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기택 <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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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기택 <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by 브린니 2023. 9. 16.

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급히,

멈춘 전동 휠체어가

갑자기 나타난 계단 내리막길을 쳐다보고 있다

 

어떻게 내려갈까

눈과 목이

계단과 휠체어 바퀴를 번갈아 살펴보고 있다

 

내려갈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심장은 엉덩이에서 쿵쾅쿵쾅 흔들린다

아직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머리통과 팔다리는 벌써 굴러가다 넘어지고 있다

계단 모서리에서 미리 튕겨 나간 숨소리는

불규칙한 직각이다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는 발이 보이는

평범한 계단 길

둥근

발바닥이 굴러 내려가려 하면

경사는 더 가팔라지고 직각은 더 날카로워지는

울툭불툭 계단 길

 

계단 지름길을 앞에 두고 되돌아가는 동안

바퀴 소리가

, , ,

가보지 못한 길을 저 홀로 내려가고 있다

 

계단 길 내려다보던 눈을 그 자리 그대로 두고

돌고 돌아서 온

평탄한 길

고르지 못한 노면이 가끔 심장을 툭, , 친다

 

김기택

 

 

산책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이 시는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주고 있다.

 

지름길이지만 계단 내리막길이라 휠체어가 내려갈 수 없다.

물론 휠체어가 내려갈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 곳이라면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리막이 경사가 심하고 길이 길 경우엔 매우 위험하다.

 

아무튼 휠체어가 자유롭게 내려갈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다.

경사진 길은 어느 곳에나 있다.

 

휠체어는 자유롭게 경사진 길을 다닐 수 없다.

길이 경사진 것은 장애인 이동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제도를 개혁한다고 해서 경사진 길을 평평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이 시는 제도와는 상관없는 한계를 마주한 휠체어를 탄 사람의 절망?을 다루고 있다.

경사진 길은 보통 사람도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그런데 휠체어라니!

 

엄두를 낼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맞닥뜨린 휠체어를 탄 사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이다.

 

그러나 휠체어 보조 장치가 없다면 계단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보조 장치가 있더라도 마음먹기 어렵다.

 

사실 계단 내리막길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한계상황을 만난다.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한 미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한계 앞에서 돌아선 경험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적도 얼마나 많은가.

 

시도조차 못했을 경우 미련이 남고 후회도 된다.

그러나 만약 시도했더라면 더 큰 낭패를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계는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한계를 극복했든 한계 앞에서 좌절하고 실패했든 상관없이

한계를 마주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한계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는가.

그 생각들이 우리는 성숙하게 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생각, 상상들에 휩싸인다.

새로운 생각과 상상은 그것이 비록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과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시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자. 

 

이 시는 한계 앞에 선 인간의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휠체어는 내리막길 앞에서 잠깐 고민하다 뒤돌아서 갔을 테지만

 

그 짧은 시간 휠체어에 탄 사람의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가 돌아서 가는 동안 내내

휠체어는 다른 길, 계단 내리막길을 굴러 내려간다.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심지어 죽을지도 모르지만

휠체어는 자기가 갈 수 없었던 길을 내려가고 있다.

 

 

한계 앞에서 시도하지 못하고 돌아섰더라도 한계를 경험한 사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한계 앞에서 했던 생각들이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또 다른 한계와 마주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

 

한계는 넘을 수 없기에 한계이다.

물론 한계를 넘었다는 경험담을 들었을 때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었을까, 안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 앞에서 돌아섰던 순간의 절망의 깊이는 나의 내면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 절망의 깊이가 슬픔을 만들지언정

그때 경험한 절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그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지 않고,

그때의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지 않고,

 

그저 절망과 실패가 연속하는 삶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숙하고 있다.

 

삶이란 성공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끝까지 실패뿐인 삶일지라도

 

신이 우리에게 맡긴 인생의 시간은 치열하게 살고 볼 일이다.

 

혹 아는가, 실패뿐인 우리의 인생도

신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귀한 삶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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