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안 마이클 <듀안 마이클(사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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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듀안 마이클 <듀안 마이클(사진집)>

by 브린니 2023. 8. 6.

듀안 마이클

 

 

사진가나 화가는 자신과 모델을 가끔 동일시할 수 있다.

혹은 너무나 욕망한 나머지 모델의 욕망을 모방할 수도 있다.

모델이 작가의 분신일 수도 있다.

 

그 모델이 진짜 예술가이고 작업을 대신하는 것은 또 다른 나일 수 있다.

내가 하나 더 존재할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사진가의 시선만큼 모델의 수도 많고, 모델의 욕망도 여러 개이며 모델 속으로 들어가 모델이 되고자 하는 작가의 분신도 여럿일 수 있다.

 

어딘가 또 다른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죽은 뒤에 남아 있을 나와 세상을 떠난 나로 나뉠 수 있다.

영혼이 죽은 육체를 바라보는 장면은 사진이나 회화,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자기자신이 자신과 분리되어 다른 존재가 되는 듯한 상상.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그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

 

다른 누군가가 (그가 실제로 나이든) 내 속으로 들어와 그의 말과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욕망 혹은 두려움.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 버려지는 듯한 느낌.

내가 되었을 그가 내가 되지 못한 채 나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

불안과 공포는 밖이 아니라 나의 존재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나와 상대가 조화롭게 연합하면 사랑이라고 부르고

나와 상대가 분리되어 시선으로만 존재하면 욕망이라고 부른다.

다른 존재 안으로 마구 침입하면 그것은 충동!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시발점이지만

나르시시즘은 나를 나의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한다.

 

나르시시즘,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 이상적인 나를 욕망하는 이상심리.

결코 내가 될 수 없는 그(그러나 나와 같은)를 욕망하는 죽음 같은 충동.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여기서 끝난다.

그의 사진은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끝없는 반복이자 다양한 변주이다.

나르시스트의 연못이나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들여다 보는 거울의 세계가 그의 사진 곳곳에 숨어 있다.

연못 속의 내가 진짜 나인지 거울에 비친 내가 진짜 나인지 혹은 연못이나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결코 알 수 없다.

듀안 마이클의 1974년작 자화상에는 나는 타자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가 사진을 통해 다루고 있는 테마는

분신 욕망이거나 분리불안이거나 죽음과 생의 상호작용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 주제를 반복하면서 다양하게 변주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해 다른 이들과 세상으로 나아가지만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선 자기자신을 본다.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진짜 모델은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우연한 만남(사진 6)' 연작에서는 골목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는 남자가 다른 남자와 지나치는 남자를 돌아보는데 마지막 사진에서는 뒤를 보이던 남자가 뒤돌아본다. 5장까지는 남자 둘이 등장하지만 6장에서는 뒤를 돌아보는 남자 혼자만 남는다.

아마도 젊은 내가 나이든 미래의 나를 만나는 장면이 아닐까. 둘 다 자신을 마주하고는 잠시 후를 뒤를 돌아다 보면서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앤디 워홀' 연작은 얼굴이 지워졌거나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얼굴이 없으면 나는 누굴까.

 

 

⚫'인간의 조건'에서는 지하철 역사 안에 있던 남자가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땅밑에서 블랙홀까지?  

 

⚫'조명받은 사람', 이 사람의 얼굴 역시 환한 빛을 받아 얼굴이 지워지고 없다.

과연 조명받는 삶이 좋은 삶일까. 진짜 나를 인정받는 것일까.

 

⚫'사후 영혼의 여행'에서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은 남자가 환한 빛을 보게 되고 자신이 사랑한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태초의 아담과 이브도 만나고, 우주의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다시 아기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나는 나일까. 죽은 나와는 무슨 상관일까.

 

 

⚫'편지를 보고 상심한 여인'에서는 창가에 앉아 있던 여자는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아서 읽고는 상심해서 창턱에 얼굴을 묻는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온 편지일까.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달한다. 편지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편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조금 놀라거나 슬프거나 상심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르네 마그리뜨' : 화가 르네 마그리뜨의 초상(?), 그는 창밖인지 창 안쪽인지 알 수 없는 장소에 있다.

 

 

듀안 마이클은 1966년부터는 사진을 이야기와 결합했고, 1974년 사진과 글쓰기를 연결했으며 1979년엔 사진을 회화와 접목했다.

영어에는 시험인화증거란 뜻을 지닌 단어가 ‘proof’ 하나밖에 없다.

듀안 마이클은 1974년 그의 사진에 ‘This Photograph is my Proof’라고 쓰기도 했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1964년부터 66년까지 사람들이 붐비는 도시 한복판 공공시설의 텅 빈 내부 풍경들을 사진에 담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는 아마도 영혼의 장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내가 아닌 다른 그(사실은 나),

삶이 아닌 죽음(죽음 이후 또다른 삶)을 찾아 나선

그리고 그 길에서 헤매는 영혼의 보헤미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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