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장편소설 <홀>
◆
홀이란 구멍을 뜻한다.
골프를 즐기는 분들은 홀에 대한 느낌이 특별할지도 모른다.
홀은 작은 구멍에서부터 싱크홀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구덩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생겨나는 구멍을 말한다.
요즘처럼 장마가 심한 경우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연을 당하면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다고 말한다.
마음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을 그렇게 말한다.
지나가다 어느 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들여다보지 마시오” 라고 쓰여 있으면 정말이지 구멍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다(별 것 없다).
도넛을 다 먹으면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도넛을 다 먹고 나면 구멍이 남는다.
도넛은 도넛과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새 옷을 샀는데 입고 나온 첫날 구멍이 났다면
그 옷은 새 옷일까 구멍 난 옷일까.
홀은 그냥 구덩이이기도 하다.
땅이 푹 파여서 생겨난.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는 무덤을 파기 전에 땅을 파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은 아마도 홀의 뜻을 적어놓은 위의 문장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 구절에 가깝다.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 주인공 ‘오기’가 들어가 누울 무덤 직전의 구덩이.
눈을 뜨자 오기는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또한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도.
오기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상태를 가늠해본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소설은 시간의 순서와 무관하게 오기의 기억을 통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기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대학교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조교였던 여자와 잠깐 불륜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일로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혼 전 거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오기는 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고 직전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살아났다.
아내는 죽었다.
교통사고 후 오기는 살고 싶었다.
다시 몸이 회복되고 예전의 삶을 되찾고 제대로 살고 싶었다.
아내가 곁에서 없어졌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오기는 장모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장모는 사위가 회복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 죽은 딸의 방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오기와 딸의 결혼생활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장모의 생각은 굳어지는 것 같다.
오기, 사위가 죽었으면 좋겠다.
장모는 덩굴식물을 심어 오기의 집을 덮어버린다.
장모는 간병인을 비롯한 의료인들의 접근을 막고 오기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오기는 불륜 상대였던 옛 여자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회복되어 곧 일어날 것임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장모는 전화기를 없애고, 오기의 대학 동료들을 불러 오기가 절대 회복될 수 없는 죽어가고 있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그리고 하루 종일 구덩이를 판다.
명목상으로 연못을 만든다는 핑계를 대면서.
오기는 자신의 집에 감금된 상태가 된다.
오기는 어느 날 집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기어서 집을 나선다.
그러나 현관을 나서자마자 장모와 마주친다.
장모는 오기가 대문까지 기어가는 길을 막아선다.
오기는 장모를 피해 다른 곳으로 방향을 튼다.
오기가 방향을 틀면 틀수록 오기는 장모가 유도하는 쪽으로 기어가게 되고 결국 구덩이에 빠진다.
오기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운다.
슬퍼서라기보다는 울 때가 되었으므로.
오기는 아내를 떠올린다.
◆
오기의 아내는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직업도 여러 번 바꾸고,
취미도 계속 바꾼다.
아내가 죽기 전까지 매달렸던 것은 집 마당에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다.
거의 프로 수준으로 정원을 손봤다.
사람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것도 하기 싫어 했다.
오기가 조교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던 탓이었다.
그 친절은 불륜이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선을 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오기는 그것을 부정하면서도 오히려 그것에 더 끌렸다.
결국 오기는 그녀와 선을 넘게 되었고,
아내의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오기의 욕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내의 의심이 그 욕망에 불을 지핀 것인지
오기는 결국 아내의 말대로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욕망은 하나를 얻으면 곧바로 이게 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 라고 말하는 속성이 있다.
오기는 또 다른 여자와 선을 넘는다.
그래서 오기는 두 여자로부터 다 버림을 받는다.
아내는 어느 날부터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것을 ‘어느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직상상사의 비리를 고발하는 글을 게시해 목적을 성취한 적이 있었다.
그 외 아내가 쓰는 글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오기는 아내가 유일하게 성공한 장르의 글쓰기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물론 아내가 자신을 고발하는 글을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긴 했지만.
★
오기는 바람을 피웠고, 이혼 요구를 받았고, 교통사고를 당했고, 거의 죽게 되었다.
