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오후만 있던 일요일> (ft. 어떤 날, 들국화) : 아름다운 노랫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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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이병우 <오후만 있던 일요일> (ft. 어떤 날, 들국화) : 아름다운 노랫말 13

by 브린니 2023. 9. 17.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이병우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80년대

금요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토요일도 오전에는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서 일했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부터 휴식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금요일 밤이 불금이지만

옛날엔 토요일 밤이 불타는 주말 밤이었다.

 

존 트라볼트가 나왔던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는 불타는 토요일 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늦게 시작되었다.

토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웠던 청춘들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거나

숙취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냥 새벽까지 겨우 눈을 감았기에 잠이 깨고 나서도 멍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창문으로부터 들어온 햇살이 방을 훤히 밝히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정오,

아니면 두 시쯤

더 늦으면 세 시 반쯤

 

일요일은 오후부터 시작하곤 했다.

 

일어나서 씻고 무얼 먹을까 하면 두 시, 세 시, 혹은 네 시가 되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대충 때우고, 저녁이 첫 끼가 될 때도 있었다.

 

다행히 11시쯤 눈을 뜨면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그리고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아

해장겸 아점을 먹는 것이다.

 

 

어떤 봄날의 일요일은 햇살이 따스하고,

꽃과 나무들이 색을 입고,

어쩌면 봄비가 내리곤 했었다.

 

여름엔 일어나자마자 등목을 하거나

얼음물을 들이키고

점심으로는 콩국수,

 

가을엔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고,

일요일 오후의 우울이 창가를 두드린다.

 

겨울 일요일 오후엔 눈이 덮여 새하얀 세상에 눈이 부시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눈을 떴을 때

하늘엔 구름이 껴 있고,

나는 어슬렁거리며 동네 골목을 걷는다.

강아지가 날 흘끗 보고 달아나고

나는 풍선이나 새처럼 날고 싶었다

빗방울이 떨어지자 아이들이나 강아지들이 집을 찾는다.

벌써 어둠이 스며들었지만

나는 어둠이 내리는 빗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예쁜 비가 내리고 포근한 밤이 찾아온다.

 

이 노래는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그저 흥얼거리는 것처럼 가사를 읊고 있다.

일요일 오후의 나른한 상태를 그림처럼 그린다.

지나가는 풍경,

그 풍경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

익숙하지만 문득 다른 느낌이 드는 어떤 일요일 오후”.

 

일상이지만 그 일상을 좀 더 다르게 느끼는 어느 일요일 오후.

 

이 노래는

일요일 오후라는 시간 배경과

일요일 오후의 풍경과

일요일 오후에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가사들에 느릿느릿하지만 투명한 기타반주가

절묘하게 어울려 더없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수없이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 지루한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JnSFS69F5uI&t=52s

 

 

 

https://www.youtube.com/watch?v=JlWn5wAvE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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