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 <시간에 기대어> 아름다운 노랫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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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최진 <시간에 기대어> 아름다운 노랫말 11

by 브린니 2022. 11. 30.

시간에 기대어

 

 

저 언덕 너머 어딘가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 위에

너와 난 나약한 사람

 

바람이 닿는 여기 어딘가

우리는 남아 있을까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설움이 닿는 여기 어딘가

우리는 살아있을까

후회투성인 살아온 세월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세상이 하얗게 져도

덤으로 사는 반복된 하루가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하고 또 잊어야 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그 시간에 기댄

우리

 

최진

 

 

 

사랑하던 사람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쩌면 항상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우리는 너무나 사랑할 때 죽도록 사랑한다.

만약 헤어지게 된다면 죽겠다고 말한다.

 

죽도록 사랑하고, 사랑이 끝나면 죽는다.

 

그렇다면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사실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하지만 죽은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덤으로 사는 시간,

그 시간을 온전히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아직도 사랑한다고 노래한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은 채 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도 사랑한다.

 

사랑하는 그대가 변해버렸을지라도.

우리의 관계가 너무나 소원해져버렸다 해도.

 

 

SNS를 통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 쉽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사람의 내밀한 삶은 아무리 SNS를 본다 해도 알 수 없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연인의 집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그녀)의 집 주소 근처를 헤매였다.

하지만 요즘은 헤어진 연인의 SNS을 뒤적인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시는

사랑이 변하고,

늙고 시들고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거나

어색해지거나

민망해지거나

만나면 불편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시간

그리워하는 시간

사랑이 없어지면 죽을 것 같았던 시간

생명력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 끝나고

그저 덤으로 살고 있을지라도

그 모든 시간들이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사랑 퇴색했을지라도

사랑의 맹세가 배신으로 끝났을지라도

그러나

분노와 복수의 시간들이 지나고

화해와 용서의 시간들도 지나고

그저 인생이 점점 나이들고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야 할 시간이 정말 조금 남았을 때

 

그때 우리는 시간에 기대어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시인 윤동주의 말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어가는 것들이란

아직 죽지 않은

그러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산 너머 어딘가에 사랑하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맙고 행복하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우리의 시간이 다 할 때까지

그 시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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