그리고 장모로부터 사형선고를 받는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했던가.
오기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죽음을 떠올렸으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고자 했다.
오기는 열심히 살았고, 나름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비리도 있었다.
오기는 대학교수가 되는 과정에서 라이벌이 될 만한 상대의 비리를 주위에 흘렸다.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쉽게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다.
오기의 생존 욕구 혹은 성공 욕망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버지가 경제적인 이유로 오기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오기는 생명 욕구가 강했다.
아버지나 주위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도 강했고,
그 욕망만큼이나 열심히 일했고, 성공했다.
대학교수로 성공한 오기가 조교와 바람이 나는 것은 성공한 남자가 누리는 액세서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기를 파멸로 이끌었다.
★
결혼이란 두 사람의 사랑의 맹세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별로 사랑하지 않고도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혼은 맹세이다.
반지는 두 사람의 결속을 말하는 상징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운명공동체를 이룬다는 확증이다.
운명공동체란 둘 다 함께 살고, 둘 다 함께 죽는다는 뜻한다.
교통사고가 나던 순간 오기는 죽음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함께 죽었다면 결혼이 완성되는 순간일 수도 있었다.
(속으로는 미완성, 겉으로는 종결.)
그러나 아내는 죽고 오기는 살아 남았다.
살아남자 오기의 생명 욕망이 되살아 났다.
과거의 과오는 잊은 채 오직 살고자 했다.
그러나 과거는 청산되어야만 한다.
오기는 아내의 어머니, 장모에게 복수를 당한다.
장모 역시 남편의 불륜으로 상처받은 기억을 갖고 있다.
장모가 딸이 자신처럼 불륜으로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사위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미 오기는 거의 죽었다고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반신불수인 자가 굳이 살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사위는 딸을 죽게 한 살인범이 아닌가.
가정을 파괴한, 결혼의 맹세를 깨트린 죽어 마땅한 인간이 아닌가.
그래서 장모는 마당에 구덩이를 판다.
★
모든 죄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사필귀정이다.
혹은 사회정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거기에 따른 원망이 쌓이게 되고 한이 서린다.
사회정의도 땅에 떨어진다.
하지만 어떤 죄에 어떤 벌이 합당한가 따지고 들면 골치 아파진다.
법조문에 명시된 것은 그렇다 치고 윤리적인 문제지만 법적으로는 마땅한 벌이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 등이 폐지된 현시점에서 이런 죄는 처벌이 용이하지 않다.
아내는 오기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장모는 죽음을 요구한다.
◆
오기에게 육체의 회복이나 사회적 복권이 가능할 것인가.
어쩌면 장애인으로 살거나 교수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오기에게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오기의 생존 욕구가 타인 혹은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죄절된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홀이다.
어쩌면 오기는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타인의 비리를 소문내면서부터 그 구멍에 발을 디딘 것인지도 모른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홀에 몸을 반쯤 디밀었고,
두 번째 불륜은 몸을 거의 담근 것이 되었다.
아내는 결정타를 날렸고,
장모는 이를 마무리지었다.
◆
모든 문제를 뒤를 하고,
오기는 아내를 사랑했을까.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아내로서 사랑했을까.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아내를 떠올린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곧 죽어서 아내를 만날 것이라는 단순한 결말일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생을 같이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기와 아내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이 결혼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일까.
과연 배우자의 불륜은 용서받지 못할 죄일까.
배우자의 불륜을 용서하고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용서하지도 사랑하지 못해도 성적, 경제적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
살며 사랑하는 문제는 죄와 벌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 선한 삶을 사는 문제는 이보다 더 위대하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이혼하는 부부는 당연하다.
배우자의 불륜을 눈감아주고 결혼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배우자의 불륜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처럼.
예수의 희생이 위대한 것처럼.
예수처럼 살고 사랑하는 사람은 고결하다.
비록 예수의 십자가가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울지도 그것을 따르는 것은 예수가 되는 길이므로.
마지막 순간 오기가 슬퍼하며 우는 것이 비록 늦었지만 참회의 눈물이기를.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하면서 그 사랑에 대한 깊은 슬픔이기를.
오기의 홀이 요나의 고래 뱃속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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