적인 답변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의심을 한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부모의 사랑 때문이지만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의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영혼이 불멸한다면 그 장소는 어디인가.

 

인류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이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죽은 뒤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서 그곳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설령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한들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믿었을까.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선하게 살았다면 천국에,

악하게 살았다면 지옥에 간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기독교인들은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선전한다.

과연 예수를 믿는다고 천국에 갈까.

그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부모님이나 친구를 믿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예수를 믿는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선하게 살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선하다고 믿는다.

자신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그렇게 선하지도 그렇게 악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중간에 속하는 사람들은 과연 지옥에 갈까, 천국에 갈까.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는 어떤 장소로 가는 것일까.

 

연옥은 그렇게 탄생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어떤 장소에 모일 수 있도록 연옥이라는 중간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개인의 칠십 년이라는 궤적에 들어 있는 이해(利害)와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이해간의 간극(히브리 종교가 결코 진정으로 메우지 못했던)을 메우기 위해 ‘(가톨릭)교회는 연옥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것이다(S.G.F.브랜드)”

 

 

 

 

이 책 <연옥의 탄생>의 저자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이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해서 생겨난 개념인지를 역사적, 이론적으로 추적하여 기술하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루터는 제3의 처소, 연옥은 지어낸 것이며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과 지옥 둘뿐이었다. 그런데 12세기 말 제3의 처소, 중간지대로서 연옥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옥에 대한 신앙은 우선 불멸성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난다 할 때 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일어날 터이니까. 연옥은 불명성이 일회적인 삶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 때 어떤 인간들이 영생에 도달하도록 주어진 보완적 장치였다.”

 

연옥은 죽은 자들의 심판이라는 관념에 기초해 있다.”

사람은 죽음의 순간 첫번 째 심판을 경험하고, 세상의 종말 때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이중적 심판).

 

원죄를 타고 나지만 각 사람은 자기 책임하에 지은 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죄에는 경중이 있기 마련이며 교회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죽음에 이르는 죄가 아닌 과오에 가까운 사면이 가능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은 뒤 정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말하자면 당장 천국에 들어갈만한 선한 자, 살면서 이런저런 죄들을 지은 자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몽땅 지옥에 처넣기엔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렇기에 사면 가능한 죄들을 정화할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그곳이 바로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있는 제3의 장소, 연옥이었던 것이다.

 

 

 

연옥은 천국에 가깝다기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연옥은 가능성의 장소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천국을 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유대의 스올이 불안하고 슬프지만 형벌은 없는 곳이었던 반면 연옥은 죽은 자들이 시련을 겪는 곳이다.”

 

연옥은 사면 될 가능성이 있는 죄를 범한 자들이 그 죄를 정화하고 천국에 갈 준비를 하는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연옥에서는 불로 상징되는 정화, 즉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곳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을 죄를 고백하고 사제에 의해 죄를 사면받는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 죄를 다 고백하지 못하고, 다 사면받지 못한 경우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렇게 고해하지 못하고, 사면받지 못한 죄들에 대한 정화작업이 일어나는 곳이 연옥인 것이다.

 

 

연옥이 생겨난 것은 단순히 죽은 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선하게 죽어서 성자라고 불리는 분들은 지상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대도(代禱, 대신 기도하는 것)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 자들이 대신 기도를 하면 연옥의 죽은 자들의 형벌의 기간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문제가 되었던 면죄부 개념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면죄부를 돈으로 사면 그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가톨릭교회가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연옥의 개념을 비판했고, 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에 반기를 들었다.

 

(가톨릭)교회는 "사후정화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죽음을 두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 긴밀하고 지속적인 유대가 있음"을 주장했으며, "죽음에 대해 이런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산 자들의 권한을 증폭시키는 일"이 되었다.

 

더불어 이런 이론과 제도는 "교회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연옥은 이중으로 중간적이다. 천국에서만큼 행복하지도 지옥에서만큼 불행하지도 않으며 최후의 심판까지만 존재할 것이다. 연옥은 낙원과 지옥 사이에 위치한다.”

 

이 중간 집단은 이웃한 두 집단(천국과 지옥), 그 중 어느 하나와 또는 그 둘과 번갈아가며 편을 맺는다.”

 

연옥은 영원한 지옥이 아니라 한시적인 지옥이다. (...) 사면 가능한 죄들이 영원히가 아니라 한시적으로 지옥에서 벌 받는다는 생각이다.”

 

연옥은 저승에서의 새로운 희망이자 죽음의 순간을 한층 예민하게 하는 것이다.”

 

연옥의 탄생은 정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가 천사들에게 맡겨 천국으로 데려가게 하는 이 선택된 자들은 점차로 연옥을 거쳐 정화되고 순화된 성도들로 그려지게 된다.”

 

죽은 자들을 통해 산 자들은 그들의 이승에서의 권능을 증진시킨다

 

죽음이 하나의 경계로 인식되는 일은 점차 줄어들고 연옥이 이승의 부속 영지가 되어 삶과 기억을 연장시킨다.”

 

연옥은 개인주의를 조장하는데 그것은 개인적 죽음과 뒤이어오는 심판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연옥은 사면 가능한 죄를 지은 자들이 죽은 뒤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형벌을 받는 임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연옥은 정의와 관련 있으며 적절한 형벌과 구원이 차례로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를 위해서 대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그들의 형벌의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고,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즉 산 자가 죽은 자의 영역에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으며(죽음을 산 자의 영역으로 편입, 확장), 영원불멸 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었다.

 

가톨릭교회는 이를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확장했다.

 

또한 그동안 교회공동체를 강조했다면 이제부터는 개인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교회의 교리와 합당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관련이 있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옥 이론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비판의 주요 대상이 되었으며 개신교도들은 천국과 지옥, 그리고 최후의 심판을 강조하면서 연옥 이론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12, 13세기에 탄생한 연옥 개념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인류의 고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과 영혼불멸사상에 대한 교회 나름의 대안이었으며 그만큼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연옥의 탄생은 무엇보다 중보기도(대도代禱)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내가 타자를 대신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응답이다. 그 누군가란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이며, 먼저 간 성도(성자)들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중보를 받아야 할 죄인이다. 나 스스로의 선함은 보잘것없으며 나는 강도만난 자와 같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나와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죽음과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연옥에 대해 말하면서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의 개념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신 일을 따라간다는 것이며 성령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에 대한 능동적인 응답인 것이다.

 

 

<연옥의 탄생> 은 12, 13세기 신학자들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신앙과 그 역할에 대한 궁구이다.

 

종교란 인간의 삶과 그 삶의 아름다움을 천상의 것으로 승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혹은 그 중간인 연옥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주어진 인생을 통하여 선한 삶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구원은 단지 인간이 죽어서 천국에 안착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지상낙원이라는 말에서처럼 이 지상에 하나님나라(낙원)을 건설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죽으셨고, 우리에게도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행위를 요구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일(대속)이며 그 첫걸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중보기도, 대도)라고 할 수 있다.

 

연옥의 탄생은 그런 면에서 개인의 기도가 사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으며 단지 천국에 가기 위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는 지옥과 지상의 경계를 허무는 데 이바지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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